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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Dec 02. 2021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했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

<옷소매 붉은 끝동, MBC, 2021>

“처음 승은을 내렸을 때 내전(효의왕후)이 아직 귀한 아이를 낳아 기르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이에 감히 명을 따를 수 없다며 죽음을 맹세했다. 나는 마음을 느끼고 더는 다그치지 못했다. 15년 뒤에 다시 명을 내렸으나 빈은 또 거절했다.”

 <어제의빈묘지명>


왕의 승은을 거절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감히 누가 왕의 승은을 거절한다 말인가!

하지만 이는 정조(이산)가 쓴 <어제의빈묘지명>에 기록된 글로 역사적 사실이다. 왕의 승은을 거절한 이가 있었다(그러고서도 심지어 죽지 않았다!). 사대부가 여식도 아닌, '한낱'이란 수식어가 붙어 불려지던 궁녀였던 성가(家) 덕임이의 일이다. 그녀는 이산의 첫사랑이자 그가 유일하게 승은을 내린 후궁이었다. 그녀를 향한 사랑은 정조가 쓴 여러 기록과 <이재난고>에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인 죽은 의빈 성씨(참고로 후궁의 이름은 보통 신하가 지어주는데, ‘의(宜)’빈은 정조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어제의빈묘지명>에는 덕임이 왕의 승은을 두 번이나 거절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왕의 승은을 거절한 궁녀.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시작된 게 아닐까?




“침방, 세답방, 세숫간, 지밀. 궁에 사는 궁녀들은 모두 왕의 여인이었다.

그 증표로 물들인 옷소매 끝동은 몹시도 새침한 붉은색이었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티저 중에서


‘옷소매 붉은 끝동’은 말 그대로 궁녀의 옷소매 붉은 부분을 말한다. 사극을 꽤 많이 봐왔지만 궁녀들의 옷소매를 눈여겨 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붉은 옷소매는 왕의 여인이란 증표다. 견습 생각시가 정식 나인이 되는 ‘계례식’을 치르면 이들은 공식적으로 왕의 여인이 된다. 계례식은 요즘으로 말하면 성인식과 가깝다. 이 날은 궁녀에게 있어서 평생 왕을 모시겠다는 다짐을 드리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날이다. 하나 내 눈엔 왕과 치르는 일종의 일방적인 혼례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극 중에서 계례식을 연습하기 위해 머리를 올리고 예복을 갖춰 입은 덕임을 보고 이산이 허겁지겁 달려와 전하의 승은이라도 입은 게 아니라며 불안해하는 장면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소속된 인생. 한 평생 궐에서 나갈 수 없고, 모시는 윗전의 운명에 따라 자신의 운명도 결정되는 궁녀. 왕의 여인. 이들에게 주어진 삶 중 자신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덕임도 자신이 '한낱' 궁녀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궁녀는 여성 관리였지만, 당시 여성이란 한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했기에 자신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미약한 대우를 받아야 함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덕임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그리 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삶 속에서도 '선택'을 하며 살기 원했다. ‘선택’ 이란 명사만큼 주체적인 행동력을 담고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덕임이 옹주 자가들과의 필사 자리에 실력이 부족한 친구들도 참여할 수 있게 기회를 준건 자신의 선택이었다며,  "(궁에서)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설령 사소한 거라도 좋아, 선택하며 살고 싶어."라고

