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이가 찼구나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나

by Prosh 사회인


태양이 뜨기 직전인 어느 이른 아침, 나는 전날 있었던 입궤양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열이 나고 악화되는 것 같아 동네 병원이 아닌 대형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최근 ‘Deepavali’라는 축제 때문에 새벽 2~3시까지도 폭죽을 쏘고 난리가 아니었다. 축제의 여파로 인해 나는 잠에 들어도 3시간에 한 번씩 깼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보여 큰 병원으로 가서 확실한 약 처방을 받으려고 했다.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을 때, 시간은 오전 7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단 대형병원이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택시를 타고 이동했고, 8시 조금 안 됐을 때, 병원 안내데스크에 도착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서툰 영어로 한국어 통역사에게 지원받을 수 있는지와 언제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안내데스크의 직원은 9시부터 통역사 지원과 진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선은 8:30쯤 되었을 때, 안내데스크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서 통역 지원 먼저 받아보라고 말했다. 우선 8:30까지 30분 정도 남아 병원 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살펴볼 따, 병원의 인테리어와 냄새가 낯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어렸을 적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자주 내원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장염과 고열이 있을 때,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가 났을 때,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처치하지 못해 진료 의뢰서를 받고 대형병원으로 갔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형병원에 내원할 때마다 항상 내 옆에는 엄마가 함께 있었다. 내원할 때마다 엄마는 나에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비용 및 보험처리 또한 엄마가 했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어른으로 보였다.


8:30이 되고 나서 나는 통역 센터로 들어가서 간단한 신상 명부를 작성했다. 그다음 그곳에 상주하는 직원에게 “지금 이비인후과 예약해 드릴 거고요. 한국인 통역사분은 좀 있다가 오실 거예요. 오시게 된다면 같이 이동하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듣고 통역사를 기다렸다. 9:10분이 됐을 무렵 한국인 통역사가 도착했다.

통역사는 현지인 여성분이었고, 한국어가 상당히 유창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의학 용어를 한국어로 이해했고, 많이 긴장한 내 모습을 보고 농담도 한 두 마디 해줬다.

이비인후과 진료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한 뒤, 그녀는 나에게 앉아 있으라는 말을 했고, 그녀는 진료스케줄에 관해 간호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오늘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10시쯤 됐을 때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ー이후 절차는 한국에서와 똑같이,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는 증상을 말하고, 비강 내시경을 통해 코와 입을 확인하고, 증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진료를 받고 나서, 통역사는 번호표를 뽑아준 다음 나에게 “해당 번호가 화면에 뜨면 그쪽 책상으로 가시면 돼요!”라고 말한 뒤 함께 약을 받고 약에 대한 설명을 그녀에게 상세히 들었다. 그리고서 진료비 수납만 남아있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이제 가보셔도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 그녀는 “푹 잘 쉬셔야 돼요!”라고 말한 뒤 다음 업무를 보러 갔다.

어느덧 내 번호가 스크린에 뜨게 되고 수납을 하러 갔을 때, 내게 수납된 금액은 약 28만 원 정도 됐었다.ー여기 28만 원에는 비강내시경 진찰비, 초진비, 약값 등이 포함 돼 있었다.ー 내게는 입원 보험 말고는 개인 보험이 없었고, 회사 보험 또한 보장되는 부분이 적었기에 개인적으로 돈을 지불했다. 너무 비싸긴 했지만, 개인 건강과 관련된 일이었고, 돈 벌어서 이럴 때 쓴다고 생각했기에 별로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수납 직원에게 무심하게 카드를 건네어 28만 원을 지불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음식점에 들려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불현듯이 옛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이젠 엄마가 옆에 없어도 혼자 할 수 있는 나이가 됐구나.

ー이젠 병원비가 28만 원 정도 나와도 내 선에서 결제를 하고 해결할 수 있게 됐구나.

나도 이제 그런 나이가 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머쓱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검사 결과를 이야기해 줬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제 혼자서도 계산할 수 있는 어른처럼 까지는 된 것 같아.”라고 말했고, 엄마는 나에게 “기분이 어떤데?”라고 물어보자 나는 “싱숭생숭하네.”라고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잠에 들려고 할 때, 집 밖에서는 폭죽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나는 쉽게 잠에 들지 못했고, 도대체 ‘Deepavali’가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하며, 네이버를 켜서 검색해 봤다.

Deepavali는 “힌두교의 가장 큰 축제인 디파발리는 '빛의 날'이며, 말레이시아는 힌두교인을 비롯하여 종교를 너머 많은 사람들이 디파발리에 참가해 한해의 복을 기원한다. 이들은 힌두사원에서 가짜 종이돈을 태우며 나쁜 기운을 몰아내며 행운을 기원”1)하는 행사라고 한다.

나쁜 기운을 몰아내며 행운을 기원하는 Deepavali의 의미처럼 내 입궤양을 몰아내고 어른이 되고 있는 나의 인생에 행운이 찾아오길 바란다.


*그래도 자기 전에 시끄러운 건 너무 싫어...



1) 출처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94758&cid=42864&categoryId=5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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