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세포 tvN, 2021
용기.
이 테마가 언제부터 내 것이 된 걸까. 자주 나의 용기 없음을 한탄한다.
어릴 때도 용기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귀신이나 벌레를 무서워했고 방을 분리하여 혼자 잠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머리를 감기 위해 눈을 감는 순간을 무서워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따로 '용기'란 단어를 떠올릴 만큼 두려움은 길게 가지 않았으니 '용기'는 내가 고심할 영역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서운 게 벌레와 귀신이었던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안전하고 안락했던 시절이었음을 깨닫게 된 무렵부터 '용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믿는 일이 어려워지고, 새로운 시도가 점점 줄어들면서 나는 '실패'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겁을 냈다.
첫 실패로 기억되는 건 첫 번째 회사를 한 달만에 그만두었을 때다. 채용 정보와 실제 근무지, 업무 모두 달랐다. 근무하는 동안은 어리숙한 내가 문제인가 자책했고, 그만두고 나서는 제대로 된 회사를 찾지 못 한 나의 안목을 탓했다. 그리고 이 실패는 이후 퇴사를 할 때마다 다시 짙게 우려 졌다. 그렇게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 직장인 경력이 쌓이면서 그때를 떠올렸을 때 그렇게까지 힘들어할 문제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면서 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실패의 순간과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까지 나약하다는 질책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대열에서 밀려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더 이상 부정하거나 수정할 것이 남아 있지 않았던 당시의 나를 더 가혹하게 부정하고 수정하려고 애썼다. 애를 쓸수록 돌아오는 것은 경멸과 혐오뿐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나는 나를 비판하고 고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실격 대본집"
실패의 크기는 주관적이며 주관적이어야만 한다. 누구와 비교할 일의 영역이 더욱이 아니다. 무엇보다 실패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살면서 실패 한번 안 한 사람은 없고 설사 있다 해도 어쩌면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또 다른 실패일 수 있다는 말장난 같은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실패보다 용기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이직, 이사,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 낯선 장소, 처음 보는 이 등 사는 일은 많은 부분 믿음과 싸우는 일이며 이때 용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제껏 용기는 자체 생산인 줄 알았지만 더불어 나누고 얻을 수 있는 형태의 것이었다.
과거 실패했던 때를 생각하면서 지금 후회되는 건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하였는가 보다 상대가 건네는 다정한 말을 '용기 항아리'에 넣지 못했을까, 왜 그 말들을 믿지 못해 나를 탓하기만 했는지에 대한 후회다. 이 또한 용기의 영역이었음을 이젠 알겠다.
칭찬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심하고 강박적인 겸손을 휘두른 내게 그런데도 지치지 않고 칭찬을 부어준 이들이 있다. 덕분에 후회 속에 파묻히지 않고 건강히 수용하여 용기로 전환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은 신뢰하기 어렵지만 나를 믿어주는 이들의 안목은 신뢰한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니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반짝이는 부분을 먼저 보았을 그들의 시선은 믿을만하다.
그러니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당신은 잘하고 있는 게 맞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멋쩍지만 이 글은 이 한 문장을 위해 시작된 글이기에, 용기를 내어 전한다. 겸손한 마음과 자기 검열은 필요한 과정이며 그런 시선은 필요하지만 그래서 유독 자신에게 더 날카로운 잣대를 대고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어 결국 머물게 되는 곳이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저 먼 곳이 된다면, 아무리 좋은 일도 의미를 잃게 되니 더 잘하려는 마음은 잠시 넣어두고 잘하고 있다는 말을 용기 항아리에 담길.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이 글을 읽고 고개를 주옥거렸다면 조금 더 자신을 칭찬해줘도 좋을 것 같다. 부디 이 글도 당신의 용기 항아리에 들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