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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r 06. 2022

시대에게 빼앗기지 않는 몸짓에 대한 찬사

<스물다섯 스물하나> (2022, tvN)

심란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느리게 동네를 걸었다.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내게 있어 걷기란 여행지에서의 걸음이 아니면 끝나지 않는 친구와의 수다로 헤어지지 못 한 발걸음이었다. 정처 없이 걷는 일은 코로나19가 시작되고서도 일 년이 지날 무렵부터 시작됐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일 년은 집순이로서 프로페셔널 하게 보냈다. 2020년 한 해에 본 드라마가 거의 40편에 닿았고, 어설프지만 책도 출간했다. 오히려 이 시간에 미뤄왔던 일들을 완성해보자, 뉴턴이 흑사병을 피해 고향으로 간 그 시기에 만유인력 법칙의 초석을, 미적분을 발명했다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그리고 벌써 햇수로 3년째 접어든 코로나와의 생활. 그 사이 집안엔 기저질환자가 두 명으로 늘었고, 회사 안에서도 확진자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간간히 즐기던 카페에서 마시던 커피 한잔의 시간마저도 부담스러워졌다. 일이 있어 사람 많은 곳을 다녀오게 되는 날이면 목이 아픈 것 같고, 열이 나는 것 같은 예민한 반응에 지쳐갔다. 삶이 이토록 제한될 줄이야. 가족들과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기력이 쌓이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심란한 발걸음을 옮기는 것뿐. 지친 마음을 엄한 곳에 쏟아 내지 않도록 느리게 천천히 동네를 걷는 것뿐, 요즘 내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다.




“한 달 전에 시대가 내 꿈을 뺐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얼마 전엔 시대가 날 살렸다는 말을 들었어.”

<스물다섯 스물하나 4화>


인스타그램을 통해 좋아하던 작가님이 작업실을 얻었다는 소식 봤다. 며칠 뒤에 일러스트 작가 한 분이 작업실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올라왔고, 최근에는 어떤 작가님의 스토리에서 “작업실을 얻어야겠군!” 짧막히 올라온 문장을 보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개척교회를 재정적, 사역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오늘 또 하나의 개척교회가 세워졌다. 작년에도 한 개척 교회를 세웠는데 내가 다니는 교회는 물적, 인적으로 지원했다. 사촌동생은 코로나 시기에 사업을 시작했다.


‘그래, 작가님은 글을 써서 수익을 얻고 있으니, 작업실을 얻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작가님들에게 조차 이런 시국에, 이런 시기에  작업실을 얻는 게 좋은지, 조금 미뤘다 나중에 이 시기가 지나면 하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목사님들에게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리는 지금, 교회 개척은 너무 위험한 게 아닌가? 하는 물음표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사촌동생도 여러 염려하는 소리에 주춤하기도 했지만 모두, 결국엔 해냈다.


희도도 결국엔 해냈다. 어렸을 때 펜신 신동이라 불리며 많은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던 희도는 의지하던 아버지가 죽은 후 꽤 오래 슬럼프를 겪는다. 모두 그녀에게 펜싱을 포기하라고 했고, 그녀의 코치는 재능이 없다는 소리까지 했다. 그러던 중 IMF가 터지면서 희도가 다니던 학교의 펜싱부가 사라지게 된다. 시대마저도 희도에게서 꿈을, 펜싱을 빼앗았다. 시대는 꿈만 빼앗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서는 꿈도, 돈도, 가족도 모두 빼앗았다. 코로나라고 다를까.


그러나 희도는 마침내 국가대표가 되어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그녀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기 때문에 주어진 금메달이 아니다. 희도는 펜싱을 포기할 여러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펜싱이 재미있었다. 펜싱을 잘해서 얻는 칭찬이 아닌, 펜싱 그 자체가 아직은 즐거웠기에 멈출 수 없었다. 희도는 펜싱 국가대표가 다니는 태양고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적어도 그 학교 펜싱부는 없어질 위험이 없으니까. 이를 위해 여러 사고도 치고, 엄마를 설득해야 하는 큰 산도 있었지만  태양고등학교로 전학을 가 전설의 펜싱 선수 양찬미 선수를 코치로 두게 된다. 그리고 일등이 되기 위해 코치를 괴롭혀 특별 훈련을 받는다. 26등이 일등을 꿈꿨다. 한 순간도 요령 없이 매 순간 열심히 노력한 희도는 마침내 금메달을 따낸다. 자신의 한계를, 26등이라는 현실을, IMF라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대를 이유로 멈춰서지 않았다. 그런 희도의 모습은 보는 내내 이진의 말처럼 뺏어오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났다. 희도의 꿈을 빼앗았던 시대조차 그녀를 다시 돕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강렬한 마음이다.


코로나가 현재 일상이라 불리는 수많은 것을 빼앗아 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보다 코로나 때문이라며 아무것도 안 하려 드는 내가, 삶의 제한을 생각의 제한으로 받아들여 속수무책으로 빼앗기고만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부러워만 하고 있는 바보 같은 행동도, 후회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는 지금의 순간마저 곧 후회할 나 자신이 답답해서, 찬 바람을 맞으면서 몇 시간을 걷고 또 걸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무엇이 되고자 하는 걸까? 빼앗기고 싶지 않은 ‘무엇’은 과연 있는 걸까? 형체 없이, 의지도 없이 그저 일렁이기만 하는 열망인 것만 같아, 초라한 지금이다.


“그냥 네가 노력하면 나도 노력하고 싶어 져. 네가 해내면 나도 해내고 싶어 져. 너는 너 말고도 다른 사람을 자라게 해.” <스물다섯 스물하나 5화>


모두가 우려하고 염려하는 지금, 이 시기에 한 발 나아가는 이들의 몸짓을 나는 더욱이 부릅뜨고 봐야겠다. 그들이 해내는 모습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했다. 당신들이 해내는 모습을 보면 나도 해내고 싶어 져서. 그러니까 이 글은 시대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반전의 시간을 만들고 있는 그들을 향한 나의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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