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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비타스 Dec 27. 2021

Andante e Cantabile

너 자신을 알라

 목표를 정한 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듣고, 연습시간은 항상 그랬듯 3시간에서 6시간 사이. 이론과 교양서를 찾아보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선생님께 여쭤보았죠. 음악을 듣는 것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좋은 음반을 추천해주시거나 작품을 추천해주시면, 찾아서 들은 후 느낀 점을 적어두기도 했어요. 수업 내용에도 변화는 없었어요.


 변한 게 있다면 음악도 편식하는 습관이 있어 다양한 음악을 들어보기를 권장하셨기 때문에 좀 더 과감하게, 피아니스트보다는 작곡가 중심으로 골라 여러 음악을 들어보았고, 음악회에 직접 가는 등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하게 되었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입니다.


 그리고 수업을 갈 때 옷을 허투루 입지 않는다는 것. '뮤즈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농담 섞인 이유였지만 화장을 하고 깔끔한 차림으로 수업에 임하는 게 예의라 생각했습니다. 옷차림이야 배움에 있어 뭐가 중요하겠냐만은 적어도 해이해지지 않고 진지하게 하겠다는 본인과의 약속 같은 거였어요. 꾸미기 위해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평소에도 더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하니 하루가 꽉 채워지는 기분이 나름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여름에는 오전 6시. 외에는 7시. 해 뜨는 시간에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 먹기 전 한 시간 연습. 아침 먹고 연습. 공부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다시 연습. 점심 후 연습. 이론을 보고 저녁 후 연습. 음악을 시작한 후 이게 9개월 동안 유지하고 있는 하루 루틴입니다. 컨디션이 나빠도 이 시간만큼은 피아노 앞에 앉아서 하늘이라도 보자 라는 심정으로 앉아있죠.


 습관은 이렇게 만들었어도 30년 이상 저와 함께 살아온 마음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잘 되려 하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모이고, 그 사람이 망할 때는 주변에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모인다.



 사실 제 세계는 저 말을 인용할 만큼 크지 않습니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내려오며 이제까지 맺어온 인연 다 끊고, 제주도에서도 외롭다는 이유로 섣불리 인연을 만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사실 사람에게 지쳤고, 나를 사람에게 내보일 자신도 없어 병을 핑계로 집안에 은둔했다는 편이 옳을 겁니다.


 제주에 내려오고 두해 동안은 운동하고 책을 읽고 TV를 보고 이런 하루를 보냈죠. 주변이라는 상황이 없으니 마음에 에너지는 채워지는데, 저를 삶으로 붙들어 놓는 하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지음이 있다면, 혹은 내가 하루를 사랑하며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아침에 눈을 뜨고, 눈을 감일상이 기다려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하지만 제겐 그 하나가 없습니다.

 

 

 마음에 바닥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저는 이 질문에 확실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바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닥은 존재합니다. 모순적인 이 말이 마음 세계에선 통하는 것 같습니다.

 


 앞서 나눴듯 저는 저를 끔찍이도 미워합니다. 저는 저를 미워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본인을 괴롭히라고 하면 누구보다 프로정신을 가지고 저주할 수 있습니다. 쉬워 보이지만 이게 상당히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잘못하면 스스로를 해할 있으니 정신을 온전히 붙들고 미워하는 건 나름 균형을 잡으며 유지해야 하는 고난도 기술입니다. 이게 꾀나 까다롭습니다. 저는 이것을 '분수를 안다'라는 말로 포장하곤 하는데.........



 "야! 분수라는 게 뭔데?"


 언니가 이내 소리칩니다.