말한다. 계례식을 이산과 그의 엄마 혜빈 홍 씨가 망쳤을 때도, 계례식은 일생일대에 단 한번뿐인 나의 날이라며, 자신의 귀한 날을 망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왕의 어심을 묻는 홍덕로에게 자신의 마음은 궁금하지 않냐며 되묻기도 한다. 그랬기에 5화에서 덕임이 저하께 드린 자신의 마음은 강요받아 온 충심이 아닌 더 깊은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임은 생각시 시절부터 동궁전에 소속된 동궁의 궁녀로 동궁의 사람이란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해왔던 듯 싶다. 정식으로 동궁전의 배속을 받기 전 덕임은 종이면 종답게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계속 생각이란 것을 하는 자신을 나무란 적 있다. 하지만 그랬던 그녀라 영조에게 강압적인 대우를 받아왔던 이산의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그를 위로하기보다 먼저 묻는다. 참을 수밖에 없어 참고 있는 것인지. 이산이 고통을 참는 이유가 성군이 되어 이 나라 백성을 위하려 함을 알게 되자 덕임은 비로소 이산을 자신의 군주로 맞이 한다. 안다, 궁녀에겐 왕을 선택한 권리 같은 게 없음을. 설령 덕임은 존경스럽지 못 한 주군이었어도 성실히 자신의 몫을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랬기에 이 고백은 생각시 시절부터 강요 받아온 충심이 아닌 그보다 더 깊은 진심이었으며, 그랬기에 이산도 그녀를 자신의 사람이라 믿게 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 모든 건 드라마 속 덕임의 모습이다. 궁녀의 일을 일일이 역사서에 기록하지 않았을 테니 의빈 성씨가 생각시였을 때 어떤 일에 휘말렸고 실제로 이산에게 도움을 주었는지 알 수 없다. 대부분 드라마 속 덕임의 행동은 작가의 상상력일 테고, 실제로 왕의 승은을 두 번이나 거절했던 덕임이라면 드라마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드라마에 대한 관심과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본 여러 기록들에 의하면 덕임이 승은을 두 번이나 거절한 데는 여러 가설이 있다. 첫 번째 거절은 영조 재위 시절에 웃전의 궁녀를 후궁으로 삼으면 사도세자처럼 될까, 그를 생각함이 있지 않았을까. 공식적인 이유는 왕과의 관계가 좋지 않고 슬하에 자식도 없던 왕비(효의왕후)를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러 기록을 보면 의빈 성씨와 효의왕후 김 씨의 사이가 무척이나 좋아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나와 있다고도 한다. 덕임의 선택엔 그녀보다 항상 주변 사람이 먼저였던 극 중의 다정한 정의로움도 실제 의빈 성씨의 모습과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해도 승은을 거절하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이 덕임이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 것이 작가가 이 드라마를 풀어내는 시선이라 생각된다.


지금까지 이산의 생에 집중한 드라마는 많았다.  속에서 덕임은 그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으로 이산의 생애에  부분으로써 등장했다. 하지만 <옷소매 붉은 끝동>  덕임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으로 등장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인 왕실에서 여성에게 시선을 두고 있는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분명 지금까지 봐온 사극들과 다른 결을 보이고 있고, 이것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 말하고 싶다. 덕분에 지금까지 사극에서   없었던 궁녀들의 문화나 행사, 내명부가 주관하는 다양한 절차나 풍습을   있다. 그리고  부분이 우리에게 친숙한 이산이란 인물이 등장함에도 전혀 다른 분위기와 몰입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다.


<왕이  남자, tvN>에서 사극 퀸으로  마음속에 포지셔닝된 이세영 배우의 역시나 안정적인 사극 연기와  사극 도전임에도 부족함 없는 연기력을 보여주며 대중의 눈에 명실상부 배우로 각인된 이준호 배우(우리 준호 숨겨!) 그리고 존재감만으로 대하 사극 분위기를 만드는 이덕화 배우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와  아프게 지금까지 이야기해  작가의 상상력과 탄탄한 필력 그리고 매회, 모든 장면을 명장면, 레전드 영상을 만드는 연출까지! 믿고 보는 작감배 덕분에 주말이 오길 더욱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 뭐든 ~ 있는 #웨이브  있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 총 16부작

제작사 위매드, 앤피오엔터테인먼트

제작진 연출 정지인, 송연화 극본 정해리

이준호, 이세영, 강훈, 이덕화, 박지영, 장희진, 장혜진, 서효림, 강말금, 이민지, 하율리, 이은샘 등 출연


본 원고는 wavve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웨이브 #웨이브옷소매붉은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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