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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비타스 Dec 23. 2021

Andante e Cantavile

그래도 꿈꿀 권리

 인간이 꿈 꿀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몇 살까지 허용될까요?




 4회기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문득 제게 이런 말을 꺼내셨어요.



 "리사이틀해보고 싶지 않아요?"

 

 "네? 그게... 뭘까요?"


 "피아노 독주회요. 무대 위에서. 해보고 싶지 않아요?"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질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리사이틀, 대학원 졸업 때 하거든요."

 

 "아......"

 

 "1시간을 온전히 혼자 프로그램을 짜고, 연주를 끌고 가는 거죠."

 


 사실 그 순간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말이 나오고 말았죠.



 "잘 모르겠어요. 콩쿠르 나가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콩쿠르요?"


 "네, 부러웠거든요. 콩쿠르 나가는 친구들. 동생들."


 "아, 그런데 나갈 수 있는 콩쿠르가."


 "이제는 없어요. 나이 제한이 있으니까요."



하고 말을 끝냈는데 갑자기 가슴이 서늘합니다. 이 마음이 뭘까요? 부러워하던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피아노를 가진 친척을 부러워했고, 음악을 하는 친구를 부러워했고 질투했던 날들. 어떤 예술이든 도전하고 있는 친구들과 동생들이 부럽고 미웠던 못난 마음이 서늘한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마스크 밑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고 눈으론 웃어 보이지만 씁쓸함은 사라지지 않아 고개를 숙여 가방을 챙기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콩쿠르는 왜요?"


 "음. 모르겠어요. 부러웠기도 했고, 평가를 받고 싶다고 해야 할지. 뭔가 여기까지 왔다! 하고 지표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럼 차라리 대학 시험을 볼래요? 콩쿠르 보는 기분으로. 붙어도 좋고 떨어져도 좋고."


 "생각 안 해 봤어요."


 "생각해봤으면 좋겠네. 음악을 진지하게 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습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어찌할 줄 모르겠습니다. 손발이 기쁨으로 떨리고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마음이 비눗방울처럼 하늘 위로 울렁거리며 올라갑니다.


 음대라니. 감히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어떤 고백을 들어도 이렇게 설레고 벅차오르는 기분은 느낀 적이 없습니다. 고백을 받은 순간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들떴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낭만을 붙들고 있을 만큼 마음이 단단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여기서도 저를 놔주지 않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끔찍하게도 미워합니다. 원하는 것을 내게 줄 수 있을 만큼 관대하지 않습니다.


 '안정적으로 수강생을 붙들어두고 싶어 하시는 말씀이겠지. 들뜨지 마! 그런 말에.'


 라고 몽둥이를 들어 들뜬 마음을 힘껏 내리칩니다. 눈물이 핑하고 돌았습니다. 마음이 휘두르는 몽둥이에도 통증이 느껴지는 건 확실히 이것도 폭력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이 폭력에 익숙하기 때문에 빨리 눈물을 훔치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계속 선생님의 제안을 몇 번이고 재생하며 조르기 시작합니다. 며칠을 그렇게 고민의 실타래가 엉망이 돼 실마리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언니 이 나이에 음대가 가당키나 할까?


-왜?


-음.. 진지하게 해 보면 어떠냐고 얘기를 들어서.


-해보고 싶어?


-그런 거 같아.


-그럼 해.


-뭐가 그렇게 쉬워?


-뭐가 그렇게 어려워?


-음대잖아. 돈도 많이 들 거고, 나 따위가....


-있잖아 너 따위란 그런 말이 어딨어? 하고 싶어? 하기 싫어? 원해? 원하지 않아? 그걸 먼저 생각해. 언니 경험상 네가 공부할 일이면 돈은 어떻게든 생길 거고 엄마랑 나도 도울 수 있어. 나한테 물을 정도면 이미 고민해봤을 일이지만 하고 싶으면 해. 너는 언제나 네가 하고 싶은 건 뒤로 미뤄왔고, 네 것을 먼저 양보하고 살아왔잖아. 그걸로 병을 얻고. 이제 치유해야 할 시간에 또 네 욕구를 뒤로 미루려고 하지 마.



 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언니는 교육학 박사입니다. 따뜻하고 상냥한 이상적이고 꿈꾸는 교육학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냉철하고 현실적입니다. 이성적인 언니는 가족들에게도 잣대가 엄격한 편이라 괜한 말을 하거나 위로하기 위한 빈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의 대답은 교육학자인 입장에서 하는 충고입니다. 이성적으로 말이죠. 언니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건 역시 전 사회의 눈이 너무 무섭습니다.



 이 나이를 먹어 음악을 시작한다? 그것도 클래식. 그냥 취미도 아니고 대학? 대학원?



 그래도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곳에 가면 서양음악사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 겁니다. 더 많은 음악 세계를 경험할 거고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모르는 클래식 악보도 가득할까요? 작곡가들의 생애도 더 깊게 배울 겁니다. 선생님이 경험하셨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숨겨왔던 욕심이 고개를 슬며시 들어 저를 바라봅니다.



 '해보고 싶잖아. 욕심이 생기잖아. 이상적인 소리.'



'쿵'소리를 내며 숨이 얼어붙었습니다. 이 무슨 감히 얼토당토 없는 생각일까요? 지금 시작해서 어떻게 탐낼까요? 어떻게 이런 마음을 품을까요?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품은 걸까요?


