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Nov 07. 2021

얼굴이 같다면 모든 것이 같을까

<원더우먼> (SBS, 2021)

월요일마다 듣던 강의가 있다. 꽤 오래 듣던 강의에서 나는 언제나 가운데 줄 맨 뒤에 앉았다. 고정된 자리가 주는 안정감 같은 게 있다. 하루는 가까스로 지각을 면했다. 빈자리를 찾아 왼쪽 맨 뒷줄에 앉아 책을 펼쳤는데 순간 강의실을 잘 못 들어온 줄 알았다. 아니면 강사님이 바뀌었던가. 혼란스러움은 강의가 시작되면서 강사님 특유의 억양을 듣고 바로 잠잠해졌다. 하지만 가끔, 잘 안다고 믿었던 이에게서 낯선 모습을 볼 때  그날 느낀 혼란이 떠오른다. 모두가 웃느냐 바쁘다는 드라마 <원더우먼>을 보면서도 나는 그날의 혼란함을 떠올렸다.


사고를 당하고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녀 앞에 선 우아하게 생겼으나 환자에게 하지 않을 말을, 공격적으로 퍼붓는 어떤 아주머니가 그녀를 ‘강미나’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녀의 시어머니였다. 국내 굴지의 한주 그룹의 며느리 강미나, 그녀는 하루아침에 재벌 상속녀가 되었다. 한주 가 사람들이 한치의 의심도 없이 기억을 잃어서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그녀에게 ‘강미나’라고 했던 건, ‘강미나’라는 사람과 그녀의 얼굴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람이 주는 인상은 달라진다. 그런데 그녀는 얼굴만 같을 뿐 하는 행동이나 말투, 목소리까지 모두 강미나와 달랐다. 그럼에도 한주 가 사람들은 그녀를 강미나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가장 오래 가까이한 사람이니 강미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는 확신이 묻어있었다. 그녀를 오직 강미나로 대했고, ‘강미나다움’을 강요했다.


의심은 다른 곳에서 피어났다. 한주 가에서 오래 안 살림을 보았던 김 이사나 강미나에게 사기를 치기 위해 다가섰던 사기꾼이나 오래 떨어져 있었으나 한 때 강미나의 약혼자였고 그녀가 첫사랑이었던 승욱이 먼저, 그녀가 강미나가 아닐 수 있단 생각을 했다. 오히려 강미나를 잘 모르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이들이 그녀를 정확히 본 것이다.


이휜 시인은 그의 시에서 “한 사람을 헤아리는 일만큼 치열한 일이 있을까” 말했던 적이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좋아한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란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는 거라고 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일이라고. 두 시인의 말을 모아 본다면,  한 사람을 헤아리는 일은 정말로 치열해야만 한 일이다. 하지만 한주 가 사람들에게 그러한 치열함이 있었을까? 그들은 강미나가 어떤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향해 나중에 친가 쪽 주식을 상속받아 곱게 자신들에게 갖다 줄 정해진 역할은 있었다.  알아가려는 노력 없이 정해진 어떠함에 강미나를 가두었고, 그 외의 다른 모습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미나는 그들이 아는 것처럼 고분고분한, 세상 돌아가는 건 하나도 모르는 바보가 아니었다. 사고를 당한 건 그녀와 얼굴이 같은 조연주였고, 그날 강미나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만약 그날 조연주가 그녀 대신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미나는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여 사라졌으면 사라진 강미나를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한주 가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 사람을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역사에 대한 것 그 이상을 의미할 때가 많다. 누군가 내게 ‘혹시 A에 대해 알아?’라고 물을 때 그건 그 사람의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고 어느 학교를 나왔고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를 묻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질문에 강한 확신으로 “알아!” 혹은 그렇다고 말하지 못한다. 이런 내게 서운함을 가질 수 있겠지만, 마음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한 사람을 헤아리는 치열함은 늘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만약 한주 가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있었다면 그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초라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한 사람의 일생을 맞이하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모든 걸 가지려고 한 그들은 욕심껏 자멸한다.


