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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선 Oct 26. 2024

혼자라도

에픽하이로 문학하기 «혼자라도»(Feat. 알렉스, 호란)




에픽하이 2집 «High Society»(2004.07.26.)중에서 ‹혼자라도(Feat. 알렉스, 호란 of 클래지콰이)*.(*작사: 타블로, 미쓰라진 / 작곡:J-Win)

https://youtu.be/3RdyG1r2WJ4?si=Fhw_Bn1QIFOBX-EJ


-여보세요

-미쓰라 모하니

-나? 편지 써

-누구한테

-있잖아 걔

-야. 너 아직도 걔생각하냐? 잊어라 쫌

-야 나와나와. 타블로는 뭐하냐?

-아마.. 일촌파도 타고 있을걸?

-아.. 야 니 좋아하는 그 작가 전시회 한다는데 같이 갈래?

-에휴.. 오늘은 그냥 혼자 있을래..


태양의 손길이 구름의 커튼치고

햇살이 휘날리는 붉은 머릿결을 빗고

세상의 창가에 기대 날 바라봐요...

비록 혼자라도

아무도 없는 커피숍에 아침 내내

책 한 권에 깊게 빠져있다 때마침 내게 반갑게

전화 오는 고등학교 친구와

온 세상을 둘만의 잡담에 담고 싶구나

해가 떠나가면서 달빛과 별의 집회를

바라보면서 어스름에 젖은 깃펜을

꼭 쥐고 저 먼 지평선의 오선지로

내 삶의 멜랑꼴리 멜로디 그려보네

둘이서 걷던 거리가 나눠진 후에도

혼자서 걷는 이 거리가 외롭지는 않죠...

비록 혼자라도...

따스한 햇살과의 입맞춤에 여름 향기는

바람을 타고 나의 품에 와

안겨 나 긴 밤꿈에 악몽을 털어내고야

긴 하품해 CDP와 CD와 디카

나 혼자만이 보는 색다른 시야

낡은 가방 속 이야기를 위한 이 여행

시와 나 하나되는 시간 지하철 2, 3 호선에 맡긴 몸

홍대와 신촌, 압구정, 인사동

그 어디라도 낡은 가방 나의 손

ma soul만 있다면 괜찮아 혼자라도

둘이서 걷던 거리가 나눠진 후에도

혼자서 걷는 이 거리가 외롭지는 않죠...

비록 혼자라도...

혼자라도 everything's gonna be okay,

van gogh와 나누는 밤의 카페 au lait

[남몰래] 콜트레인의 기차표 사볼래,

[Hemingway] 따라 머나먼 바다로 떠나볼래

난 행복해... 외로움을 삼키네,

나만의 와인 빛깔의 자유 속에 만취돼

하루 이틀 변함없이 연주하네

비틀비틀거리는 고독의 안단테

한잔의 그린티 물결은 작게 원을

그리고 혼자라도 오래간만에

산책하네 고독과 함께 벤치 위에 나란히 할 때 노래해

자연과 도시 멜로디 먼발치 네온사인

붉은 노을빛 모두가

아름다워 나 혼자 보기는

아까와 그대와 함께 하고파

바다를 걷던 그림자 다 잊을 수가 있을까

( 잊을 수 없을까? )

파란 해바라기가 다시 웃을 수 있을까

( 웃을 순 없을까? )

둘이서 걷던 거리가 나눠진 후에도

혼자서 걷는 이 거리가 외롭지는 않죠...

비록 혼자라도...

혼자라도 웃으며 말하고 아무도 모르게 오늘도

나 혼자라도 웃으며 말하고 아무도 모르게 오늘도


에픽하이의 노래 ‹혼자라도› 가사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좋은 풍경을 보고 집으로 들어오거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꼭 마음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시골에 있는 나를 누나와 매형은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인천과 서울 구경을 시켜주곤 했는데, 그런 때는 정말로 고맙고 감사하고 나 스스로도 밝은 시간을 보냈는데. 중요한 순간은 집에 돌아오면 있었다. 평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행복한 시간 뒤의 적막, 무언가 내가 균형을 잃고 행복함에 취했다 깨버린 듯한 기분. 그런 기분을 견디는 것이 내 안의 마음에서는 힘들기도 했다.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친구들 속에 섞여 축제를 즐기고 돌아오거나, 사람이 많은 곳을 갔다 오면, 연애를 하고 좋은 곳을 다녀오고 해도, 집으로 돌아오면 가면을 벗는 기분. 대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서야 나는 이런 마음을 '평온함을 찾는다' 혹은 '평온함으로 돌아온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런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마도. 평온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고 평온하세요, 평온하셨으면 합니다,라는 안부를 자주 쓰게 된 것도.


