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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선 Nov 16. 2024

집 번호를 준다는 것

에픽하이로 문학하기 «집 번호를 준다는 것»(Feat. 린)



김태균 감독의 영화 «I'm OK»(2005.)의 OST, 에픽하이 ‹집 번호를 준다는 것(Feat. 린)*.(*작사: 방시혁, 타블로, 미쓰라진, DJ 투컷 / 작곡: 방시혁)

https://youtu.be/SOlinMB70yA?si=97fv4KsWqftaiILZ


왜 이제 와서야 전화를 했나요

그땐 그렇게도 모른 척하더니

집 번호를 준단 건 내 맘을 준 거란 걸

내 사랑 전불 가진 거란 걸 몰랐나요


그대도 쉽진 않았겠죠

아니라고 말한대도

내 마음이 말하네요

그댄 나를 사랑했죠

그날 밤에 그 떨림을

나의 눈은 어디를

떨리던 내 손에 담은

내 마음의 편지를

집 번홀 준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눈을 감고 있어도

그대 목소리에 산다는 것

이젠 알 것 같지만

너무 늦은 걸 알죠

이제야 찾을 수 없는 그댈 찾죠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아마도

사랑도 사랑했던 기억조차도

그대 번호처럼 빛을 바라고

그래 그, 대와 나도 없던 거라 혼잣말하고

난 살아도 사는 게 아닌데 이제 어떡하라고

널 떠나도 떠나지 못한다

지워진 기억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못난 나, 말을 못 한 나, 심장이 고장 나

보이지 않는 너의 흔적을 자꾸 보잖아


다 필요 없다고 이젠 끝이라고

모질게 전화를 끊고만 싶지만

같은 번호로 살 듯 내 마음도 같아서

아직도 그댈 난 사랑해서 하염없이


내게 돌아와, 준다면 나 변할게

한번 돌아봐, 준다면 달려갈게

네가 떠나갈 때, 로 다시 떠나갈래

날 버리고 살게 내가 버렸던 너와 함께


기나긴 항해 지워야만 해

기억의 잔해 뭐든 말해

네가 내 안에 살아서

다행 이라며 살게 나를 탓해

이기적인 나의 바램 잡아주길 바라

제발 네 맘 안에 나 다시 돌아갈래


다 필요 없다고 이젠 끝이라고

모질게 전화를 끊고만 싶지만

같은 번호로 살 듯 내 마음도 같아서

아직도 그댈 난 사랑해서 하염없이

전화기를 잡고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직도 그댈 사랑하는 내 맘을

원망하고 있어 아무 말도 못 하고

다 필요 없다고 이젠 끝이라고

모질게 전화를 끊고만 싶지만

같은 번호로 살 듯 내 마음도 같아서

아직도 그댈 난 사랑해서 하염없이


에픽하이의 노래 ‹집 번호를 준다는 것› 가사


누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어릴 때, 누나가 엄마에게 남긴 메모를 읽은 적이 있다. 20년은 된 일이고, 어릴 때는 그저 윽. 하는 기분으로 그 메모를 무시했다. 작은 포스트잇에 정갈한 글씨체로 적힌 메모는 "엄마, 나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말이었다.(누나 미안.) 그때 누나는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잠시 방학을 보내려 온 고등학생이었으려나. 다시 기숙사로 돌아간 때였던 것도 같다. 메모는 당시 엄마가 읽던 소설책 사이에 껴 있었는데,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누나가 그런 메모를 남긴 것을 보고 '윽. 이게 뭐람, 사랑? 훗'하면서 넘겼다.


일본의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쓴 «냉정과 열정사이»였다. 이 소설은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둘의 이별 이후 8년간의 이야기와 감정을 다루고 있다. 일본 영화배우 다케노우치 유타카와 진혜림 주연으로 개봉한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동시에 일본 작곡가 요시마타 료의 ost로도 유명하다. 책으로 읽는다면, 에쿠니 가오리가 여자 주인공의 마음으로 쓴 <Rosso> 버전과 츠지 히토나리가 남자 주인공의 마음으로 쓴 <Blu> 버전으로 나뉘어 출간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대학생이 되어서야 읽었었고, 영화로는 4년 전에 처음 봤다.


책으로 읽을 때도 그렇고. 영화를 볼 때도 그렇고. 내가 했던 생각은 그랬다. '나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던 영화는 몇 편 더 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영화는 «어바웃타임»과 «첨밀밀» 그리고 «노팅 힐», «비포선라이즈»시리즈. 사실 «비포선라이즈»시리즈는 아직 전부를 보지 않았다. 일부러 보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다음에. 이다음에 하루를 종일 몰아 보고 싶은 영화로 남아 있다.


나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영화에서 나온 이 문장으로 시를 시작하고 싶기도 했는데. 노트에 적어두고도 4년 동안 쓰지 못하고 있다. 이 문장을 생각하다가 잠든 날도 그렇고, 이전부터 잠들기 전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이런 마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머리맡에 보름달이 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하다가 잠든 내 머리맡에도 보름달이 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핸드폰 번호를 외운다는 것 자체도 필요성을 모른 체 살아가는 요즘. 나도 예전에는 외우는 번호 열개 정도는 있었으니까. 지금은 세상 흐름에 익숙해진 것인지 번호를 외우지 않는다. 저장하지 않은 번호에서 전화가 오면 그나마 낯익은 번호와 그렇지 않은 번호를 구별한 만큼만 딱 그만큼 만이다.


에픽하이가 부르고 린이 피처링한 노래 <집번호를 준다는 것>은 소중했던 마음을 간직하고 꺼내볼 수 있도록 해준다. 린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동시에 포문을 여는 미쓰라 진의 담담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가사의 진심이 좋았다 나는.


