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wavve original,2021)
지난 목요일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GV 시사회를 다녀왔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은 오직 웨이브에서만 볼 수 있는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로 갑작스레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된 국가대표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정은 장관의 서바이벌 정치 생존기를 그린 블랙코미디다. GV 시사회는 총 2시간으로 한 시간 동안 드라마 1, 2회를 관람 후 주연 배우들과 감독이 참석한 가운데 작품에 대한 질의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 이후 처음 극장에 왔다. 목요일 저녁임에도 한산한 영화관이 낯설었고, 극장에서 드라마를 본다는 사실은 신기했다. ‘이상청’을 본 소감도 그랬다. 낯설고 신기한 느낌 말이다. 정치와 블랙코미디라는 두 단어로 ‘이상청’을 먼저 접했던 나는 자연스레 몇 작품들이 떠올렸다. 웃음기 싹 빼고 리얼하게 여의도 정치계를 그려냈다는 드라마 <보좌관>, 온 가족이 함께 보며 정신없이 웃었던 영화 <정직한 후보>.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정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영웅처럼 등장해 판도를 바꾸는 전개도 사람들에게 짜릿한 만족감을 주는 형태의 이야기로, 미디어에서 정치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아주 진지하거나 웃기거나, 크게 이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이상청’은 앞서 말했듯 낯설고 신기한 면이 있다. 같은 듯 하나 분명 달랐다.
같은 건 꽤 리얼하다는 것과 웃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리얼함이라는 게 가짜를 보며 진짜와 흡사하다고 느끼거나, 사실은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상상하며 진짜 같다고 여기는,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의 현실감이 아니었다. 웃기다는 감정도 배를 잡고 큰 소리를 웃는 모습의 웃음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느낀 리얼함은 현실감으로 일상에 가까웠고, 나와 거리가 상당한 정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찐 공감에서 나오는 웃음이 있었다는 게, 달랐다.
이정은이 장관이 된 배경이 빠르게 설명되면서 1화가 시작된다. 이정은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기에 정치에 무뇌 하지 않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노련함은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보여준 한 방은, 그녀가 사격 금메달리스트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이런 이정은 장관의 기질이 ‘이상청’의 반전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 반전이 앞서 정치 소재를 다루는 방식으로 언급했던 기성 정치의 판도를 바꾸는 그런 모양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장관의 한 방이 첨예한 갈등을 만들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수를 세는 것처럼 다가오지 않았기에, 12회 동안 이정은이 보여준 정치 생존 방식은 내 눈엔 새롭고 흥미로웠다.
드라마는 이정은 장관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결코 이정은만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많이 웃은 포인트는 과도한 업무에 정신줄을 놓는 문체부 직원들을 볼 때였다. 하루가 뭐야, 거의 한 시간마다 생기는 이슈를 수습하기 위해 플랜 B, C의 압박을 받는 김수진 비서(이학주 배우)나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해도 기본 세 버전의 원고를 준비하던 신원희 대변인(이채은 배우)을 보면서, 민원처리센터 같은 나의 업무를 떠올렸고 헛웃음을.. 그러니까 너무도 알 것 같은 동질감에 웃어버리게 되는 그런 이상한 웃음이 터졌다. 개인적 사심을 털어놓자면 엉망진창인 상황에서도 냉철하게 파악하고, 정확한 정보를 던지는 신원희 대변인을 보며 나도 저렇게 일하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캐릭터나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 모두에게 반했다. 아주 공감했던 장면을 하나 더 말하자면, 갑자기 반려된 예산 안 때문에 반나절 안에 50억 예산을 만들어내야 했던 최수종 기획조정실장(정슬기 배우)에게 집에 안 가냐고 묻는 대변인의 말에 실장이 “집에 가고 싶어”라고 하는 씬이 있다. 이 장면은 내가 ‘이상청’에서 뽑은 가장 웃픈 장면이자 명대사다. 들숨에 “집에”, 날숨에 “가고 싶어”라며 일하고 있는 출근한 내 모습이었기에... 이때 최 실장이 듣던 장기하 노래 가사, “이제 집에 가자, 오늘 할 일은 다 했으니까, 집에 가자..”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정식 음원으로 출시된 것 같지 않은데 꼭 출시해줬으면 좋겠다. 