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ante e Cantabile
별의 목소리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편안한가요?
출처를 알 수 없는 심리테스트를 하다 이 질문이 다시금 제게 묻습니다. 언제가 좋더라? 그걸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을까? 하고요.
제 하루 컨디션을 보면 아침과 오후가 그나마 좋은 편입니다. 그것도 해가 화창한 날이 그렇고, 우중충하거나 비가 내리는 날이면 두통과 피로함으로 영 맥을 못 춥니다. 아무리 좋은 날이라도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사라져 가면 갑자기 방전된 장난감처럼 축 쳐지고 마는데 그 상태로 밤까지 쭉 늘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주변에서 제 컨디션을 일컬어 '효율성 나쁜 태양광 전지'라는 말을 합니다. 반박할 수 없습니다.
제 컨디션과 별개로 호불호를 따지라고 하면 비 오는 날이 좋고 눈 내리는 날이 좋고, 여우비 내리는 날이 좋죠. 시간은 낮보단 밤이 좋고 푸르게 물들어 마지막 별을 띄우는 새벽이 좋습니다.
제 이야기에 유독 밤이 많은 이유는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하고 즐기는 탓도 있습니다. 낮에는 소리가 너무 많아 혼란스럽고, 세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굳게 잡아두는 행위만으로 고달파, 생각을 즐기는 것이 사치가 됩니다. 그러니 연습은 아침과 낮이 가장 좋습니다. 생각을 줄이고 좋은 컨디션으로 집중해 그저 악보와 마주 보고 '천천히. 명확하고 정확하게. 음 하나하나 정성스럽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가 좋죠.
하지만 밤이 되면 세상은 고요해집니다. 낮동안 시달리던 마음이 밤공기와 만나며 차갑게 식어갑니다. 그럼 그 차가운 바람이 그러는 겁니다. '괜찮다. 식어도 좋다.'라고 말이죠. 슈베르트의 피아노 곡을 들으며 창가에 기대 하늘을 바라보면 어떤 TV 프로그램보다 재밌습니다.
별을 바라보며 이 음악에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를 들려달라 조르고 조르면 같은 음악이라도 날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음 맞는 이야기꾼을 만나 시간을 보내니, 가끔은 침대에서 잠을 청하기보다 친구의 곁에 머물고 싶어 잠드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내일을 이어가야 하니 이불 속에 들어가 억지로 눈을 감고 홀로 씁쓸한 마음을 삼킵니다.
다행일까요? 이 시간을 아쉬워하는 건 비단 저뿐만이 아니었던지 소곤거리며 마음을 흔들어 깨웁니다.
빛은 별과 달빛으로 충분한 깊은 밤. 긴긴밤 친구와 대화합니다. 피아노 의자를 창가에 대고 벽에 머리를 기대고 무릎을 접어 팔로 감싸 안고 눈을 감으면 들리는 파도소리와 바람. 그리고 집중해보세요. 눈을 감고 가만히. 어떤 음악도 필요 없죠. 진공의 세상에서 들려오는 선율.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얇고 팽팽한 비단실 하나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르면 들리는 소리. 별은 현의 소리를 닮았죠.
별의 목소리.
별과 나누는 수다는 침묵입니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대화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소개할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죠. 우리는 존재하기에 만났고 존재하고 있으니 교류하니까요. 아무리 멀리 있어도 우리는 서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우리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몇 평 아파트. 어떤 자동차. 어떤 자격증. 어떤 연봉. 그것들은 나와 그가 친구가 되는 조건이 아니죠. 서로가 서로의 현을 조화롭게만 튕길 수 있다면 숫자놀음이 뭐가 대수인가요? 그저 그 숫자는 참된 지기를 만남에 방해가 될 뿐이죠.
별은 저 또한 별이라 여겨주죠. 별과 전 형태가 다르지만 같은 시작에서 나왔으니 우린 다 같은 별이라 말해줍니다. 그게 제게 안정을 줍니다.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 달라도 서로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빛나기에 괜찮다는 안도감. 우리는 별이니까 서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러기에 서로를 품을 수 있죠. 모양이 달라도 말이에요.
하지만 제 세상은 나를 증명해야 합니다.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더 찬란하게 빛나기 위해서. 누군가의 위에 서기 위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야 합니다. 누구도 그 증명의 필요를 의심하지 않죠. 그것이 승리의 조건. 세상을 살아가는 법. 그게 유희가 되는 삶. 유희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 놀이가 된 세상. 가슴에 서늘한 슬픔이 피어납니다.
세상은 함께하는 삶을 미워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소원 하나요? 서로를 갈망하면서 서로를 밀어내고, 나와 너의 계급을 나누고, 다른 점을 찾아 혐오하고. 좋은 것은 다 독식하고자 하죠. 이겼으니 당연히 나의 것. 내 손에 쥐어진 것이니 당연히 나의 것. 이 각박함 속에서 싸움보단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자는 말엔 비웃음을 보내죠. 그런 세상은 만들 수 없어! 하고 말입니다. 현실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현실은 부조리하고 각박함을 받아들여 타인은 적이고, 나는 이겨내고 싸워 끝까지 살아남아야 합니다.
나는 세상의 평균임을 증명하고, 약자와 소수자를 만들어 차별하고, 그렇게 살아남은 다수만이 편하다면 아름다운 세상일까요?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또다시 특별함을 증명받아야 합니다. 그럼 다수의 가치는 사라지고, 다수는 약자가 되어 부조리함에 분노해도 그저 주먹을 쥐고 침묵하죠. 언제까지? 언제까지 나는 다수라는 허황된 증명을 세상에 해야 할까요? 언제까지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증명을 세상에 해야 할까요?
증명의 피로를 풀어주는 건 침묵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음악으론 풀어낼 수 없습니다. 그 음악이 제가 사랑하는 클래식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저 원시의 음악. 태초부터 연주되던 별의 노래만이 평안함을 주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세상을 보며 느끼는 갑갑함을 위로받습니다.
새벽녘 어둠은 푸른빛으로 세상 물들이면 별은 고개를 숙여 제게 인사를 합니다. 그럼 저도 겸손히 고개를 숙여 아쉬운 작별을 나누죠. 이별에 서툰 전 눈물이 맺혀 입술은 마르고 목소리가 잠겨 차마 소리 내어 그를 배웅하지 못합니다. 그럼 그는 두 손을 뻗어 제 볼을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합니다.
이별이 아니야.
그저 잠시 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네가 나를 보고 싶다 생각하면 다시금 보일 별.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어.
황금으로 빛나는 태양에 눈이 멀어
너 자신을 잃어버리는 불안에 무겁게 눌리면,
기억해.
언제나 네 곁에 머물고 있어.
그러니 나를 찾기 위한 불안감에 너를 괴롭히지 마.
누군가를 이기려 하지 마.
누군가를 밟고 하찮게 여기지 마.
너는 너로 빛나는 아이.
네가 나를 잊지 않는 한 난 언제나 널 찾을 수 있어.
하며 마음을 껴안습니다.
애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저 답게 살아가야죠. 낮 동안 많은 소리가 절 괴롭혀도 당당할 수 있도록.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은 가슴속에 가득 채워서. 남에게 나를 증명받기보다, 나를 나로 빛나게 하라는 스승의 조언을 다시금 떠올리며 눈을 뜹니다.
아침입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제 눈엔 당신은 아름답게 빛난다는 걸 아시나요?
수줍은 고백을 담아
세상으로 나서는 당신을 배웅합니다.
오늘도 존재하고 있는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당신을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오늘 밤에도 당신을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기다릴게요.
오늘도 조심히, 무사히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