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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선 Nov 02. 2024

채홍

에픽하이로 문학하기 «11월 1일»(Feat. 김재석)



에픽하이 2집 «High Society»(2004.07.26.)중에서 ‹11월 1일(Feat. 김재석, of 원티드)*.(*작사: 타블로, 미쓰라진 / 작곡: 타블로)

https://youtu.be/xxJhKFoy290?si=1hv2oHA1LA5jZ1yh


소중한 친구가 있었죠

내 숨소리보다 가깝게 느꼈죠

피아노와 통기타 멜로디로 꿈을 채웠고

현실보다 그 사람은 음악을 사랑했었죠

Oh 그 지난날 난 다른 길에 발 딛고

무대 위에서 내게 보내던 분홍빛깔 미소 아직도

그때가 그립다 그땐 사랑과 열정이 독이 될 줄 몰랐으니깐

괴리감은 천재성의 그림자

가슴이 타면 순간마다 술잔에 술이차 내 친구가

걱정돼도 말을 못 하고

가려워진 길로 사라지는 뒷모습 바라봤죠 그가

떠나가 남긴 상처보다 깊을 죄가

비라면 내 맘 속에 소나기뿐

너무나 그립다 텅 빈 무대 끝에 앉아

붙들 수 없는 꿈에 조각들 쫓던 그대가

사랑했단 말없이 그리웠단 말없이 고마웠단 말없이

그대를 바라봤죠

사랑했단 말없이 그리웠단 말없이

이제야 말해요 미안해요

소중한 친구가 있었죠 내 숨소리보다 가깝게 느꼈죠

피아노와 통기타 멜로디로 꿈을 채웠고

현실보다 그 사람은 음악을 사랑했었죠

말없이 다가오는 어둠의 손짓도

미소로 답하고 서글프게 노랠 불렀죠

거친 음성으로 음악에 기대고

고독에 고통마저 곱씹어 삼키죠

내 사랑 언제나 그대 내 곁에

비처럼 음악처럼 남아주오 어둔 새벽에

등불처럼 비춰 골목길 넋두리

자만했던 현실에 찌든 목소리 마치

물처럼 증발해 사라진 그대여

비 오는 날의 수채화의 그댈 빗대어 간직하고 있다면

웃어주오 아스라이 사라질 미소라도 주오

사랑했단 말없이 그리웠단 말없이 고마웠단 말없이

그대를 바라봤죠

사랑했단 말없이 그리웠단 말없이

이제야 말해요 미안해요(hey 미안해요)

하늘이 버린 새가 희망 없이

한 소년의 손바닥 위에서 말없이

한없이 힘없이 날갯짓을 하듯이

이렇게 끝없이 살아갈는지--

사랑했단 말없이 그리웠단 말없이 고마웠단 말없이

그대를 바라봤죠

사랑했단 말없이 그리웠단 말없이

이제야 말해요 미안해요


에픽하이의 노래 ‹11월 1일› 가사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나는 글을 쓴다. 모든 고민과 생각에 대한 불안, 함부로 내뱉은 말들에 대한 반성으로 글을 쓴다. 시를 쓴다거나 블로그에 글을 쓴다거나 지금 쓰고 있는 이 산문도 나에게는 모두 그런 생각에서 나오는 죄책감이 섞인 문장과 글이다. 이렇게 쓰는 것이 나를 해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동안은 계속해서 과거를 되새기고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죄책감과 반성은 내가 견뎌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느껴지는데, 쓰는 글의 대부분은 (내용이나 주제가 다를지라도) 군대 안에서 했던 생각의 파편들이다. 나를 떠난 사람을 생각하거나 나와 관계된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는 더욱더 그렇다.

   무력하게도, 나는 군대에서 자살을 결심한 적 있다. 이 얘기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며 함부로 내뱉은 적이 있었고, 존경하는 교수님의 시집 출간기념회에서도, 신춘문예 당선 시상식장에서도 담담하게 말한 적이 있다. 가혹 행위를 당했던 이병 생활에는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 나에게 있는 것으로 합리화됐다. 나는 스스로 문제적 인간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했고, 당직 사관의 눈을 피해 새벽에 죽으려 시도했었다. 그러나 화장실 문을 잠근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건 락스도 세제도 아닌,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과 내 삶에 대한 반성이었다. 군 생활을 이어나간 나는, 전역을 연기해 부사관으로 반년을 더 복무했다. 후임들이 건강하게 전역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였고, 그 집단에 속해 나눌 수 있는 인정人情에 마음이 쓰여서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생각하며 나를 더 단련하고 싶었는데, 그의 이름은 채홍이었다. 채홍은 강해지고 싶어 해병대에 온 청년이었고 순한 눈매와 얼굴을 가진 후임이었다. 그는 나와 내 동기들의 후임으로 오고 싶어 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워했던 이발병이었다. 가혹 행위로 인해 그가 죽고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우울은, 깊은 바다에 내던져져 끝없이 가라앉는 돌처럼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보낸 27개월의 군 생활은 내 인생의 변곡점이자 내 삶의 모든 것을 점검하고 계획하게 한 시간이었다.

   전역 후에는 시를 쓰다가도 아버지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교 방학이 시작되면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고 건축일을 도왔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술을 마시는 시간이 많았다. 시내와 떨어진 산골에 집이 있었고, 중·고등학교 친구들도 모두 흩어진 후였기에 나와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보다 아버지와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더 편안하고 좋다. 물론 내가 툭하면 술 한잔하고 싶다 하는 것을 아버지는 나무라지만.


