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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12. 2021

나의 아저씨 : 대사 편

<나의 아저씨>  리뷰 바로가기

10년 넘게 구조기술사로 일하면서 박동훈이 깨달은 건 인생도 건물과 다른 바 없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라는 사실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라는 말을 마음에 담고 긴 휴가를 끝내고 출근을 했다. 그럼에도 자리에 앉자마자 두통이 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회사는 인생에 필요악인 듯싶다. 출근하는 박동훈 모습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보였지만 그는 주어진 자리에서 이처럼 내력을 기르고 있었다. 오늘도 성실히 내력을 기르자. 모든 쓸모없는 시간은 없겠지.


지안의 이력서는 단출했다. 학력은 고졸. 특기는 달리기. 아무것도 갖지 않은 지안의 이력서가 빽빽하게 적어 놓은 다른 이력서들보다 쎄 보였다. 동훈이 지안을 채용한 이유다.


 “사람의 삶에 마지막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외부적 환경이나 상황 등 그들의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다.” #당신이옳다


매일의 삶이 나라는 사람 위에 무언가를 덧입는 행위로 다가왔다. 세상의 기대, 평균이라 여겨지는 기준 값에 닿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렇게 만든 결과 값을 자신이라 믿지만 #당신이옳다 를 쓴 정혜신 저자의 말처럼 마지막까지 내게 영향을 미치는 건 나다. 내가 아닌 것에 공을 드리니 금만 가도 무너지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너나 나나 모두 짐을 쌓고 산으로 절로 들어갈 수 없다. 마음은 언제나 푸른 숲 속에 있지만.


그래서 가능한 나 자신에게 집중하려 한다. 감정을 곱씹으며 이 친구가 이전처럼 편한 대로 타인에게 맞추거나 자기 비하를 하러 들지 않도록 경계선을 살핀다. 지친 마음을 염려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 다독였다.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 후 후회되는 마음을 외면해서 반복하지 않도록 반성한다.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는 일도 쉽지 않지만 줄과 줄 사이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을 채워 나가는 일도 게을리 해선 안 되겠다. 하... 너무 바빠. 삶이.부디 많이 가지려 하지 말자. 어차피 무거워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을 인생이라면 자신에게도 강요하지 말라는 겸덕의 말과 지안이 건넨 "파이팅"에 "행복하자"로 대답하던 동훈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냥 지안이 불쌍해서 어린아이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안쓰러워 행복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 문장 끝에 “우리”가 붙었다. 행복해지는 삶은 지안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필요했음을 인정함이 아니었을까.


유혹 없는 안온한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동훈을 바라보는 시선은 도실장에 끌려가는 소, 성실한 무기징역수였다. 그렇게 희생하며 지켜온 것들이 실로 아무것도 아닌, 살짝 금만 가도 와르르 무너져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었음을 느끼면서 동훈은 스스로부터 행복해지기를 다짐한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한껏 가벼워진 표정으로 밝은 빛이 가득한 정오에 마주친다.


자신의 행복을 우선에 두는 건 이기적인 것일까? 이 생각에 꽤 오래 붙잡혀 있었는데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나름의 문장을 찾았다.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일 수 있다."  (#당신이옳다 중)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위 책의 문장을 빌려 쓰려고 한다.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 개구리가 되었나 보다. 그래서 그때가 좋은 거라고 말한다.. 웹드라마 #에이틴 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지나온 십 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만 우린 지금 처음으로 십 대를 보내고 있어서 늘 평범한 날들 속에서도 정작 평범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지면 사는데 익숙해진다. 몇 가지 방법을 터득하고 가치관과 기준이 생기면서 상처를 덜 받고 사랑하려는 지혜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도 모두 처음의 순간이다. 생각해보면 어리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다시 보면 처음에 보지 못 한 것들이 보인다. 지은이가 연기 한 지안의 삶은 다시 봐도 고단했고 마음이 아렸다. 그래서 박동훈(이선균)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후배가 대표가 되고 안전진단팀으로 밀려나면서도 그가 회사를 다닌 건, 소심하고 유약해서가 아니었다. 성실한 사형수 같아 보이는 그는 삶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지고 가는 책임감 있는 어른이었다. 자신의 자리-부장, 차남, 집안의 가장이라는-를 지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딨냐고 도종환 시인이 말했다. ‘어른’은 완벽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어른도 흔들린다. 다만 삶의 경험과 지혜로 실수를 줄여나갈 뿐이다.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뜻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안이에게 동훈은 유일한 어른이었다.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와 달리, 선입견으로 공격하는 사회와 달리, 동훈은 아픔과 상처 속에서도 나은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책임감 있는 어른이었다..


“어른 하나 잘 못 만나서...” 동훈(이선균)의 대사에서 아직 다 자라지 못 한 지안이, 광일이, 기범이의 아저씨가 되어주려 함을 느꼈다. 동훈의 이러한 어른스러움은 지안을 밝은 낮에 웃으며 살 수 있게 해 주었고, 아마 광일이와 기범이도 또 다른 ‘어른’으로 자랄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뭉클 ㅠ

'나의 아저씨' 중 가슴에 남은 대사 TOP3 중 첫 번째.