 "그래 네가 말하는 분수라는 게 뭔지 말이나 들어보자. 너는 너를 꾀나 객관적으로 본다고 착각하는데, 세상 그 누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남들과 비교하면 객관적이 될까? 아니 그렇지 않아. 인간이 다들 똑같아서 1세 때는 앉아야 하고 5세 전엔 말을 해야 하고 7살에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13세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적어도 22살까지 대학을 들어가서 35세 전에 결혼하고 애 낳고 사회에 충성과 봉사를....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사는 거니 넌? 그래, 대체로 저게 되는 사람이 있어.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 너 같은 애들 말이야. 내가 왜 교육학을 한 줄 알아? 네가 너무 궁금했거든. 아, 솔직히 내 입장에서 너는 좀 외계인 같아. 이해가 안가. 너 고등학교 졸업할 때 선생님이 그랬다고 했지? 다른 아이들 다 무엇이 될지 보여도 너는 하얀 도화지 같아서 모르겠다고. 너를 찾게 되면 다시금 와달라고. 그 선생님 말 참 잘하셨지. 네가 뭐가 없는 게 아냐. 정말 하얀 도화지 같았어. 너는 너를 미워하느라 잘 모르겠지만, 너를 무시한 연인들, 너 왕따 시킨 아이들, 네게 관심 없던 선생님들, 널 무시하는 가족과 친인척 얘기는 다 각설하고. 너를 진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 입장에서 너는 진짜 재능이 많아. 특히 제일 최고의 재능이 뭔지 알아? 넌 사랑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거야. 너는 너를 미워하면서도 너는 참 사랑이 가득한 아이야. 사람 좋아하고, 호기심 많아서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도 많지. 게다가 빠지면  대충이 없어. 집중해서 공부하고 연습하고. 어떻게 저렇게 사나 싶어. 근데 그게 참 멋있고 예쁜 거야. 말에는 배려를 담고, 스쳐가는 인연에도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해. 대학 들어가게 해 주시면 열심히 봉사할게요!라고 했다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하고. 참내. 원래 신과의 약속이라는 건 먹고 땡인데, 넌 또 그걸 지켜. 그렇게 예민하고 비위약한 애가 병자를 씻기고 말을 들어주고. 엄마가 다쳤을 때도 네가 엄마 수발 다 했지. 나는 못했다. 공부를 핑계로 대긴 했어도 난 그게 어렵거든. 그런데 넌 했어. 네가 못한 건 말이지 너를 돌보는 일이었어. 아파서 쓰러질 때까지 너를 혹사했던 거고. 돈 못 버는 일? 생각해보면 그게 너를 죽도록 미워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어. 교육계에 있으면서 느끼는 건 능력 있다 다 잘되는 거 아니야. 능력 없다 다 안되는 거 아니고. 능력 있다 다 그 재능 살리는 것도 아니야. 사람에겐 때가 있는 듯 해. 그게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기준과는 사실 그렇게 많은 부분이 맞지 않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 없이 그게 진리인 듯 그 기준을 쫓으려 그렇게 부단히 노력하고 겉치레를 만들기 위해 살아. 그게 나쁘다는 게 아냐. 하지만 달려오다 멈추게 되는 순간이 와.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왜 여기 와있는지도 모르는 거야. 기준만 바라보며 살았으니, 내면에서 찾아야만 하는 답을 찾기 어려워해. 그러니 매일 힐링이다 뭐다, 어딘가에 집착을 보이거나 무언가를 사는 것으로 보상을 받으려 하지. 그래도 이건 양반이야. 불만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빛나는 사람들을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고, 약자를 찾아 비난하고 배척하고. 내가 괴로운 것을 남 탓하며 이유를 찾지. 자기 마음 허한 걸 가지고 애먼 사람 잡는다는 거야.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니 분수가 뭔데? 니 깜냥이 뭘까? 그 사람들은 너에 대해 얼마나 알까? 너보다 너를 잘 알까? 분수라는 말은 왜 나오는 걸까? 나는 분수를 알라는 말 안에는 계층화를 공고히 하려는 심보가 보여. 너 개천 출신이지? 분수를 알아. 어디에서..... 분수라는 에는 비하의 말이 들어가게 되어있어. 난 교육을 하는 사람이야. 난 이런 걸 깨고 싶어. 분수? 모르면 어때? 도전해보고 실패를 해야 그 데이터가 쌓여서 세상이 재미있게 굴러가지. 안정성? 공무원 된다 다 안전할까? 편하게? 편하게의 기준은 누가 정할까? 획일화된 세상에선 결국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고 그 사회는 퇴화하지. 동생. 정신 차려. 너 같은 미꾸라지가, 미꾸라지라고 하기엔 넌 좀 많이 맑다. 여하튼 너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세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거야. 네 때를 기다려. 너는 준비가 되어있고 너를 용서할 수만 있다면, 너를 세상에 드러낼 용기를 얻을 거야. 모든 사람이 너를 사랑해 줄 수는 없어. 그래도 분명 너를 받아주는 사람들도 생길 거야. 네가 너에게 분수를 들먹인다면 너는 영원히 그 방 안에서 나올 수 없어. 그럼 세상은 음악을 들을 기회도 없을 거야.  글을 볼 기회도 뺏기겠지. 인간은 세상에 태어난 것에 이유가 있고, 그것이 아주 작고 소소할지라도 그게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사회를 발전시키고 더 나은 곳으로 가게 하는 거야. 교육은 이런 거야. 삶에서 죽음까지 그 사람이 멈추지 않고 꿈을 꾸게 하는 것. 그걸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옆에서 멘토가 되어 주는 것. 너 같은 애가 세상의 잣대 따위에 지쳐서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해 주는 게 교육이야. 날 지치게 만들지 . 내가 노력하는 이유는 바로 너 같은 아이들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거야. 네 주변엔 이제 너를 갉아먹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 엄마도 나도 네 편이야. 음악 하다 지쳐 도망가고 싶어지면 붙잡아 피아노 앞에 앉혀 준다는 네 스승도 만났어. 앞으로 넌 더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만날 거야. 왜냐하면 넌 이제 살 것 같거든. 그러니까 이제 그 자기 비하에서 나와. 자기 비하는 달콤하고 매혹적인 마약이지만 그게 사람을 발전시키진 않아."





 나를 객관적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그게 객관적이긴 할까요?



 저는 저를 끔찍이도 미워합니다. 저주하는 건 프로죠. 마음에 바닥이 있을까요? 저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아니요, 바닥은 없습니다. 낙하하는 마음에 끝은 없습니다.

 그리고 네, 바닥은 있습니다. 바닥은 본인이 만들어야 합니다. 누구도 그 바닥은 만들어 주지 않죠. 신은 인간이 바닥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문을 열어주신다고 합니다. 그 바닥은 내가 다시 삶으로 나가겠다는 작은 희망이죠.


무언가를 하고 싶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이 유명한 말 앞에는 네 무지를 알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을 제 식으로 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네 무지를 알라. 네가 너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음을. 그대가 느끼는 분수라는 장벽은 누가 만들었을까? 나를 온전하게 찾아 무지를 깨고 자유로워지기를......



 아마도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는 분이 어딘가 있을 거예요. 세상의 기준을 맞추지 못하고 끝없이 나를 비난하고 지하까지 끌어내리며 학대하고 있을 골방 속 그대에게 제게 받은 위로를 보냅니다.



우리는 잘 견디고 있어요.

우리의 시간을.

겨울이 아무리 매서워도 봄은 오겠죠.

여러분이 바라는 모습은

의외로 내 안에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밖으로 향한 시선에 찾지 못하는 것일 뿐.

그러니 우리는 괜찮습니다.

꽃은 피어날 테니까요.

꿈꿔온 형태로 말이에요.

우리는 모두 잘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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