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Aug 30. 2021

너는 나의 봄 : 대사 편 3

영도가 게스트로 참여하는 라디오 상담 코너에서 새로운 사랑이 두렵다는 시청자 사연이 있었다. 주영도 선생님은 어떤가요? 라디오 디제이의 물음에 너털웃음을 짓고 넘긴 영도지만, 그는 영원을 약속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 때문에 사랑이 두려웠다.


어떤 이는 지난 사랑이 남긴 상처 때문에, 어떤 이는 사랑에 쏟을 물리적, 정신적 에너지가 부족해서 누군가를 향해 두근거리는 마음이 설레는 일이 아닌 '아뿔싸 큰일 났다'가 되기도 한다. 주변은 온통 겨울이어도 그저 내가 따뜻해서 꽃을 피운 그 미친 목련처럼, 따뜻한 시선을 설레게 받을 수 있다면. 그럼에도 아뿔싸 하는 그 큰일이 미친 척 일어났으면 싶다. #사랑은원래미친짓

벌써 4년 정도 지난 것 같다. 눈썹 정리를 하기 위해 정리 칼 뚜껑을 열다가 손가락을 깊이 베였다.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느끼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외마디 비명 후 나는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을 타고 떨어지는 피가,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만 느껴졌다.


왼쪽 두 번째 손가락 마디 주름 사이로 두툼한 흉터가 생겼다. 여섯 바늘을 꿰맸다. 쉽게 말해 칼에 베인 거다. 과일을 깎다가도 손을 베이고 종이를 자르다가도 베이기도 한다. 아주 큰 외상을 입은 것도 아닌데 한동안 눈썹 정리 칼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영상 속 칼을 들고 저지르는 행동들이 오싹했다. 고작 손 좀 베인 거로 이렇다니. 다 큰 어른이. 칠칠찮게 그걸 그렇게 뚜껑을 열었니? 가족 중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는데… 남에겐 죽어도 하지 않을 못된 말을 내가 내게 했다. 놀란 마음을 다독여주지 못해, 내 마음은 여태 놀라 있다.



경찰이라고 해서, 어른이라고 해서, 너무 오래전 일이라고,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괜찮다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욱 모를 마음도 피를 철철 흘리니까.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면 쉬고, 병원에 가는 게 맞다. 이 당연한 걸 왜 아니라고 우기며 그걸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걸까... 언제든 병원으로 오라는 대사가 반복되는 건 전하려는 메시지일지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맞이한 하루에 누군가의 한 마디, 거리에서 흘러나온 노랫소리, 책의 문장 등이 스쳐 지나가면서 갑자기 어느 한순간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 좋은 추억으로 보내면 좋으련만 마음에 짙은 그림자로 쿵- 하고 떨어질 수 있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경찰서에 들어섰을 때, 그 안에서 주고받는 이야기에 영도는 일곱 살 그때로 돌아갔다. 어린 영도는 아픈 형을 보살피느냐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부모님을 비롯 형과 주변까지 마음을 썼다. 정작 자신은 챙기지 못 한 채.


형을 살리고 싶어 하던 어린 영도는 살려달라고 자신을 찾아온 가영을 그래서 그냥 보내지 못하고 결혼까지 했다. 타인의 상처와 아픔에는 예민한 그를 이제 다독여 줄 때가 된 듯하다. 다정함으로. 그렇게 완성되길 두 사람의 구원 서사일지도.


걱정하는 마음에 버럭 하다 급발진 고백도 담다가 문 쾅- 하도 닫은 거 아니라는 소심함까지 … 매력 종합 선물세트❤이래서 끼 영도 끼 영도하는 건가요? 걱정해주는 거 조아함��

사랑이란 감정을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는 프리패스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할수록 존중해줘야 하는 선도 있는 법이다. 그 선에 대해 존중을 원할 때 ‘날 사랑하지 않는 거니, 내 사랑이 부담스럽니’라고 생각하지 않고, 겁먹었을 그 마음을 생각해 한 발자국 뒤에 서주는 것도 역시나 사랑이다.


패트릭이 자존심 이런 거 안 부리고 영도를 찾아온 것도 기특한데, 가영을 위해 자신의 불안을 접어둔 모습에서 더 큰 사랑을 느꼈다. 이럴 때 자주 기억나는 이야기는 나그네의 겉 옷을 벗긴 건 심술 맞은 바람이 아닌 따뜻한 태양이었다는 이솝우화다. #페트릭스윗해_입덕합니다

“난 다시 태어나면 배우는 안 하려고요. 어차피 매일이 연극인데 카메라 앞에서 멀 더하는 게 웃겨서.”