촉망받던 감독에게 연기 지적, 질책, 무시를 받던 유라는 이후 연기를 못하게 된다. 물론 아직 연예인으로서의 삶은 산다. 하지만 연기를 못하는, 정확히는 못 하게 된 연기자에게 그러한 삶은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 감독이 몇 년 후 청소업체 직원이 되었다. 자신이 오바이트해 놓은 토사물을 치우고 있었다. 아, 감독님도 망했구나. 자신의 연기에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작품을 망하게 한 연기자에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움츠러들었고 그건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훈은 감독의 미련을 접고 청소 걸레를 잡았다. 삶을 이어 갔다. 그와 함께 어울리는 후계동 사람들도 한 때 사장이었고, 기업 임원이었으나 지금은 족발을 팔고, 찜질방 수건을 세탁 배달해주고 있다. 누군가는 망했고, 실패한 인생이라 볼 수 있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삶을 이어갔다. 그 사실이 감독이 망했다는 사실보다 더 큰 안도를 유라에게 주었다.


난 어제도 실수를 했고 오늘은 그 실수를 보완하기 위해 아침부터 육천 걸음을 걸어야 했다. 판단 미스로 고생길을 걸은 적도 있고, 우리 집은 한번 제대로 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틈틈이 불행하다 자주 행복했고, 자주 불행하다 틈틈이 행복했다..


유라는 후계동 사람들을 통해 망함이 끝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비록 그 인정이 바로 연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기적을 선사해주지 않았지만(그래서 더 좋았고) 삶을 살아가는 큰 지지대를 만들어주었다.

오디션을 보고, 욕을 먹고, 연기를 하고, 욕을 먹고를 반복해도 유라는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훈 같은 감독에게 제대로 갚아줌으로 망함을 털어낸다.


나는 후련해진 유라와 다시금 지질해져 버린 기훈의 만남과 갈등 그리고 로맨스도 이 드라마에서 참 좋았다.


'나의 아저씨' 중 가슴에 남은 대사 TOP3가 있다. 그중 하나. 이 대사를 만난 뒤 나의 글에, 생각에 자주 떠오르는 말이 되었다. 동훈은 팀 잡무를 담당할 계약 직원을 뽑을 때, 특기가 달리기인 별거 없는 지안의 이력서를 선택했다. 나중에 그는 왜 별거 없는 지안을 뽑았냐며, 둘이 무슨 관계가 아니냐는 기분 나쁜 의심을 받기도 했다. 동훈은 화려하게 포장된 이력서가 얼마나 거품인지, 그동안 겪어서 알고 있었다. 오히려 꾸밈없는 지안의 이력서가 솔직해 보였다. 끈기가 느껴졌다. 그는 겪어 보고 생각하려는 사람이었다. 자기 뒤에서 험담을 한 팀원도 '죄송합니다' 열 번을 외치게 함으로 용서해줬다. 투덜이긴 했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걸 그동안의 시간으로 동훈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안이도 보았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라 내리는, 살인 전과가 있는 문제아가 아니라 고단한 삶 가운데서도 할머니를 부양하는 일찍 철든 아이. 동훈이 너를 안다는 말, 그래서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건 면책의 의미가 아니다. 부모가 자식의 실수를 감싸 안아주는 마음에 더 가깝다. 그렇게 행동하고 마음 쓰고 있을 지안이를 아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거다..


누가 나를 안다고 할 때, 내가 누군가를 알아차릴 때 그런 비슷한 상황에서 이 대사가 생각난다. 모든 걸 다 안다는 교만이 아닌,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마음. 조금은 어른스러운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훈이 지안에게 할머니 장례에 꼭 부르라고, 나도 우리 엄마 장례식에 부를 거라고 했던 말은 동훈이 어른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지안은 혼자였고 만약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면 막막했을 것이다. 그 막막함이 또 다른 죄책감으로 그녀를 더 어두운 곳에 발을 딛게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자주 생각하지만, 생각이 깊지 못 함을. 나라면 지안에게 할머니 장례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아주 먼 미래의 일이었더라도 말이다. 할머니 장례도 장례였지만, 후암동 식구 모두가 상주로 참여한 장례에서 지안은 좋은 이웃과 어른을 또한 만났으리라. 그건 지안에게 마음의 고향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그녀 인생에 큰 빛이 되어 헤매는 시간이 다시 찾아와도 돌아갈 곳을 동훈이 만들어준 셈이지 않을까. 슬프면서도 감사해서, 참 많이 울었던 회차였던 듯.

'나의 아저씨' 중 가슴에 남은 대사 TOP3 중 세 번째.


드라마 <도깨비>에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남은 사람은 또 열심히 살야 한다고. 가끔은 울기는 되지만 또 많이 웃고 씩씩하게 그게 받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이 대사와 함께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을 보내며 마지막 유언처럼 남긴 할머니의 대사가 생각난다. 잘 살아내는 가장 큰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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