 맞아요! 이 모든 원흉의 시작은 '마우리치오 폴리니'입니다.


 수업 중 우연히 쇼팽 에튀드가 거론되었죠. 쇼팽을 싫어한다 했더니 이유를 물으시기에, 들었던 쇼팽의 음악이 너무 지저분했다라고 했어요. 그러자 이 사람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하셨죠. 기대 없이 폴리니의 쇼팽을 듣는 순간 벅차오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 한 줄기 볼에 옅은 줄을 그리며 떨어지는 겁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깔끔하고 따뜻한, 엄격하면서도 행복함이 느껴지는 폴리니의 연주.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폴리니의 허밍 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타고 흐르는 절제된 아름다움 은하수처럼 흘러갑니다. 감정이 복받쳐 선생님께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너무 고맙습니다. 제게 최고의 선물을 주셨어요.'하고 말하고 싶어 얼마나 참았는지 몰라요. 흥분을 간직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선생님께 너무 아름다웠노라고, 쇼팽은 죄가 없네요. 하고 웃었더니 '가지고 싶죠, 그 음색?'이라는 말에 '네. 정말로'라고 대답한 순간. 


원흉의 시작인 겁니다.


 감히 피아니스트의 소리를 갖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어느새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겁니다.



-아, 그러니까 그냥 하라고!



 언니가 이 정도로 화를 낸다는 건 폭발 직전이라는 신호입니다. 갑갑함이 도를 넘었다는 경고가 날아왔습니다.



-있잖아. 세상이 네 인생 대신 살아줘? 왜 남의눈을 의식해? 네가 음대를 꿈꾸고 노력하면 그들이 죽어? 30대가 넘으면 꿈꿀 권리도 없니? 대학은 10대 20대를 위해 만들었니? 대학이  애들을 기업에 보내려고 만들어졌어? 아냐. 대학은 말이지, 학문을 하기 위한 모든 세대를 위해 만들어졌어. 이게 본질이야. 사람들이 그 본질을 잊고 있지만, 난 내 동생이 사람들이 만든 이상한 현실에 휘둘려서 포기하는 게 더 싫어. 욕할 놈 하라고 해. 네가 당당한데 뭐가 문제야? 네가 무슨 요행을 바라면서 가고 싶다는 것도 아니잖아. 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걸 보고 싶어. 네가 요즘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걸 나도 느껴. 한 번도 본 적 없던 모습이야. 네가 숨기지도 못할 만큼 행복해하는 걸 알아. 그러니까 해. 도전해봐. 도전을 비웃는 사람이 잘못이지 도전하는 사람에겐 죄가 없어. 지금 네 도전으로 피해 입을 가족이 있는 것도 아냐. 그러니 괜찮아. 네가 바라는 꿈을 꿔.




일주일이 지나 선생님께 다시금 여쭤봤습니다.


 "제 나이에 음대가 가당키나 할까요?"


 "왜요? 40대에 들어오시는 분도 계시고 50대, 60대에도 도전하시는 분 계세요. 늦게 꿈을 찾고 열심히 하시는 분들 계시죠."


 "저는 재능도 없고 배움도 느리고."


 "? 누가 그래요? 재능 없다고?"


 "예전에 음악 선생님께서.........."


 "모르겠네요. 그분이 뭘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재능 없지 않아요."


 "사실, 음대 가보고 싶어요."



 제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의 표정이 변했습니다. 굳은 걸까요? 화가 나셨을까요? 역시 제가 너무 빨리 흔들린 걸까요? 잠시 숨을 고르시더니 표정에 엄격함이 피어납니다.



 "어려울 거예요. 힘든 날이 음악을 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날 보다 더 많을 거예요. 울며불며해도 넘지 못할 것 같은 벽에 좌절하는 날도 많아요. 힘들고 외로운 길이에요. 할 수 있어요? 중간에 포기할 생각이면 시작하지 말아요. 난 1~2년 대충 해서 입시곡만 완성시켜 대학에 보낼 생각 없어요. 최소 4년. 6년. 10년이 걸려도 제대로 준비시켜 보낼 거예요. 따라올 수 있어요? 이 오랜 시간을?"


 "저도 그렇게 되길 원해요.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그저 음대만 들어가는 게 목적이 되는 건 원하지 않아요."



 하고 대답하니 이내 환하게 웃으셨죠.



 "그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게요. 같이 가봐요. 우리 오래 보겠네요. 급하게 생각지 말고 천천히 가요. 산책하듯 느린 걸음으로 노래하듯 즐기면서 말이죠."







 그래도 꿈꿀 권리. 몇 살까지 허용될까요?


 글쎄요. 그 대답 누가 해줄 수 있을까요? 언젠가 언니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몇 살까지 꿈꿀 자격이 있을까?라고 말이죠. 언니는 바로 대답했죠.



 "죽는 순간까지."





<붙임말>

 훗날 국내 콩쿠르 중 나이 제한이 풀린 콩쿠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목으로 차용한 <그래도 꿈꿀 권리>는 한동일 작가님의 책 제목입니다. 제가 가장 힘든 시간을 걷는 동안 제게 가장 좋은 스승이 되어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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