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오마주>를 통한 ‘홍콩 영화’

-‘영웅본색3’을 중심으로-

by Prosh 사회인

이번 주제는 ‘홍콩 영화’이다. 솔직히 말해 홍콩 영화와 여름과의 직간접적인 영향성은 잘 모르겠다. 평소에도 영화보다 책을 자주 보는 사람이라서 영화에 관해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고, 영화를 봐도 이번 글은 재대로 쓸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번 주제는 영화리뷰이지만, 영화에 관해 잘 몰라서 <박찬욱의 오마주>를 통해 ‘홍콩 영화’를 작성해보겠다.

‘영웅본색’ 하면 성냥개비가 생각난다. 주윤발 배우가 성냥개비를 담배처럼 물어 입안에서 이리저리 무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와 진짜 멋있다.’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 했다. ‘영웅본색 = 주윤발’, ‘주윤발 = 영웅본색’이란 수식어가 생각났는데, ‘영웅본색 3’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3편에서는 ‘역사영화’를 선보이고 있었다. “오우삼 감독과 적용과 장국영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었던 기획자 서극은 이 기상천외한 3편에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한 편의 역사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세 스타 대신에 그는, 앞의 두 편으로 사실상 완결된 ‘영웅본색 신화’ 그 자체를 전혀 다른 목적으로 이용한 것이다.”(박찬욱의 오마주, 135p.)


박찬욱 감독은 3편을 두고 ‘피난민의 역사 현실’, ‘해체한 홍콩 누아르’를 그려냈다고 말했다. 그리고 ‘행위의 무의미성’, ‘숙명론적 허무주의’를 잘 그려내 3편을 극찬했다. “그토록 많은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던, 때로는 우아하고 때로는 장엄했던 총격전에서의 느린 동작 기법도 이제는 그 용도를 달리한다. (중략) 감정을 고조시키기에는 너무 불길한 음악 속에서 대책 없이 느려진다. 총격전 자체가 전혀 극적이지 않을뿐더러, 이들의 느린 이동은, 아름다움보다는 차라니 속수무책의 무력감이나 고립무원의 외로움에 가깝다. 그리고 이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은 바로 행위의 무의미성 때문이다.”(앞의 책, 137p. 필자가 굵음 처리함.),“숙부를 위한 보복은, 그 원수가 엉뚱한 군인에게 사살됨으로써 이루어지지 못하며, 여자를 구하려는 노력마저도 마침내 그녀 역시 숨을 거두며면서 수포로 돌아간다. 포연 자욱하고 유혈 낭자했던 모든 ‘대행동’들이 사실상 불필요한 일이 되거나 실패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서극의 숙명론적 허무주의다.”(앞의 책, 137p. 필자가 굵음 처리함.)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이 말한 ‘행위의 무의미성’, ‘숙명론적 허무주의’는 ‘김현’의 <현대 한국 문학의 이론/사회와 윤리>에서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 파트가 떠올랐다. ‘김현’도 무협소설이 읽히는 이유를 크게 ‘허무주의의 부정적 표출’로 보았다. 흥미롭게도 당시 무협소설 주 독자는 ‘중산층’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와 소설이 ‘글’이냐 ‘영상’이냐의 차이 이외에는 다른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상영이 취미인 사람은 보통 ‘중산층’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중산층 미만의 계층은 영화 볼 시간이 없다. 그 시간에 돈을 벌거나, 잠자고 있다.

‘누아르’와 ‘무협소설’을 대조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지만, 페이지가 부족해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적어보도록 하겠다.

박찬욱 감독을 대개의 사람이 ‘영화감독’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는 영화비평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박찬욱의 오마주와 몽타주 총 두 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관심 있는 독자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박찬욱 감독이 철학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그의 책에서 철학적인 요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앞서본 ‘영웅본색 3’으로 행위의 무의미성과 숙명론적 허무주의를 말한 박찬욱 감독은 ‘똑똑한 사람’이다.



참고도서

1. 박찬욱. (2005). 박찬욱의 오마주.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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