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풀벌레 우는 소리가 가득하다. 이 소리와 같이, 잠든 아버지의 숨소리가 섞이는 밤,
나는 한 번도 뵙지 못한 할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아버지는 50년이 넘도록 절을 올리고
몇 해 전부턴 절을 올릴 때마다 아버지의 안녕을 할머니에게 빌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을 기억하기보다
남아 있는 가족들이 제사를 빌미로 모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는 아버지의 말도 그렇고,
풀벌레 우는 소리에 왠지 쉽게 잠들기는 싫어지고 이런저런 생각만 맴돈다.
음복한 이후엔 기운이 풀어졌고 밤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천장이 너무 높아 보인다.
-2021년 8월 16일의 일기.
고향에 와서야 하늘을 보게 되는 건, 음성에 와야만 하늘을 보며 걸을 마음이 생기는 것인지 사람에 대한 추억과 마음을 여기에 와서야 그리워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인지.
음성에 왔다. 아버지와 술 한 잔을 했고. 하늘을 보며 걷는 동안 비행기 두 대가 지나갔다.
가로등은 랜턴처럼 켜져 있고. 걷다가 만난 마을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고. 어제부터 내리던 비와 어제부터 흐렸던 하늘이었어서.
자라고 있는 벼와 논에는 개구리 소리. 산에서부터 날아온 밤꽃 냄새
불어온 바람이 고마웠다.
취한 채 잠들고 싶었는데. 걷다가 애꿎게 깨서 돌아왔다.
-2024년 6월 8일의 일기.
돌아올게라는, 돌아간다는 말의 마음과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이 쓴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저자가 고향을 떠나 살다가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30년 만에 고향인 랭스로 돌아가는 과정에서의 성찰들을 담고 있다.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자아와 어린 시절의 환경과 자아를 성찰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그가 담아낸 문장들 사이에서 나는, 음성을 생각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는 궁금해했었다. 디디에 에리봉이 책에 담아낸 것처럼, 나에게도 음성은 그런 곳인지. 그런 곳이 될 것 같은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지.
말하자면 내겐. 비빌 언덕 같은 곳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버려서 내가 절망에 빠져 떠돌아다녀도. 나를 다시 일어서도록 할 것 같은 곳. 그러나 스스로 일어서는 것까지만 허용할 것 같은 곳. 그 이상을 하려 하면 "당장 여기를 떠나라"라고 스스로 채찍질할 것 같은 곳. 내가 고향을 떠올리는 건, 서울에서 잘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끈질긴 고민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고 역할을 지속하고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할 필요가 없었던, 부모님의 보살핌과 적당한 방관이 있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향수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나를 확인해 나가는 작업의 연속이다. 사회에서 내 역할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해 내야만 하고 내 존재의 유용성과 내가 있어야 한다는, 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입증해 내야 한다.
성인이 되고 서울로 올라와 30대를 맞이한 나는 이제야 이런 것을 참 지독한 느낌이라고 생각하고야 마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다시 표명하는 일은 무無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정체성을 주조하기 위한 느리고 인내가 필요한 작업을, 사회질서가 우리에게 부과했던 바로 그 정체성으로부터 수행해 간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모욕과 수치심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는 것이다."
디디에 에리봉, "랭스로 되돌아가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릴까. 날씨가 추울 때 생각은 더 많아진다. 내가 보냈던 모든 겨울이 길어진다.
따듯한 겨울을 보내기를.
그렇게 겨울을 보내다가 더 나아진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불안하다고 생각해도 잘 해낼 수 있기를.
눈이 내리는 하늘을 한동안 보고 있고 싶다. 푹푹 밟히는 눈밭을 삼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이 온다면 조금 더 명확해진 내가 있을 것 같다.
여름에는 겨울을 생각하고 겨울에는 여름을 생각하던 틈에서, 계절을 보낼 때마다 내 위치와 자리, 마음가짐을 확인해 보는 일에 고민도 많아진다.
시를 쓰고 싶도록 하는 힘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복잡하게 얽힌 것들을 담아내려 하고 있다.
행동하고, 보는 것마다 과거의 모습이 떠오른다. 떨어진 은행잎을 볼 때마다 같은 길을 걸었던 작년의 나를 생각하고 열어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우리집 앞 냄새와 같을 때가 있어, 고향에 잠깐 내려갔다 올까, 하고 잠깐의 과거를 생각하는 나는 지금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나아질 것 같았던 하루는 정체된 하루였고 낮은 기분으로 움츠러들었던 하루는 많은 생각들과 섞여들었다.
시사잡지를 읽고 다큐를 보고 노래를 듣다가도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날 살아내도록 해주고 있다는 힘인지, 정리하지 못한 문장들이 많다. 정리하지 못한 마음과 그런 마음에서 떼어내고자 하는 것들이 외롭게 느껴져서, 그렇게 느껴져서 울고 싶은 날은 사라지고 싶어도 사라지지 못했다. 더 늘어날 문장과 더 드러날 내 시를 책임지고 싶다. 종종 그 책임을 쓸어내며 어디선가 울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