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과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수화(樹話) 김환기

김환기의 생애 및 작품 소개

by Prosh 사회인

‘수화 김환기’ 선생은 “1913년에 전라남도 신안군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니혼대학 미술학 학사이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홍익대학교 교수와 학장, 서울대학교 교수로 지냈었고,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김환기는 다들 아시다시피 백자와 달항아리를 엄청나게 사랑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백자 항아리에 ‘평범’이 없었다면 조선백자는 오늘과 같이 미의 왕좌에 앉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만큼 백자를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그래서인지 뉴욕에 가기 전 김환기의 추상 작품 대부분에 ‘항아리’나 ‘달항아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매화와 항아리>, <항아리>, <정원>이 있습니다.

이 세 작품 모두 김환기가 파리 시절 그린 그림입니다. 김환기는 파리에 갔을 때 아내 김향안(변동림) 여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김환기가 먼저 파리로 가는 것보다 아내가 먼저 가서 불어도 배우고 인맥도 쌓아서 길을 닦아 놓겠다고 4년 먼저 갔습니다. 실제로 김환기가 한국어로 말하면 김향안 여사가 통역해주고, 책이나 잡지를 볼 때도 번역해줬습니다. 하지만 순탄한 생활을 못했습니다. 파리에서 본인을 알아봐 주는 귀인도 있었지만, 김환기는 아버지 재산을 예술 활동에 너무 많이 써버린 탓에 파리에서 힘들게 생활했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자신이 만든 작품이 기대 이하의 취급을 받아서 마무리가 좋지 못했습니다.

앞서 본 김환기의 세 작품을 보았을 때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습니다. ‘항아리’도 있지만, ‘달’과 ‘매화’도 들어가 있습니다. <항아리>에서는 ‘학’도 들어가 있는데요. 이는 동양의 ‘십장생’의 요소와 한국 양반 사대부의 기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김환기가 파리에 있을 때 한국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했는데요. 김환기는 자신의 에세이 ‘편편상’에서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해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이요, 철두철미한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이라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았고, 그것을 표현했으며 또 생각했다. 파리라는 국제 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더욱 역력히 보이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라고 서술했는데, 이는 ‘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의 것밖에 못 그린다. 어차피 내가 서양화를 그려 봤자 서양사람들 보다 못 그릴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가장 잘 아는 한국의 모습을 그려야 되겠다.’는 김환기의 심회이며, 그는 최대한 한국적인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매화와 항아리>에서 매화는 선비의 꽃 아치고절(雅致高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매화, 달, 항아리는 운치 있고, 격조 있고, 풍류를 즐긴 선비 정신을 담아냈고, 서양화인 모더니즘 양식 속에도 한국의 문인화 전통을 살리려고 한 모습이 보입니다.

<항아리>는 왼쪽에는 ‘달’, 중간은 ‘해’, 오른쪽에는 항아리가 있는데, 이 항아리는 달항아리 같습니다. 십장생의 요소인 ‘달’, ‘해’, ‘항아리,’ ‘학’, ‘구름’을 사용해 동양적으로 표현했으며, ‘매화’와 ‘학’ 덕분에 작품이 고고(高古)해 보입니다.

<정원>은 김환기, 김향안 부부가 한국에 돌아가면 살 집의 정원을 그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오순도순 앉아있는 부부, 그 앞에는 항아리들, 달과 매화 그리고 달 주변에 부부의 좋은 금술을 상징하는 원앙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김환기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살고 싶은 ‘곳’을 그렸습니다.

다음으로는 <월광>입니다.

<월광>은 1959년 작품입니다. 월광을 여러분께 소개한 이유는 김환기의 대표 색(色)인 ‘청색(파란색)’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김환기는 신안 섬 지주로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때 푸른 바다를 많이 봤습니다. 그런 경험에서 그의 추상 작품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의 ‘Blue’와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서양에서 ‘Blue’는 우울함, 외로움 등등을 표현하지만, 김환기의 <월광>에서 그런 점이 느껴지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향수 또한 ‘Blue’의 의미가 있지만, 김환기가 서양의 ‘Blue’와 한국의 ‘청색(파란색)’의 다름을 짐작해 보았을 때, 그의 ‘청색’은 말 그대로 청아하고, 맑은 ‘푸른색’입니다.

푸른 빛 달 아래의 산 그리고 집으로 표현한 작은 빨간색, 파란색 네모는 한국에 가서 아내와 함께 달 아래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 김환기의 이상세계를 표현했습니다.

