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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비타스 Jan 06. 2022

Andante e Cantabile

시간과 시간을 엮어

 시간이 지나갑니다.



 째각째각째각.



 초침 돌아가는 소리에 히스테리가 걸릴 듯합니다. 초초한 마음에 손발은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일상에 볕들 날 없네요. 그 마음 숨기려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회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집에 벽걸이 시계 하나 걸어두지 않습니다. 아날로그 좋아하면서 이 부분에서만은 지디 털이 최고라 우겨봅니다. 시간이야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더 정확하다는 말로 얼버무리지만 그건 핑계일 뿐입니다. 결국 초침 소리에 공황을 앓고 마는. 절대 닮고 싶지 않던 그 사람이 돼있습니다.



후크 선장.



 어린 시절 읽었던 피터팬에서 후크선장은 시계 소리를 두려워했습니다. 시계를 삼킨 악어를 두려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 자체를 두려워했던 걸까요? 진실이 무엇이든 기어코 삼천포로 빠지는 저는 어쩐지 거기엔 신경을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악어가 안타까웠거든요. 오랜 시간 시계를 뱃속에 품고 산다니 패혈증이라도 생기면 죽고 말 텐데 하고 말입니다. 그 와중에 그 동화 속에 솜씨 좋은 수의사가 있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저 어린 시절 엉뚱한 생각입니다만, 확실한 한 가지는 이 시계 녀석은 후크선장에게도 악어에게도 재난이었다는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시간이란 재난은 제게도 찾아왔습니다. 바로 첫 위기가 바로 이 시간과 시간의 관계를 밝히는 겁니다. 음악의 가장 기본이죠? 가볍게 생각했던  음표의 길이가 제 첫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음표는 시간의 비율을 나타내죠. 온음표는 마디 안에서 온전한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2분 음표는 온음표의 1/2만큼 시간을 가지고 있죠. 4분 음표는 온음표의 1/4. 8분 음표는 온음표의 1/8. 16분 음표는 온음표의 1/16.  32분 음표는 온음표의 1/32 비율의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음악을 배울 때, 온음표는 단순하게 4박자. 2분 음표는 2박자. 4분 음표는 1박자. 이렇게 배우잖아요. 이건 4분 계열의 박자표를 적용했을 때 기준이에요. 그러니 단순하게 이렇게 생각하면 낭패 보기 쉽죠. 그럼 반대로 생각해 보죠. 2분 음표가 몇 개가 있어야 온음표와 같은 길이감이 생길까요?"


 "2개가 있어야 해요."


 "네 맞아요. 단순한 산수죠. 그럼 계속 계산해볼까요?"



 하시며 하나하나 적용해봅니다. 숫자가 커지고 8분 음표와 32분 음표의 관계, 16분 음표와 2분 음표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니 계산기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암산이 유난히 약한 저는 한 숨만 나오다 결국 시 묵해 져서 대답 소리마저 기어들어갑니다.



 "괜찮아요. 천천히 풀어보죠."



 용기를 주시는 말씀에 표를 보며 더듬더듬 대답합니다.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죠?"


 "네."



 하고 기운이 쭉 빠져 시무룩하게 대답하니 그저 웃음으로 화답해주십니다.



 "그래도 이게 가장 중요해요. 음악은 결국 시간의 예술이거든요. 음표들이 갖는 음의 길이감은 마디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얼마의 비율로 존재하느냐의 문제예요. 그 각기 다른 비율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재료가 되죠. 같은 도로만 이루어진 음악을 연주해도 4/4 박자인 한 마디 안에서 2분 음표가 2개로 이루어진 것과, 4분 음표가 4개로 이루어진 음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죠. 같은 4/4박자인데도 말이에요."



