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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y 08. 2022

너를 보고 싶어

대만 드라마 <상견니> (2020)


주인공들의 일과 사랑이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꽉 찬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16부작을 함께 달려오며 주인공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에 오래 남는 작품은 하나같이 가슴 아픈 세드엔딩이다. 대만 드라마 <상견니>도 내겐 ‘세드’인 작품이다. 물론 결말과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쿠키 영상은 행복으로 이어지는 문을 반쯤 열어 두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잃고 헤어져야만 했던 여주인공 황위쉬안을 생각하면 이 드라마는 분명 세드다.


황위쉬안은 2년 전 남자 친구 왕취안성을 비행기 사고로 잃었다. 대학생 때 만난 두 사람은 왕취안성의 적극적인 구애로 사귀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잘 아는 왕취안성을 보며 황위쉬안은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다는 말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일, 벅차게 사랑받았고 그런 그를 정말로 사랑했던 황위쉬안은 2년이 지났음에도 그가 떠났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딜 가도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눈물로 하루, 하루를 보내던 황위쉬안은 보낸 이를 알 수 없는 소포를 하나 받게 된다. 그 안에는 우바이의 ‘라스트 댄스’ 테이프가 들어있었고 그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집으로 향하던 황위쉬안은 1998년 천원루의 모습으로 깨어난다.

<상견니>는 과거와 미래를 오고 가는 타임워프 소재의 드라마다. 타임워프 계에서도 <상견니>는 유명한데 시간을 오고 가는 타임워프 소재의 특성상 이해 구조가 기본적으로 어려운 편인데 그중에서도 <상견니>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설정이 때문에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추천받았을 때 한 순간도 방심해선 안 된다는 조언도 있어서 어떤 면에선 드라마 덕후들의 승부욕을 자극하지 않았나 싶다(자극받은 사람 중에 저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독특한 설정이라 하면 1) 시간 이동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 2) 시간 이동을 한 주인공이 과거 자신의 몸이 아닌 다른 인물에 (소위 말해) 빙의한다는 점이다(이 정도는 스포라기보다 극의 이해를 돕는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바다).


또 하나, 타임워프 소재의 성공 척도는 논리적인 “개연성”인데 이렇게 복잡한 설정이 추가되었음에도 <상견니>는 바뀌는 과거에 따라 변화는 미래가 퍼즐처럼 착착 맞아지고 물 흐르듯 흘러가, 감정적으로도 깊이 빠져들게 한다. 왕취안성을 잃은 황위쉬안의 슬픔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왕취안성이 내린 선택이 주는 애절함을 놓치지 않으면서, 복잡한 타임워프 설정이 늘어지지 않도록 황위쉬안이 빙의된 천원루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을 풀어가는 미스터리와 추리까지 조화롭게 녹아있다.


드라마 <상견니>가 다시 생각난 건 한국에서 리메이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청량하면서도 풋풋한 대만 감성을 어떻게 담아낼지 조금 우려되긴 하지만 그건 추후에 생각할 일이고. 최근 회귀를 소재로 한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를 보면서 일종의 ‘시간여행자’의 설정이 담긴 <상견니>가 떠오른 것도 있다.

“만약에 우리가 정말 모든 걸 바꿨다면 그럼 미래는 네가 전에 말한 것과 똑같은 미래가 아니지?”

“앞으로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하든 나는 믿어. 너라면 절대 날 잊지 않을 거야. 넌 결국 날 찾아낼 거야.”


두 사람은 과거를 바꿔 예정된 미래를 바꾸려 했지만 모든 시도는 어떤 면에서 실패가 된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원하는 미래를 얻지 못하리라,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미래를 향해 움직였다.


시간을 오고 갈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다고 해도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은 가질 수 없다. ‘미래’라는 것, 그 자체에 이미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내포돼있기에. 그래서 주인공들은 고민하지만 선택을 내린다. 설령 그 결정이 모두의 헤피엔딩을 가져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바뀌어야 될 미래라면 그렇게 되길 선택한다. 포기가 아니다. 이들은 변한 미래에서도 서로를 찾아낼 거라고 굳게 약속한다. 미래가 불확실한 성질의 것이라면 더욱이 만들어가는 자의 노력은 멈춰져선 안 되는 것이다.


스포를 삼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드라마를 ‘세드’라고 칭한 순간, 이미 스포를 한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흩어진 시간 속에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는 걸 말해주듯, 마지막 회에서 아주 작은 열린 결말을 만들어 놓았고, 유튜브에는 열린 결말의 가능성을 조금 더 열어 놓는 쿠키영상(에필로그)이 있다(완벽한 해피 엔딩을 바란 분들에겐 이 것도 아쉬울 순 있겠지만). 그리고 스토리 상 정말 중요한 포인트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으니, 꼭 한번 보시길. 눈물 쏟고 그러다 행복해 웃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의 끝자락,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시간 여행을 한번 떠나보는 게 어떨까. 시간을 오갈 수 있는 힘이 아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결국 미래를 바꾸는 힘이라고 말하는 시간여행자가 보여주는 지혜를 덤으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를 만나고 싶어. 네가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아련한 대만 감성의 애틋한 드라마 <상견니>는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하다.


상견니 21부작

제작진 황천인, 간기봉, 임흔혜

가가연, 허광한, 시백우 등 출연


 원고는 wavve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관적 평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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