하지만 타인을 향한 치열함만 부족할까. 한주 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향한 헤아림에도 치열하지 않았다. 강한 자기 확신으로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했다. 나를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흔한 착각 속에 나 역시 나에 대한 치열함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그래 놓고서는 우습게도 타인의 시선에 자주 나를 맡겼다. 기억을 잃은 조연주도 처음엔 자신이 강미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었지만 곧 그녀가 강미나와 다르다는 걸 느낀다. 그들이 말하는 ‘강미나다움’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시댁 식구의 육 첩 반상을 준비해야 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외출할 때도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정해진 옷을 입고 다녔다는 건 그녀의 상식에선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면전에 놓고 면박과 무시, 핀잔과 폭력을 일삼는 시댁 식구의 무례함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폭력엔 폭력으로 막말엔 막말로 반응했던 건 머리가 아닌 몸의 자동 반사였다. 몸은 강미나였다면 하지 않을 반응을 하고 있었다.


꽤나 순응적인 나는 만약 이런 상황이었다면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말하는 ‘강미나다움’에 나를 맞혔을지도 모른다. 그게 나라고 하니까. 하지만  앞서 봐 왔듯 ‘강미나다움’을 말한 이들은 오히려 강미나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말하는 ‘강미나다움’이 제대로 될 일도 만무했다. 나를 향한 치열함이 없다면 그저, 타인이 말하는 정확하지 않은 ‘나다움’에 억지로 맞추는 부조화 속에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연주는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해 계속 의심했다.


연주는 자신을 ‘슈뢰딩거의 인간’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상자 안에 고양이가 있는데 뚜껑을 열기 전까지 그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는 세상에서 가자 유명한 고양이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예전 모습과 비교하며 구박하는 시아버지에게 인간은 원래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존재라며, 그냥 지금의 자신으로 대해주면 안 되겠냐고 말한다. 연주는 이런 사람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기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던 사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던 사람이다. 무언가 쉽게 믿지 못하는 경계심은 어릴 적 할머니 교통사고 사건과 검사로 일하면서 생긴 좋지 않은 태도처럼 보이지만, 물음표는 때때로 필요하며 생각보다 많이 건강한 답을 허락한다. 아무도 찾지 못한 숨은 강미나를 조연주가 찾아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누구인지 ‘나다움’에 대한 고민은 타인의 시선에만 맡겨둘 수 없다.


시댁 식구들은 강미나를 몰랐으나, 시댁 식구들에 대해서 누구보다  알았던 강미나는 스스로를 숨긴다. 다시 돌아왔을  미나는 자신과 얼굴이 같은 연주를 보며, 자신이 연주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지만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을 가졌던  마저도 그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있는 사람인지 찾는  여정이란 생각을 가졌다.  설령  행동이 누군가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들  끝엔 언제나 ‘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다름 아닌 스스로 자신에 대한 치열함이 필요함을 미나도 느꼈을 것이다. ‘강미나다움 벗어버리자 강미나는 그녀는 자신 안에 새로운 모습도 있음을 발견했고,  이상 않았다.  드라마의 제목은 영화 <원더우먼> 동명이지만 영어 제목은 다르다.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One the woman”이다. 만약 강미나가 조연주스럽게, 조연주가 강미나답게 행동했다면 굳이 “One the woman”이란 영어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음모와 사고 그로 인한 기억상실 그리고 사실 쌍둥이 일지 모른다는 출생의 비밀까지, 소위 말해 막장 드라마에서 볼법한 요소를 두루 갖춘 드라마지만,  드라마에 ‘막장이란 장르를 붙이는 사람은 없다. ‘이하늬배우가 보여준 사이다가 감미된 코믹적 요소가  크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처음 드라마 <원더우먼> 대사를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반응이 기존에 내가 작업해오던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는 것과 우당탕탕  있을  알았는데 멜로도 있었냐는, 생각했던 것과 다른 ‘낯섦 느낀 반응이었다. 하물며 드라마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른 장르가 되는데, 그게  사람이라면 우린 치열하게 헤아리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되지 않을까. 언제나 지나친 해석이 아닐까 싶지만 기획의도를 보고 조금 안심했다. 부디 나의 치열함이 작가의 의도를 헤아린 일이라 생각하며.   글을 읽는 당신의 시선은 나를 향한 치열함일 수도 있다는  행복한 상상으로 글을 마친다.


드라마 <원더우먼>은 웨이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원더우먼> 총 16부작

제작사 스튜디오 S, 길픽쳐스

제작진 기획 홍성창, 연출 최영훈, 극본 김윤

이하늬, 이상윤, 진서연, 이원근, 김창완 등 출연


본 원고는 wavve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웨이브 #웨이브최초공개 #웨이브오리지널 #웨이브독점 #웨이브원더우먼

매거진의 이전글 '운명'을 움직이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