좋아하고 좋아했던 사람의 전화번호를 외운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에게 주기 위한 작은 화분과 작은 인형을 사서 남몰래 집에 조용히 두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선물을 받아준다면) 그 사람 것이 될 수 있는 화분과 화분 속 식물, 인형을 보면서 그 사람의 마음과 닿을 거리에 먼저 설레어하는 것.


나는 목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흉흉한 사건들로 인해 전화하는 것과 전화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면해서나 전화로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문자로는 왜곡되고 곡해될 수 있는 지점들이 목소리로는 이해할 수 있고 이해받을 수 있게 되어서, 내 마음과 생각을 글만큼이나 진심으로 전할 수 있어서. 그러나 종종 상처가 되는 말들과 아픔을 들추어내는 말들을 해서 반성하기도 한다. 목소리에서 드러나는 진심은 이렇게 전해지는 것 같다. 떨리는 목소리로도 사람은 솔직하게 진심을 전달할 수 있고. 분명한 목소리로도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적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전화가 좋았다. 군대에서는 절대적이었지만. 내가 듣고 싶은 상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건다는 것, 신호음을 듣는 것에는 항상 떨림과 설렘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전화를 받으면 최소한, 상대방과 나 사이에는 다른 일이 끼어들지 않는다는, 서로의 목소리에 집중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일종의 소중한 마음을 교환하는 시간이었다. 노래에서 미쓰라진이 부르는 가사 <눈을 감고 있어도 그대 목소리에 산다는 >것만큼이나.


하지만 이런 것도 있다. 전화를 받지 않는 순간의 상처와 좌절된 마음들. 단절은 아픔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전화로 배웠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전화할 때. 그리고 누나나 형. 매형에게까지도. 그리고 친구에게까지도. 아버지와는 장을 보러 갈 때면 팔짱을 끼기도 하고, 어머니와 같이 있을 땐 손을 잡고 있기도 한다. 그래, 손을 잡는 것도 있다. 온기가 느껴지는 손을 맞잡고 있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사랑한다는 말을 표현하기 시작했던 것 역시 군대였다. 이제까지 살아온 모든 것과 다른 환경, 단절된 환경에서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은 편지만큼이나 전화로 하는 표현들이 정확했고 절박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잠깐이라도 전화했던 것처럼, 전화로 마음을 전하고 목소리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내게는 그랬던 것 같다.


노래를 듣다 보면, 같은 번호에 대한 가사가 나오는데, 누나 얘기를 조금 더 하면 누나도 지금의 매형과 커플 번호를 썼었다. 그리고 내가 매형이라 부르는 사람은 책 속에서 메모를 발견했던 어린 때. 그때 직후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시기 만난 남자친구다. 연애를 한다면, 뒷자리를 같은 번호를 쓰는구나. 하는 것을 느낀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헤어지면...?


좋아하는 사람과 그리고 애정이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전화를 통해 듣고 들려주는 것은 분명 설레는 일이다. 나도 나름 내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언젠가 쓴 적이 있지만 나는 미래에 태어날 아이에게 태교로 시 한 편 씩을 읽어주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필사 노트"라는 시로 발표한 적이 있다.)

   좋다고 옮겨 쓴 마음의 각고에는
   미래의 아내와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할 수는 있을까)

   마음이 생겼다, 좋게 읽은 시를 모아
   아내와 아이에게 읽어주는,
   이런 생각을 하면 술에 취했어도 연필은 잘 깎였고
   긴 시를 옮겨 적어도 손가락이
   아프지 않았다

  -월간 웹진 «님(Nim)» 2024년 5월호에 발표한 시 <필사 노트>의 일부.

사랑에 대한 마음으로 쓴다. 사랑을 말하는 마음으로 쓴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이 종종 목소리로 풀릴 때가 있다. 말과 단어 문장 사이에 놓인 마음과 섞여, 진심이 묻어날 때는 그런 때가 아닐까. 우리가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배우의 연기에 몰입하게 되는 것처럼, 목소리에도 아우라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리고 목소리를 듣고 들려줄 수 있는, 내 핸드폰 번호를 주는 일처럼 그 소중함을 잊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나는. 그 소중함에는 상대를 믿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이 어느 정도 열려있다는 것, 가능성의 세계에 조금은 닿아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혹시나 너무 과장된 것이라면, 과장된 생각인 것에도 동의한다.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진심이 필요하다.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내 생각과 마음을 옳게 전하는 일도 어려운 요즘.


이야기를 이렇게 끝맺고 싶었다. 최근 친구들과 읽은 소설가 한강의 초기 단편소설집 «여수의 사랑»에 같이 묶인 초기 단편소설 <어둠의 사육제>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서울에 올라와서 보낸 사 년 동안 나는 내 힘으로 산 것이 아니라 희망의 힘으로 살아왔었다. 나는 무엇이든 견디어낼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미운 오리 새끼처럼 세상의 구석에 틀어박혀 원치 않는 일에 시달리고 있지만, 언젠가 진짜 삶이 시작되고 말 것이라고 주문처럼 믿어오고 있었다.
   그리하며 그 진짜 삶이 과연 나를 한 발 한 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던 바로 그때 인숙언니는 떠났다. 나는 그녀로 인해 내가 잃은 것이 돈과 신뢰만이 아니라는 거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삶과 화해하는 법을 잊은 것이었다. 삶이 나에게 등을 돌리자마자 나 역시 미련 없이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보듬은 채, 되려 제 칼날에 속살을 베이며 피 흘리고 있었다.

한강, <어둠의 사육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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