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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비타스 Jan 13. 2022

Andante e Cantabile

세레나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그건 분명 '사랑'일 겁니다. 아니라면 이 사랑이라는 것이 이렇게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히진 않을 겁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태어나 갈망하고 괴롭히고 좌절시키고 고통에 몸무림 치게 만들진 않을 겁니다.



 어렸을 때 배운 사랑은 그저 달콤하고 낭만적인 것이었죠. 동화 속 나오는 공주와 왕자가 역경을 이겨내고 손을 잡고 미래를 약속합니다. 로맨스 결말은 진부하지만, 이 뻔함이 가슴속 산들바람을 일으켜 행복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랑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는 시와 소설, 미술과 춤, 노래 등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의 욕망을 대변하죠. 희극으로, 비극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된 사랑은 모두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혼자라는 건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둘도 없는 장점이죠. 남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고, 공부를 방해받을 일 없으니 좋고, 신경 쓸 일 줄어 좋고. 하지만 좋다, 좋다, 혼자라서 좋다는 나름의 합리화를 하다 보면 허해진 마음이 외로움을 말합니다.



 창가를 두드리는 이는 장난꾸러기 바람이고, 달빛 하나 별 하나 뜨지 않는 시골의 밤은 을씨년스럽습니다. 창문을 열어 답답한 마음 공기에 내뱉어 털어내 보아도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깊은 밤에도 귤밭에 핀 꽃은 하얗게 내려 로맨틱한 향기를 내뿜으니 내 님 향한 생각이 더 간절해지죠.



 음악을 들을까요?

 피아노에 앉아 연습에 열중할까요?

 책을 읽을까요?



 한 번 외로움이라는 솔직함이 찾아오면 모든 건 손에서 멀어지고 마음만 허공으로 떠오릅니다. 그러니  하나 태우며 창가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는 겁니다. 그곳에 내 사랑이 있을 리 만무해도 하늘에 수많은 고백을 해보는 겁니다.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성숙해진다 하는데. 저는 그 많은 연애를 하면서 과연 몇 번의 사랑을 했을까요? 아직도 마음이 어린 저는 사랑을 했다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연애를 글로 배웠습니다. 마땅히 여자 친구라면 해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에만 집중했더니, 사랑이란 일과 같다는 공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연이 끝나면 남은 것은 그저 해방의 기쁨. 참 못난 연을 맺었습니다. 참 잔인한 연을 맺었습니다. 외롭기 싫다는 욕구를 혼자 감당하지 못해 타인에게 상처 낸 어린 욕심을 꾸짖습니다.



 내 마음 상대에게 제대로 전한 적 있던가요?

 내 마음 상대에게 제대로 열어보인 적 있을까요?



 가난한 마음 들키기 싫어 허풍 속에 나를 숨기고, 나 조차도 모르는 내 진심 들키기 싫어 연기하고. 언니는 제게 사랑이 참 많다 하는데 제 영혼에 사랑 한 조각 있기는 할까요? 이런 저도 누군가를 맘에 품을 자격 있을까요?



 창가에 기대 찬 바람맞으며 귤꽃 향기에 취한 탓일까요?



 눈은 까맣게 물든 세상을 둘러봅니다. 저는 그 흔한 이상형 하나가 없습니다. 상대의 키가 어쩌고, 얼굴이 쩌고. 직업은 뭐고, 성격은 어떻고. 사랑을 꿈꾸던 학창 시절엔 어떤 모습이라도 있던 게 이제는 윤곽도 잡지 못합니다. 사랑이라는 기대도 사라진 마른 마음이 가슴속에 불어 모래알만 굴립니다. 귀곡성만 만들어 울어댑니다.  



 그러니 이건 별도 달도 모르게 저와 귤 꽃이 나누는 장난입니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그저 마음대로 떠오르는 대로, 욕심 가득한 이상형을 속삭입니다. 허공에 두 번째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별을 찍으며 소원을 담습니다. 꽃에 담은 이상은 바람이 실로 엮어 성좌로 엮어줍니다.



그 사람은 웃는 모습이 따뜻하죠. 손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머리카락은 손가락 사이를 물처럼 흐르죠. 좋은 향기가 납니다. 그의 목소리는 제 귀에는 감미롭게 들리죠. 적당히 느린 말의 속도. 제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속삭이죠. 그는 지혜롭고 호기심도 많죠. 그의 품은 넓고 포근하죠. 그 품에 제가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가 불러주는 제 이름은 두렵지 않고 설레게 해요. 그는 제게 장난치기를 즐길 거예요. 조금은 짓궂어도 폭력적이진 않죠. 그러니 제게 장난쳐도 괜찮아요. 영혼을 나눈 상대를 만난 듯 반갑고, 맞잡은 손이 서로를 상처 입히는 일이 생기더라도 입술로 아픔을 달랠 수 있죠.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을 테니 입으로 호호 불어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보듬을 수 있어요. 저의 세상에 다른 사람은 필요 없죠.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합니다. 그런 연을 맺길 바랍니다. 매듭을 지어 세상을 바라보니 귤밭에 뿌려진 꽃은 별빛으로 빛납니다.



 이런 인연 세상에 있을까요?



 잠깐의 방황에 외로움은 그리움으로 변해갑니다.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를 그 사람이 너무나 그리워 보고 싶습니다. 만난다면, 지금 당장 만난다면 그 품에 안겨 왜 이렇게 나를 기다리게 했느냐며 화를 내고 칭얼거릴 겁니다. 그가 제 머리를 쓰다듬고 꼭 껴안아 다독여준다면 부끄러움에 가만히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겠죠. 기다림이 뭐가 대수일까요? 함께하는 시간이 축복이죠. 만남이 제 인생 최고의 선물인걸요.


 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가슴으로 부르는 세레나데.

 


 피아노를 배워 무엇을 연주할까요?



  꽃 향 가득한 늦은 봄날, 쇼팽의 녹턴이 잘 어울릴 겁니다. 밤에 물들어 자장가처럼 녹아드는 사랑노래. 말이 부족한 저를 대신해 신의 언어를 빌어 가슴속 가득한 솔직한 마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가감도 없이 담담하게, 조금은 수줍게. 건반에서 연주되는 신의 언어로 고백합니다.



 아직 성숙되지 않은 이 어린 사랑을 피워낼 날이 올까요? 그는 어떤 음악을 좋아할까요? 그 음악 제가 연주할 수 있는 날 올까요? 조심스럽고 천천히. 소중하고 명확하게. 언젠가 그 앞에서 이 말을 있는 힘껏 전해보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맺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이죠.

 그래도 당신이 아니라 하면 이 마음 고이 접을 거예요.

 욕심이 당신을 괴롭게 하는 건 싫어요.

 제게는 어렵기만 한 이 감정.

 가슴에서 부풀어 피어난 하얀 귤 꽃을

  손에 담아 겸손하게 당신에게 보냅니다.

 



 이 마음 연주에 담아 전할 날 올까요?

 별 하나 뜨지 않는 밤.

 귤 꽃 향기에 취해 꿈을 꿨습니다.

 풀어낸 외로움은 다시 거둬 가슴에 눌러 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오늘의 미숙함을 연주합니다.

 내 사랑도 내 연주도 꽃 피는 그날 올까요?

 허락해 주신다면 욕심내도 괜찮을까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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