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SF소설!
들어가며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을 읽고 한국형 SF 소설도 미래가 있음을 느꼈다. 김작가의 소설이 순수문학 하는 사람들에게는 수준이 낮다고 평가되지만, 오히려 현대 순수문학 작가들보다 김초엽의 ‘관내분실’이 훨씬 더 건설적이고, 진보적이고, 현대에 맞는 소설이라 볼 수 있다.
김작가의 소설은 이론적으로 보았을 때 아직 모자란 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김작가가 요즘 잘 읽히는 SF소설을 만들 수 있었음은 오히려 문학을 깊게 파고들지 않았고, 이과였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만약 김작가가 나 같은 문돌이었다면 SF소설을 절대 못 만들었을 것이다.
사람의 후회와 미련이 ‘마인드’를 만들고, 믿음이 ‘실제’나 ‘허상’을 만들고
‘관내분실’은 ‘지민’이 자신의 어머니의 ‘마인드’가 분실됐다는 사서의 말로부터 시작한다. 한때 도서관이라고 불렸던 장소는 종이책이 거의 사라지고 마인드 접속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오는 것보다 추모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온다.
마인드란 고인의 영혼을 데이터로 이식으로 생각하고, 육체는 죽어도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기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식된 데이터는 고유의 자아와 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는 반론이 쏟아져 나왔지만, 마인드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마인드’ 대해서 흥미롭게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마인드란 ‘미련’과 ‘후회’의 산물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마인드는 생전의 고인을 그럴싸하게 재현해낸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마인드 속 인간은 0과 1로 이루어진 시스템이고, 현실의 인간은 0과 1이 아닌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마인드 속 고인은 그럴싸하게 재현된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 사람들이 마인드를 찾는 이유는 “‘그 사람이 지금 살아 있었다면 뭐라고 말해 주었을까?’, ‘살아 있다면 이 이야기를 듣고 분명 기뻐해 줄 텐데…….’”(225p.)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었다면 뭐라 말해 줄까?’, ‘살아 있다면 이 이야기를 듣고 분명 기뻐해 줄 텐데’라는 생각은 후회와 미련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고인과 직접 만난다는 믿음 때문에 나온 생각이다. 그렇지않은 이상 마인드를 만들 필요도 없고, 사람들이 도서관에 와 고인의 마인드를 찾을 필요도 없다.
마지막 장에서 지민은 “엄마는 죽었다. 여기에 있는 건 엄마가 아니다. (중략)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270~271p.)결국,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서 마인드 속 인물은 실제가 되거나, 허상이 된다.
디지털은 아날로그보다 무조건 우월한가?
작품 속 지민의 어머니에 ‘마인드’ 분실은 크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데이터 삭제가 아니라 관내 분실이다. 자신의 어머니에 마인드가 이름 없이 어딘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마인드의 특성상 다시 만들지도 못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고의로 검색 망에서 지웠고, 탈취하지도 않았다.
관리자와 지민이 자신의 어머니의 마인드를 찾으려고 했던 대화에서 종이책과 마인드에 관한 설명을 잠깐 했었다.(233p. 참조) 이 글을 보고 든 의문은 ‘과연 디지털화가 아날로그 무조건 우월한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인터뷰에서 생각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책이 사라진다'고 하지만 반대로 인터넷이라는 놀라운 발명품이 사라진다는 생각 역시 가능해요. 컴퓨터 저장장치는 끊임없이 변했어요. 예전 플로피디스크, CD롬을 요새 누가 쓰나요. USB는 또 언제 어떻게 될지.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전자책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정부 통제 아래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분해서 통제할 수도 있지. 그러나 종이책은 내가 숨기고 싶으면 아무도 못 찾게 숨겼다가 읽고 싶을 때 꺼내도 되잖아요."”1)라는 말을 했다.