큰 슬픔을 피하기 위해, 어두워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같다. 나는 평화롭다, 나는 평온하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지지 않는다, 나는 잘 지낼 수 있다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어둠을 좋아했는데, 어두운 공간에 있어야 용기가 나고 했었는데 지금도 그런가 생각한다. 그럴 수 있지. 이런 표현으로 또 큰 슬픔이 오려는 것을 피해 본다. 이 정도 온 것만 해도 잘한 거겠지,라는 자조적인 물음을 종종 던져보기도 한다.


이것도 참 희한한 일이다. 에픽하이의 노래 <혼자라도>를 자주 들었던 것도, 실은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는 통학하기 위해 오른 버스 안에서 창가에 앉아 많이 들었고 대학생 때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카페 창가에 앉아서 그게 아니면 집 안에서 빗소리를 배경으로 이 노래를 듣기도 했다. 그러면 희한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책을 읽거나 쓰려던 글을 쓸 수 있었다. 나를 내 상황을 외로움이나 쓸쓸함에서 비껴가게 해주는, 그래 뭐 어때, 혼자라도 괜찮아, 이게 평온해, 라며 토닥여주는 느낌이었다.


주말이면 그런 시간을 자주 갖기도 했다. 가사에서처럼, 아침에 사람이 적은 카페에 가서 책 한 권을 가져가 읽는 시간을 좋아했고, 오후에 느지막이 간다면 카페 창밖을 보다 해가 떠나며 달빛이 들어오는 순간을 사랑했다.


평온으로 돌아오는 시간, 기분이 급격히 낮아지지도, 급격히 높아지지도 않는 고요함의 안정이 중요했던 것 같다 내겐.


친구와 같이 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다뤘던 책들 중에는 «에피쿠로스 쾌락»이라는 책이 있다. 우리가 찾아야 할 쾌락은 지금 당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의식하고 있음"의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는 에피쿠로스 쾌락에서, 눈에 밟혔던 문장은 이렇다.

"우리는 젊은이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았던 노인을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젊은이는 혈기왕성해서 생각이 수시로 바뀌고 우연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살아가는 반면, 노인은 이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좋은 것을 안전한 곳으로 가져와서, 마치 항구에 닻을 내린 것처럼 노령에 닻을 내리고서 감사한 마음으로 회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쾌락», 에피쿠로스, 현대 지성, 140p.

에픽하이의 노래에선 회상하는 가사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가치를 높이 보는 노래가 많기도 한데, 그런 몇 곡의 노래를 나는 "건강하게 의식하고 있음"의 노래라고 대입해보기도 한다. 이전에 여기서 다룬 노래 <당신의 조각들>과 <10년 뒤에>도 그렇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에 끌려 에픽하이를 좋아하게 됐지만, 그런 노래들로 꾸려진 내 플레이리스트는 나를 건강하게 나아가도록 하는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다.


<에피쿠로스 쾌락>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었던 부분을 하나 더 얘기하면, 에피쿠로스의 제자들이 말한 '천체의 논리'였다.

"달의 빛은 달 자신에게서 생긴 것일 수도 있고, 해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도 어떤 것의 빛은 자신에게서 생겼고, 어떤 것의 빛은 다른 것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나 분명한 증거와 일치하지 않는 것을 근거 없이 중시하여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의 설명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천체 현상은 여러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고, 각각의 설명을 밑받침해 주는 근거와 원인들이 존재함을 기억하기만 한다면, 이렇게 천체 현상을 여러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 쾌락», 에피쿠로스, 현대 지성, 83p.

달과 별이라는 기표와 기의에 쉽게 빠져드는 나한테는 매력적인 논리였다. 내 성격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내가 빛을 낸다면 그 빛은 내가 스스로 내는 빛인지 주변에서 얻은 빛으로 발하고 있는 것인지 낮은 기분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는 말이었다.


고향에 내려가서 천체망원경을 펴고 달을 관찰하며 밤을 보내고도 싶었던 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시간을 보내면서 이제는 서른이라는 나이만큼이나 내가 하는 일들에 충분히 감내하고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보내게 될 시간을 잘 견뎌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잘 견디고 스스로를 훈련해 보고 스스로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 


어떤 식으로든, 내게 빛이 있다면 그 빛을 잘 간직하고 내게 있는 빛과 내 마음이 같이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맑은 하늘을 보는 것에 마음이 훤해지기도 쓸쓸해지기도,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걷는 것에도 바람이 마음 한쪽을 비켜나가는 것 같은 계절이다.


(가을을 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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