과연 내 진짜 얼굴은 뭘까? 지금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이 얼굴은 진짜일까? 연기자도 아닌데 가끔 내 짓는 표정이 진짜인지 잘 모르겠는 얼굴이 있다. 그럴 땐 내가 누구인지도 헷갈리고 혼란스럽다. 가영은 직업적인 이유로 다양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러니 그보다 더 자주 많이, 일상에서 조차 남들의 기대, 시선, 이미지에 맞춘 가면을 써야 했다. ‘안가영’ 자신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가영이 영도를 찾아간 건 일종의 생존본능이었을지도. 그는 자신의 흔들림을 알아차린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다행히 영도는 그녀의 마지막 시그널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가영의 생존본능은 다정에게 반응한다. 무턱대고 처 들어간(?) 다정의 집에서 그녀는 지난 시간 잃어버렸던 안가영을 다시 만났다. 떨고 있던 그날의 자신을 안아주는 또 한 사람을 만났다. ‘안가영’을 안가영으로만 봐주는 사람. 엉성한 모습으로 찾아가도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 우린 이런 만남이 이어져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얼마나 힘들었냐는 말 이제는 그렇게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 떨고 있던 그날의 당신을 안아주진 못 했지만 그 시간을 이겨 낸 지금의 당신을 안아 주고 싶다는 아마 가장 따뜻한 위로.’


<너는 나의 봄>을 보고 있으면 가영이 되었다, 영도가 되었다, 다정이 되기도 한다. 등장인물 모두에게 조금씩 다른 내 모습이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며 얻는 위로가 너무나 크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많이 드는 이 마음은 나를 향해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언제나 괜찮다고 말하던 다정이다. 그러니 날을 세우고 차갑게 구는 체이슨에게 다정은 조금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안에 있는 괜찮지 않은 모습에 대해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완전히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정의 이해가 자신의 약점을 들킨 것 같아 어디론가 도망쳐야 하나 불안해하던 체이슨에게 발을 만들어준 듯 보였다. 이곳에 그만 발을 내려놓고 머물러도 좋겠다, 하는 지친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너는 나의 봄, 그 속에 흐르는 구원 서사는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여러 방식을 통해 말해준다. 상대가 갖고 있는 선을 존중하되, 모른 척하지 않는 섬세한 마음이 어떤 모양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위로가 어렵고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느끼는 내겐 여러모로 배움과 느낌이 크다.


형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영도에겐 아주 큰 흉으로 남았다. 형도, 환자도 살리지도 못 했는데 자신은 심장을 이식받았고, 수술에 성공해서 지금 살아있다. 영도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그래서 느끼는 삶의 행복들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미안하고 또 미안하진 않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영원을 약속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자신의 심장이 얼마나 버틸지 모른다. 남겨진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는 영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친구가 되자고 했다. 비겁하다고 용기가 없는 겁쟁이라고 말하기엔 그의 가슴에 흉이 너무 크게 남았다.


그런 그를 나무라지 않고 다정은 안아주었다. 열한 살의 영도를 스물여섯의 영도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다정히 안아줬다. 내가 안아주지 못하는 상처 입는 나를 안아주는 당신으로 인해, 그도 언젠가 지난 시간의 자신을 안아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먹먹하게 말하고 울지 않으려고 하는 영도 대신 다정이가 울어줄 때 … 휴 …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너나봄을 보다 보면 계속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두 사람을 바라만 보게 된다. 마음이 먹먹해져서…

지난밤 다정은 그의 과거를 비롯 현재의 그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건 영도의 생각처럼 그가 안쓰러워서 만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하루에 영도가 보여준 배려와 위로는 다정이 자신을 예전처럼 쓰레기통에 집어넣지 않게 해 주었다. 물먹은 솜처럼 눈물에 잠겨 가라앉는 순간에도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아졌다.


영도는 다정이 힘든 순간 곁에 있고 싶다 말하지 못했지만, 다정은 그의 마음이 들렸다. 그는 내가 준 꽃 하나 버리지 못했고, 나는 그가 준 과자 한 입 먹지 못 했으니까. 홀로 있는 그가 그만 외로웠으면 싶고,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이 나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을 어찌 단순한 위로요, 그저 안쓰러운 마음이겠는가. 영도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라디오 속 사연과 영도의 답은 언제나 좋았는데… 이런 고백, 라디오가 주는 감성까지 담겨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친구가 되자는 말이 어떤 마음인지 영도는 전부 다 알지 못했다. 당신을 위한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을 위한 마음이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곁에 있고 싶은. 영도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다정은 전부 알았을까? 아니다. 영도도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다정이 어떻게 영도가 두려워하는 걸 다 알까. 그래도 자신 곁에 있길 원하는 그 마음이 부담이 되지 않도록, 두 시간짜리 영원이라도 영원이라 말하는 마음은 고왔다. 그저 우리가 함께 하는 그 순간이 중요하지 않을까.


서로를 헤아림과 배려하는 그런 모양의 사랑으로 물든 이 날의 밤이 참 예뻤다.

#청취자들의실댓글칭찬해 #그래서이라디오주파수가어떻게되나요

…. 그동안 스타트업의 김선호가 젤 안쓰러운 서브 남이었는데 …. 이안이 더 불쌍해지고 있어. 선호는 아니 지평이는 원덕 할머니도 있었고 영실이도 있었는데 ㅠ 이안은 여주랑 이어질 가능성은 아예 없고 이름 한번 불러준 걸로 송아지 눈을 하는 애인데 살인범이 따라다니질 않나 � 나 너무 슬퍼 ㅠ 이안아 내가 이름 백번 불러줄게 ㅠㅠ

매거진의 이전글 존재의 불안을 가진, 보통의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