 수업은 이대로 마무리되었지만, 시간이란 것은 계속 저를 괴롭혔습니다. 쉼표가 나오고, 점음표들이 나오고, 어떤 새로운 것들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이 시간의 길이감을 잡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머릿속에선 그려져도 손가락이 따라주지 않기도 하고, 처음부터 음을 제대로 가늠하는 것도 버겁습니다.



 음악에게 시간은 비단 악보 속에서만 괴롭히는 존재는 아닙니다. 사실 시간은 음악의 근본일지도 모릅니다.



 "음악은 찰나의 예술이에요. 글이나 미술도 능숙해지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연습을 하지만, 한 작품이 세상에 선보일 때까지 수정을 거치고 고민을 하며, 정해진 시간까지 완성을 시키면 됩니다. 그럼 독자는 완성된 그 자체를 즐기면 되죠. 음악은 어떨까요? 요즘은 음원이 있으니 그래도 그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졌다 말할 수 있겠지만, 음악 무대에서 선보이는 시간 그 자체가 진정한 모습이에요. 음악회에 가면 느껴질 거예요. CD나 음원으로 들었을 때와 음악당 안에서 들었을 때가 다르다는 것을 말이죠. 관객의 호흡. 음악가의 컨디션. 음악당의 온도와 습도. 피아노 조율 상태. 그 어떤 것이든 음악에 영향을 줍니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모든 것이 음악을 만들죠. 연주자는 어떤가요? 아무리 내가 수십만 번을 연습해도 무대 위에서 실패한다면 그건 실패. 한 번을 연습하지 않았어도 무대 위에서 성공한다면 그 무대는 성공인 거예요. 얄궂지 않나요? 보이지 않는 노력은 청자에게 중요한 게 아니죠. 실력은 딱 그 순간 결정됩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 그래서 음악가들이 좀 예민하고 성격도 날카롭고 괴팍하기도 해요. 내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공포를 안고 사니까요. 그래도 음악가들이 연습을 하는 건, 확률이라는 불분명한 것에 기대어 실패 확률을 줄이고, 더 완벽한 연주와 호흡을 유지하기 위한 연구를 위해서예요. 그것이 보상받을지 없을지 그건 몰라요. 도박이죠. 그저 운에 맡기고, 하루도 허투루 하지 않고 음악과 마주하며 연습하는 자신을 믿는  것. 그게 무대에 오르는 순간 반드시 찾아올 불안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그래도 그 불안은 사라지지 않겠지만요. 그러니 음악가에게 필요한 또 다른 자질은 시간을 즐기며 평정심을 가지고 실수에 위트 있는 농담을 던지는 대담함과 여유가 필요하죠. 도박사이고 사기꾼이기도 해요. 시간을 즐기세요. 우리는 손가락으로 시간의 간격을 통제하고 절제하며 시간의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니, 이 이야기가 귓가에서 맴돌아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음표가 가지는 시간들이 모여 세상의 모든 가치와 감정을 노래합니다. 그것도 찰나의 순간을 빌어 짧은 시간에 감동을 주고 행복을 선물하는 거예요. 한 여름밤의 꿈처럼 그 시간 덧없게 사라지겠지만, 그 시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한 번씩 떠올리면 미소를 지을 겁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요. 순간적으로 왔다가 사라져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 내가 존재하는 시간과 시간을 엮어 연주하는 음악. 그게 인생이 아닐까요?



 그 연주가 항상 성공일 수도, 항상 실패일 수도 없지만 우리는 매일 살아가며 꿈꾸는 찰나의 순간을 위해 삶을 고민하고 연습하며 살아가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음악가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금 내가 가진 소리가 내 귀에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운 좋게 최고의 소리를 내고 있을지 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죽는 날까지 빠르고 느리고 달리는 멋진 소나타를 연주하는 거죠. 어때요? 당신의 손엔 어떤 악기가 쥐어져 있나요? 저와 함께 연주해 보지 않으실래요? 합주로 독주로 나만의 음색을 내는 하루를 말이에요. 인생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며 살아가는 모든 음악가에게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축복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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