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공모전에서 광탈한 글입니다... ㅠㅠ
내가 사는 곳은 경북 OO이다. 비록 도시라고는 하지만 인구는 줄고 있고, 시내 중심부에서 10분만 나가면 산과 논밭 풍경이 펼쳐진다. 또한, 나 같은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료 프랜차이즈 분점은 없거나 폐점되니, 당연히 대도시들과 비교하면 생활과 문화 측면에서 인프라 차이가 크게 난다. 당장 서울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서울은 미술관이 여러 곳이 있어 다양한 전시회를 관람할 기회가 많지만, 우리고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문화 예술의 전당’만 있어 미술 전시회에 특화된 공간이 없는 실정이다.
대학교가 밀집한 서울은 대학생들끼리 소통할 기회가 많지만, 종합대학이 하나뿐인 우리고장에서는 타 대학 학생들과의 소통도 수월하지 않다. 대학 주변 풍경만 해도, 교문 밖을 나서 빌딩 숲과 지하철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숲을 쓰다듬는 바람과 산등성이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나는 이러한 우리고장 특유의 감성을 싫어하거나 비관하지는 않지만, 대도시와 우리고장의 인프라 차이의 극심함을 느낄 때 아쉬움이 없진 않다.
하지만 이러한 인프라 차이를 받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책’이다. 책은 인프라의 차이를 거의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울과 우리고장의 서점에서 판매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내용이 다르지 않으며, 인터넷 주문을 통해서도 언제든 원하는 책을 다음 날이면 받아볼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서울과 지방 간의 차별이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빠른 통로는 얼마 전 개통한 KTX가 아니라 바로 책이다. 책은 공평하고, 택배를 통한 책의 유통도 그러한 평등한 대우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평등함을 깨닫고 나는 대학 1학년 때부터 하루에 6~8시간씩 책을 주야장천 읽어대기 시작했다.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죽음이라는 인생의 진리 앞에서 완벽한 예술도 행복한 가정도 모두가 기만에 불과한 걸 느꼈고,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자아의 정체성은 언제나 ‘타인의 인정’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배웠다. <파묻힌 거인>을 통해 때로는 망각이 관계를 유지해주는 비결이 될 수 있음을 느꼈고, <인간 실격>과 <일본의 사상>을 통해 일본의 허무주의와 일본 사회의 맹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황현산 선생의 산문을 통해 ‘주어진 현실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임을 배웠고, 이현우(로쟈) 선생을 통해 러시아 문학의 위엄을 느꼈으며, 한국문학의 성취와 아쉬운 지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통해서는 ‘부끄러움’이 공동사회(전근대)에서 이익사회(근대)로 넘어갈 수 있는 ‘입장권’임을 배웠다.
책을 읽으면 어느 순간 ‘번뜩임’이 생긴다. 이러한 ‘번뜩임’이 나만의 글과 나만의 감각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글쓰기를 넘어서 새로운 배움과 경험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다독은 나에게 단순히 지적 안목을 넓혀 주었을 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유익한 성과로 이어졌다.
첫 번째로 글쓰기를 통해 인문학 세미나를 기획하고 발표했다.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단순히 글을 쓰는 데만 해소하지 않고, 세미나를 통해 글을 발표하고 이야기를 하는 장(場)을 만들었다. 책을 많이 읽어서 다양한 글을 쓸 수 있었고, 다양한 글을 통해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나의 욕망을 해소했다.
두 번째로 책은 다양한 체험을 이끌어준다. 다독하기 전 아는 분야에서만 영위했지만, 다독하면서 아는 것 많아져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점차 많아졌다.
한참 한국 현대미술을 공부하고 있었을 때, ‘문화 예술의 전당’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 명작전]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담당자와 미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친분이 쌓이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전시회를 13번째 갔을 때 그곳의 담당자에게 “저 여기 작품들 가지고 도슨트 할 수 있는데 시켜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고, 기획자에게 허락을 맡아 도슨트를 하게 됐다. OO여고 1학년 학생 ‘20~30명’을 상대로 도슨트를 진행했었다. 진행했을 때 혹시라도 실수할까 걱정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그곳의 몇몇 학생들에게도 “설명이 진짜 좋아서 이해하기 쉬웠어요”라는 말을 들었고, 담당자도 초보답지 않게 잘 해냈다고 호평했다. 이처럼 책은 철학 전공자인 나의 경험을 넓혀 주어 미술 애호가로 만들어 주었다.
책은 나에게 기회를 모색하고 주어진 한계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게 만들어줬다. 세미나를 하게 만들어줬고, 도슨트도 하게 만들어줬다. 지금도 인문학 동아리나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나 자신의 변화는 ‘높은 자존감’에서 나왔고, 높은 자존감은 ‘다독’을 통해 만들어졌다.
책은 대도시보다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책이 준 기회는 시골 사람에게 유일한 동아줄이기에 놓칠 수 없다. 계속 구차하게 잡고 버텨서 나는 오늘도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