다음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입니다. 이 작품은 1970년에 만들어졌으며,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의 문장서 따와 그림 제목을 만들었습니다. 시 내용은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

이 시는 김환기가 미국에 있었을 때, 그의 마음속 깊게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에 있었을 때는 파리에 갔을 때 보다 더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수첩 내용에서 “악취미와 무식한 장난만이 통하는 뉴욕. 모 화랑에 갔으나 역시 미국 작가의 미국 풍경만 요구한다. 영원히 갤러리를 생각하지 말자”라고 쓸 정도로 미국 유명 화랑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미국 시절 김향안 여사가 돈을 벌어왔지만, 파리 때와 달리 4명의 가족이 있어 자금난이 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1월이 갈 무렵, 김환기의 작업실에 독립 화상 데셋(Desset) 부부가 와서 애호가가 나타날 것 같다며, 종이에 유채 소품 여덟 점을 가져와 가을에 개인전을 주선해보겠다고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김환기는 데셋 부부가 전시회 얘기를 꺼낸 걸 보면 소수 마니아에게 환영받는 ‘독립 화가’일까. 잠시 쓸쓸한 생각을 했지만, 다시 화폭 앞에 앉아 힘차게 점을 찍었습니다.” “그해 2월 한국일보에서 ‘한국미술대상’에 응모해달라는 전화가 왔고, 한국 미술의 발전을 위해 응모하기로 결심한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읽고, 그것을 작품으로 형상화했습니다.”그 후 두 달 만에 완성된 작품이 바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입니다.(링크를 누르시면 그림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1회 ‘한국미술대상’에서 대상으로 선정됐고, 인터뷰한 내용에서 기자가 창작 동기를 물어보았을 때 김환기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를 읽다가 대단히 아름다운 구절이 나와 그림으로 그릴까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라는 구절을 읽고 한국을 떠나 있던 사이에 간절히 그리워진 친구들을 생각했지요. 이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점 하나하나 찍어서 그린 것인데, 나는 그리운 친구들을 연상하며 점을 그렸어요. 물론 그중에는 7년 동안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무척 많았고요. 그리고 다음 날 각 신문에는 “점하나 친구 한 사람”이라는 수상소감과 함께 수상 소식이 실렸습니다.”

이 작품에 담겨있는 점은 미국에 있기 전에 만난 ‘김용준, 고희동, 오세창, 정지용, 이헌구, 길진섭, 노천명, 최순우, 이중섭, 장욱진, 조병화, 남관, 박두진, 이무영, 김광섭’ 등의 보고 싶은 얼굴들을 점으로 찍어냈고, 그리움이 깊은 사람의 점은 오래 누르고 있어 옆으로 번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배경 색은 ‘저녁에’ 작품을 떠올리며 ‘저녁이면 검푸른 색이 되는 고향 바다, 조금 어두워 지면 검푸른 색이 도는 뉴욕의 밤하늘’을 떠올려 그렸습니다.

김기창 화백은 이 그림을 두고 “김 화백은 뉴욕 생활 가운데 많은 과정을 거치는 실험 작업을 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그중 한 작품임이 틀림없습니다. 특히 블루인 색으로 표현된 것이 동양화의 담채화를 연상케 하는 김 화백 근래의 역작 중 하나입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 그림은 점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신진도 아닌 원로 작가가 과거의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기 이야기를 했다는 점도 대단한 부분입니다.

김환기의 미국 시절 이전 작품들은 ’한국적 서정의 추상 표현‘이며, 그 이후는 단순화가 궁극적으로 추상화로 가는 과정 즉 ‘순수조형을 지향하는 절대적 추상’입니다. 김환기가 바라본 ‘백자’, ‘달항아리’는 최순우 선생의 영향이 있는 미론적 접근이지만, 청색(파란색)을 서양의 관념이 아닌 한국의 관념으로 재해석하려는 그의 ‘의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말기 점화의 경우, ‘점’으로 표현한 벗(타인)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점’이 모여서 하나의 ‘선’이 되고, ‘선’이 모여서 ‘면’이 되고, 이 ‘면’들이 모여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점으로 표현한 친구들이 모여 선•면•세계가 돼 우리가 함께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기억하고 싶은 ‘너’의 존재를 생각하고, 벗들을 기억한 김환기 ‘자신’이 보고 싶은 ‘그들을’ 점으로 표현했기에,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탄생했습니다.

김환기의 ‘점화’는 그와 교류한 ‘타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점화’를 만들 수 없었고, 점화를 만들었다 해도 단순히 무수한 ‘점’의 향연일 뿐입니다.

이처럼 김환기의 작품에서 ‘의지’와 ‘서로주체성’의 요소를 확실하게 볼 수 있어, 그는 한국 근•현대 화백임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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