알고보니 이미 출시된 음원이었다. #장기하 #사람의마음 꼭 들어보시길! (그리고 기하 오빠, 오늘 할 일을 다 못 했어도 내일의 나를 믿고 집에 가도 돼요.) 매일 야근을 하면서도 장관이 신뢰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내는 실장님... 어쩌면 나랑 그렇게 똑같은지.. 이 외에도 공감 가는 장면은 너무나 많다. 이쯤 되니 이 드라마가 정말 ‘정치물’일까, ‘오피스 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는 총 12부작으로 1회에 30분 분량이다. 하지만 2회 차를 하나의 에피소드로 이해하면 좋겠다. GV 때 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을 들었는데, 기획 단계에서 감독은 미국, 영국의 정치물을 보면서 해외 드라마를 시나리오로 옮겨봤다고 했다. 그 결과 한국에 규격화된 시나리오에 맞췄다면 1시간이 넘을 분량의 대사가 미드, 영드에서는 30분 안으로 소화되고 있었다고(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런 해외 드라마를 참고해 ‘이상청’ 대본을 만들었고, 30분 러닝 타임에 1시간 분량의 이야기와 대사가 담긴 대본은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1-2회를 시청한 현장에서는 ‘밀도’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짧은 시간 안에 정신없이 연달아 사건을 쏟아냈다거나, 뭔가 있어 보이는 문장들을 길게, 가득히 늘어놓기만 했다면 ‘밀도’라는 표현이 나올 수 없다. 물론 ‘이상청’엔 숨 쉬듯 많은 이슈가 등장한다. 아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슈가 일어난다. 그런데 이 또한 기획된 것이다. 다만 감독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위기를 하나로 오지 않게 했다.
만약 ‘이상청’에서 발생한 모든 이슈가 정치현안과 관련된 장관 업무에 관한 것이었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슈는 장관뿐만 아니라 문체부와 문체부 직원들 각각의 위기 그리고 장관 남편의 실종에 이르는 장관의 개인사까지 다양하다. 방금 설명한 문장을 보면 정신없어 보일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오늘 보낸 우리의 하루도 오직 한 가지 일만, 한 가지 카테고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비롯 회사, 가족, 회사 직원들의 개인사 등 광범위하게 일들이 터지고 그것들이 서로 엉키어 내가 보내는 하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 모든 이슈를 하나의 흐름처럼 받아들이게 하고 있어, 탄탄한 짜임새도 느낄 수 있다. 덕분에 1화가 끝나기 무섭게 2화를 기다리게 했고, 금요일 전편이 공개되고 하루 만에 정주행 했다. 물론 GV 시사회도 다녀왔으니 책임감으로 드라마를 다 봤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대하는 신작들이 스타트를 끊은 금주에 ‘이상청’을 쭉 볼 수 있었던 건 책임감만은 아니다. ‘이상청’도 엔딩 맛집이다. 다음 편, 다음 편을 찾게 하는 맛이 있다.
GV 시간에 김성령 배우를 자연스럽게 장관으로 대하는 이학준(김수진 비서) 배우와 이채은 배우(신원희 대변인)를 보면서 현장 분위기가 어땠을지 상상이 갔다. GV시간도 편안한 분위기에 유쾌하게 흘렀다. 예상 시간보다 조금 시간을 넘겨 끝났는데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종종 드라마 메이킹을 찾아보는데 좋은 현장 분위기는 반드시 작품에 녹는다. ‘이상청’의 웃음에는 이런 배우와 감독, 스텝들 간의 케미도 담겨 있을 것이다.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즘, 장관 역을 맡은 김성령 배우가 ‘이상청’이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다음 시즌에는 청와대에 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재미있는 답변을 했다. 분명 3화즘에 대선 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 언감생심이라고 했는데, 장관 마음속에 대선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걸까? 보통 드라마를 보며 등장인물의 심리를 읽어보려고 하는데, 정치인은 정치인인지 이정은 장관의 속을 모르겠다. 그렇다는 건 그녀가 이제 노려함까지 갖췄다는 게 되는 걸까. 한국에도 속속 시리즈 드라마들이 생기는데 ‘이상청’은 시리즈 물로 가기에도 적합해 보인다.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보여서라기보다 이정은 장관 외에도 차정원 의원(배해선 배우)이나 김수진 비서 등 충분히 스토리를 만들어낼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드라마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유쾌한, 때로는 스펙터클한 문체부와 ‘이상청’ 인물들의 그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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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총 12부작
제작사 씨에스 픽쳐스 제작 송재영 연출 윤성호
극본 김홍기, 박누리, 최성진, 강지현, 윤성호
김성령, 백현진, 배해선, 이학주, 이채은, 정슬기 배우 출연
본 원고는 wavve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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