에코의 주장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첫 번째로는 컴퓨터 저장장치를 예시로 들어 ‘종이책’ 뿐만 아니라 ‘인터넷’ 또한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말했다. 두 번째로는 전자책은 통제당할 수 있지만, 종이책은 가지고 있다면 통제당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에코의 첫 번째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플로피디스크를 썼는데, 현재는 플로피디스크를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일반용에서는 전무하다. 마찬가지로 USB도 많이 사용했지만, 최근 온라인 저장매체가 생겨나면서 USB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시대상 흐름으로 보았을 때 온라인 저장매체 또한 무언가에 대체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종이책(아날로그)은 다르다. 몇천 년 전 책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현시대에 맞는 종이로 책을 만들 수 있다. 종이책으로 남기고 있었기에 저장매체와 관련 없이 우리는 손쉽게 무언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플로피디스크에 남겨진 저장물은 플로피디스크를 인식할 수 있는 컴퓨터 본체가 있어야지 저장물을 꺼낼 수 있지만, 요즘 플로피디스크를 인식할 수 있는 본체는 보기 드물다.
에코의 주장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디지털이라 해서 무조건 우월하지 않고, 시대가 지날수록 아날로그보다 더 많은 제약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디지털이기에 통제받을 수 있지만, 아날로그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금서(禁書)가 있다고 쳤을 때, 전자책의 경우에는 내가 그 책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 책을 서버에서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반면에 종이책일 경우 남에게 안 들킨다면, 언제든지 그 책을 읽을 수 있다.
어머니의 디지털화 된 마인드를 관내 분실했기에 찾기 어려웠고, 다시 만들기도 까다로웠다. 하지만 만약에 어머니의 마인드의 원본이 종이책으로 찍혀 나와 그 텍스트를 인식하는 기계로 어떻게 했다면 관내 분실이 큰 골칫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딸도 ‘엄마’가 되다.
‘지민’이 ‘자신의 엄마의 ‘마인드’를 찾는 이유가 뭘까? 이 소설에서는 흔한 클리셰처럼 엄마와의 어릴 적 좋은 추억이 있어서 찾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민과 엄마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지민의 동생은 지민에게 “뭐 때문에 엄마를 찾는 거야? 관심도 없더니만.”(237p.)과 “그런데 누나는 엄마 싫어했잖아.”(239p.)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흔한 모녀 관계처럼 엄마의 꿈을 지민을 통해 실현하려 했고, 지민을 그것을 저항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엄마가 살아 있을 때 아빠 이야기를 하며 지민을 나무랐고, 지민은 그런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민이 어렸을 적 엄마를 싫어하고 기피했던 이유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러한 짧은 이유로는 부족하다. 이것이 단편의 단점이다. 너무 간략하게 보여줬다. 장편으로써 엄마와 지민의 갈등, 아버지가 있었을 때 엄마와의 갈등, 지민의 내면을 더 확실히 보여줘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는 작가의 역량 부족과 단편의 한계다.
아무튼, 그런 지민이 왜 자신의 엄마에 흔적을 찾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지민의 임신에서 알 수 있었다. 그녀도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 그렇기에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 작품에서 “엄마는 죽었다. 그 사실이 더는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지민은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 저편으로 밀어놓았던, 무의식이었든 의식해서였든 생각하지 않았던 엄마의 부재가 물밀 듯이 지민을 덮쳤다. 한 번 자각하자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제어할 수 없었다.”(229p.)
임신을 통해서 지민은 엄마가 됐고, 당연히 자신의 엄마에 부재가 물밀 듯이 지민을 덮쳤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엄마는 ‘자신의 엄마’ 밖에 없었다. 물론 지민의 임신과 지민의 엄마에 대한 연결성은 약간 미흡했다. 하지만 지민이 엄마가 됐기에 자신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엄마를 찾고 싶었기에 그녀는 주위의 엄마에 기록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찾았고, 결국 지민의 엄마의 마인드를 찾아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중략) 이제……. (중략) 엄마를 이해해요.”(271p.)라고 말한다.
물론 100% 임신 덕분에 엄마를 이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임신이 엄마를 찾는 일의 시발점이 됐다. 찾는 과정에서 엄마를 많이 알 수 있었고, 살아 있었을 때 하지 못한 것에 관해 후회와 미련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후회와 미련을 자신의 엄마를 찾음에서 해소하려고 했고, 지민은 자신의 엄마에게 “엄마를 이해해요”라고 말했다. 만약 지민이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엄마의 마인드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지민이 엄마가 됐기에 자신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1) 어수웅. (2012.07.06.). 종이책이 사라진다고? 인터넷도 사라진다.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06/2012070600225.html.
1. 김초엽. 2019.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