-2020년, 계간 «시인시대» 여름호에 발표한 산문 중(일부 수정).


  어느 순간에는 분명 없애야 할 기록이었다. 며칠 전, 나는 27개월의 군 생활 동안 내가 써나갔던 모든 메모와 일기를 불태웠다. 여섯 권의 수첩을 태웠다. 그래도 마지막이다, 하면서 한 번 펼쳐보고선 타오르는 불속으로 집어넣었다. 연통에서는 불길이 회오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손으로 없애야지라는 생각을 그동안 많이도 했었다. 수첩 안에는 내가 군 생활 동안 했던 문학에 대한 고민, 욕먹고 맞던 시절의 문장들, 자살에 대한 충동,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기록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났다. 마음을 나누고 같이 있어준 동기들, 나를 욕하고 때린 선임들, 나를 따랐던 후임들, 부사관 동기들, 간부 선배들 그리고 채홍. 그 친구에 대한 기록을 수첩에 적을 수 없었던 것도 슬픈 일이다. 하고 생각했다. 연락을 지속하지 않았더라도, 살아 있었더라면,  너는 뭘 하고 지내고 있을까. 하고 가끔 생각이라도 했겠지. 불가능한 일이다.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때, 두려움으로 가득 차 긍정적인 단어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을 때. 그런 때의 기록들이 많았다. 불행에 가까워져 있다고 생각할 때만 써나갔던 생각과 문장들. 어느 부분은 통째로 불길 속으로 집어넣기도 했다. 기록이 아니라 치욕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일까. 다 타선 하얗게 포슬포슬 쌓인 잿더미를 보면서 그래도 시원하다, 싶었다. 여섯 권의 무게가 참 무거웠는데.

(...)

  그래도 이제는. 밝았던 날들의 사진만 남아있다.


-2022년 7월 10일의 일기.



모든 종류의 죽음을 생각한다.


- 2024년 11월 1일.


2024년 11월 2일-


모든 종류의 죽음을 생각한다. 에픽하이가 부른 노래 <11월 1일>은 채홍이 죽은 이후 많이 들었던 노래였고 2014년의 겨울과 2015년 봄, 부사관으로 복무하며 관사 숙소에서 자주 들으며 잠들었던 노래 중 한 곡이다. <11월 1일>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타블로가 몇 사람에 대한 추억과 기억에 헌정하는 노래다. 1987년 11월 1일 교통사고로 죽은 유재하와 1990년 11월 1일 간경화로 죽은 김현식 그리고 타블로가 한 번은 라디오에서 언급했던 죽은 친구 그리고 원티드의 멤버 김재석이 피처링했지만 이 노래가 발표된 직후인 2004년 8월 11일 교통사고로 죽은 원티드 멤버 서재호. 가사 중간중간 유재하와 김현식이 부른 노래의 제목이 있고,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모든 종류의 죽음을 생각했다. 채홍까지도.


군생활을 연장해서 하사로 전역한 건, 종종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이 되지만 동시에 종종 내 눈동자가 너무 깊은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될 때도 있다. 그래서 종종 거울에서 내 눈동자를 본다. 갈색이 짙은 내 눈동자에 상처들이 너무 깊이 박혀있지는 않은지, 쏟아낼 것처럼 많은 눈물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군대를 기점으로 정체성을 분리한다. 새롭게 살고자 했다. 많은 부분에서 성격을 개조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사이에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참았다가 터뜨린 것만큼 그만큼의 애정을 구걸하기도 했고 상처를 뱉어내기도 했다.


하늘이 버린 새가 희망 없이

한 소년의 손바닥 위에서 말없이

한없이 힘없이 날갯짓을 하듯이


반복되는 가사가 주는 위안은, 말로 기억하는 동시에 머리로 기록하게 해주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어느 날은 노래를 듣다가 잠들었는데, 흘러가는 노래에 이 노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날 꿈을 꾸고 깨어났을 때 쓴 문장들을 시로 고친 건. 어쩌면 한 번은 또 터져야 했던 상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름다운 후임병에게               



    사는 게 이미 여러 번 죽는 일이다.


   검은 태양이 마음의 하늘을 뒤덮어간다. 내일은 울지 않았으면 하는 절박으로 나는 서 있다. 이곳에선 습성처럼 매질을 당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어깨엔 돌덩이가 하나씩 얹혀 있다.


   믿음만큼 분명한 위협이 방아쇠를 당기게 한다. 너의 기일이 왔구나 생각하다 나는 잠들었다. 꿈속에선 검은 군대가 무리 지어 울타리를 넘고, 전깃줄 위로 까마귀들이 날아와 앉았다. 며칠 마음이 약해졌다. 가위에 눌린 결박 같았다.


   견디면서 마음은 마모되고 무마된다. 네가 들이받았다는 나무도 이미, 여러 번 죽다 살아난 일이다. 그래

   뿌리를 보이며 자란 나무가 밤새 하늘을 보고 서 있다. 나무를 보다 네 생각이 났다.


   잊고 살다가도 한 번은 심장을 찌르는 일


   도피할 수 없는 죄와

   유예되는 처분이다.



-2019년, 계간 «예술가» 여름호에 발표한 시 <나의 아름다운 후임병에게>.


결국은 커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의 크기만큼,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내가 쓰는 문장의 힘을 믿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같이 느껴진다.


낮아지는 기분만큼 마음을 잘 보듬고 다듬을 수 있기를. 그러면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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