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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Jul 19. 2022

여름에 관한 두 가지 고찰

너무 더웡...

여름에 관한 두 가지 고찰


1. 시도의 계절 여름     

 여름은 더운 계절이다. 덥다 보니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노출이 많은 옷을 입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면이 많이 보이는 계절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계절과 달리 특히 여름에 사람들이 운동을 결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 또한 그랬다. 몸무게가 많이 나갔던 시절 여름은 나에게 피하고 싶은 계절이었다. 하지만 여름을 계속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미친 듯이 살을 뺐다. 그래서 수영을 6개월간 했었다. 당시에 자유형을 할 줄 알았을 때 하루에 5km씩 수영을 했다. 살을 빼고 싶다는 의지 하나 때문에 5km씩 했다. 그리고 수영을 나름 할 줄 알게 될 때 수영강사도 했었다.

 수영하게 되면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같이 하게 됐다. 웨이트 트레이닝 하기 전 나는 맨몸운동만 할 줄 알아서 ‘바’와 같은 쇠들은 나에게는 버거웠다. 쇠질을 할 때 하루하루가 ‘바’에 깔릴 것 같은 무서움은 지옥과 같았지만, 몸무게를 뛰어 넘는 중량을 들 수 있을 정도의 몸을 만들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와 니는 진짜 독하다.”라는 소리를 했을 정도다.

 여름은 시도의 계절로 기억된다. 하지만 세워놓은 목표는 ‘살을 15kg만 빼자!’까지였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무목적의 상태’로 놓였다. 허망했다. 죽을 듯이 운동하고, 누가 봐도 좋은 몸을 만들었지만, 그게 다였다. 그 이후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관리를 하지 않아 요요현상이 와서 20kg 쪘다.

다시 돌이켜보면 ‘왜 나는 단기적인 것에 목을 매달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 이러한 단기적인 것에 목을 매달은 현상은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이 된 것 같다. 최근 ‘보디 프로필’을 찍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는데, 이러한 ‘보디 프로필’이 대표적인 ‘단기적 목표’이다. 

 물론 ‘보디 프로필’을 찍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디 프로필’을 찍고 그 후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 그 뒤로 장기적인 계획이 있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계획이 없다면 문제가 있다. 왜 문제가 있냐면 굳이 몸을 망쳐가면서 몸을 만들 필요 없기 때문이다. 보통 ‘보디 프로필’을 찍을 때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정도 운동을 하고 사진을 찍는데, 이 정도 기한 내에서 원하는 몸을 만들게 된다면 운동은 과도하게 식사는 적게 한다. 만약 평소 100을 먹어야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50~60을 먹고 운동을 한다면 몸이 상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끊기지 않는 동영상’이다. 끊기지 않는 동영상을 만들어야 유의미한 삶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단기적인 것에 의존한다면 ‘보디 프로필’처럼 몇 장에 사진만 남아있는 인생이 될 것이고, 사진을 모은다고 해서 동영상으로 말들 수 없을 것이다. 애초부터 동영상을 찍을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을 ‘롱 테이크’의 동영상처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롱 테이크’를 찍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앞의 결과를 중요시하고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결과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운동으로 예를 들면 ‘식스팩’을 만들면 성공했고, 만들지 못했다면 실패했다는 이분법적인 모습을 지향한다. 하지만 단순히 ‘식스팩’을 만들었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만들었다!’ 일 뿐이지 그 이후가 중요하다. 그러니 이러한 단기적인 것에서 인생 전반적인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짧은 것, 잠깐 빛나는 것, 유행에 목매달고 좇는 것보다. ‘나 자신’이 빛나고 유행되는 사람 즉 나의 세계에서 내가 중심이 되는 사람을 목표로 달려 나간다면 인생의 ‘롱 테이크’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모래성을 높게 쌓을 생각하지 말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벽돌로 된 집을 차근차근 쌓는 것을 목표로 달려가 보자.     


2. ‘찝찝함의 계절 여름     

 여름은 ‘찝찝함’의 계절이다. 과학자들은 온도•습도를 통해 ‘찝찝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온도•습도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기에 ‘찝찝함’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사회적 동물’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찝찝함’을 느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고양이나 개의 경우 ‘찝찝함’을 정형화된 언어로 말할 수 없지만, 인간은 ‘찝찝함’을 말할 수 있다.-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이긴 하다.- 나는 ‘찝찝함’을 느끼고 말할 때마다 실존하는 인간이 된다. 하지만 불쾌한 감정을 단순히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것-비언어적 표현이나 공격적이고 이성적이지 않은 표현 등-과 달리 이성적으로 표현할 때 인간으로 실존한다.

 인간과 짐승을 비교해 말해보자면, 짐승은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지 할 수 없을 때 울음소리를 내거나 공격적인 행위를 한다. 물론 짐승의 울음소리가 그들의 언어이긴 하지만 정형화된 ‘언어’나 ‘말’도 아닐뿐더러 욕구불만으로 인한 공격적인 행위는 그들이 인간과 다른 짐승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달리 인간은 공격적인 행위를 하거나 칭얼거리지 않는다. 정형화된 언어를 통해 말로 자신의 욕구불만을 최대한 논리 정연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더워 죽을 것 같은 여름에 인간은 높은 온도•습도 통한 불쾌감을 느껴 이에 대한 상황과 감정표현을 위해 우리는 최대한 논리정연하게 말하려 했고, 그 결과 ‘찝찝함’이란 단어를 만들어냈다.

 인간은 정형화된 ‘언어’와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현 상태를 인식할 수 있고, 타인도 나의 상황과 감정과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모더니즘 시대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로 넘어온 현대는 ‘나 자신’의 존재는 타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찝찝하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러한 정형화된 언어와 말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알 수 있었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정형화된 언어와 말을 여름의 ‘찝찝함’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너무 덥고 짜증이 나는 계절 ‘여름’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불쾌감을 긍정한다. 아니 긍정을 넘어서 사랑한다. 왜냐하면, ‘불쾌’를 느끼고 이를 표현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유쾌하다.

 문학평론가 ‘노스럽 프라이’는 신화를 구조화하는 네 가지 서사 양식을 가리킬 때 ‘뮈토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중 ‘여름의 뮈토스’는 순진무구함, 풍요로움, 충족감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여름의 ‘찝찝함’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살아있음’에서 이번 여름을 ‘여름의 뮈토스’로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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