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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y 28. 2022

차장 밖을 바라볼 잠시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디야? 묻는 엄마의 전화에 도곡…이라고 말하려는데 눈앞 김밥 집에 ‘대치점’이라고 적혀있는 게 보였다. 아. 대치야. 대치동. 이 생각은 ‘대치점’이란 글자에서 시작됐다.


병원을 가기 위해 평소 오지 않던, 올 일 없는 곳에 왔다. 집과 회사, 두 장소만 옮겨 다니는 나는 그 두 장소마저 한 동네에 있어 그리 멀지 않을 이곳도 낯설었다. 통화 전까진 어느 동네와 다를 게 없었다. 내겐 도곡이나 대치나 똑같이 낯설었고,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두 장소를 부르는 말의 어감이 비슷해서 거기가 거긴 가보다 생각하는 무심한 길치였기에 여기가 거긴 가보다, 여느 동네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겐 김밥을 사 가겠다고 말하며 짧은 통화를 끝냈다. 김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넓지 않은 매장에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 혼자, 김밥을 먹고 있었다. 다들 두꺼운 안경을 쓴 게 남매인가 형제인가 싶은 착각을 갖게 했지만 서로 따로 앉아 다른 메뉴를 먹고 있으니 모르는 사이겠구나, 당연한 생각을 했다.


김밥을 사고 8 남은 버스를 기다리는데 바람이 불었다. 요즘 들어 눈이 자주 아파서 핸드폰을 잠시 내려놨다. 그리고 가만히 주변을 봤다. 때마침 김밥 집에서 기본 김밥을 먹던 작은 아이가 자기 몸만  가방을 메고 나오더니 땅을 보고 걸어가더라. 가방이 무거운가,  땅만 볼까. 나는 아이의 수그러진 뒤통수오래 시선을 두어 아이를 따라. 검은색 옷을 입었던 아이가 저만치 멀어져 가는데 이번엔 버스 정류장  쪽에  차에서 흰색 티셔츠를 입은 작고 마른 아이가 걸어 나왔다.  쪽으로 인사도 없이 문을  닫은 소녀는 앞에 있는 건물로 빠르게 사라졌다.  사이 검은 옷을 입은 아이는 길에서 사라졌는데 비슷한 가방을  땅을 보며 걷는 아이가 여럿 생겼다. 비슷 비슷하게 보이는 무거운 짐을 메고 비슷 비슷하게 보이는 여러 학원 문으로 사라져버린 아이들. 버스에는 문제집을 들고 외우는 아이가 있었다.


육 개월 뒤에 재촬영을 하러 이곳에 와야 한다. 크기가 커지거나 진해지면 조직검사를 해야 하지만, 선생님은 우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꼭 6개월 뒤에는 검사를 받으러 와야 한다고. 의사의 마지막 당부가 앞 문장과 상충된다.  ‘꼭’ 검사는 받으라는 말이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집어삼켰다. 가슴에 쌓인 돌가루들은 무엇의 흔적인 걸까.


 옆을 지나쳐 걷던 검은 옷을 입은 아이의 묵직한 가방은 나만큼 나이가 먹고, 나보다   몸을 가져도 결코 가벼워지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몸이 커지면 커지는 대로 가방은 같이 커지는  같다. 나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2  결과에서 나아진  없고 오히려 돌가루가 쌓였다. 어른이 되면 많은 것에 지혜롭고 성숙하며, 무엇보다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시절 내가 봐왔던 어른들의 뒤엔 얼마만큼 , 묵직한 가방이 있던 걸까.


그래도 바람이 좋다 느낄  있어서 다행이었다.  햇살이 뜨거웠지만 바람은 좋았다. 짧게 자른 머리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많이 걷는 요즘이다. 고단한 삶은 계속될 테지만, 삶은 그런 거겠지만 아이가 땅이 아닌 앞을 보고 걸었으면 좋겠고,  문을 닫으며 인사를 나누었으면 좋겠고, 문제집이 아닌 차장 밖을 바라볼 잠시가 있었으면 좋겠다. 덤으로  고운 바람에  가슴에 쌓인 돌가루들도 날아가버렸으면 좋겠다.


인생은 이렇게 또 발란스를 맞춘다. 회색 빛 사람들의 무게와 고운 햇살의 바람. 그 사이에선 다행히 차장 밖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내가 요즘 그렇게 하늘 사진을 찍는 건지도.


6개월 뒤면 12월, 한창 추울 겨울일 텐데 그때는 그래도 따뜻한 쪽으로 무게가 조금 더 실렸으면 좋겠다. 난 추운 겨울이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힘든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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