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에서는 변호사의 '윤리의식 vs 돈, 승리'에 관해서 나온다. 4화에 이어 5화에 나온 우영우는 상당히 근대적 인간이었다.
㈜이화에 가서 증인 신분이 아니라서 위증을 해도 된다고 코칭한다. 그리고 승소한 뒤 의뢰인이 우영우 변호사 방에 와 그림을 선물해주는데, 이때 '변호사 윤리의식' 명패를 때버리고 ' 돈'이 들어오는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버린다.
영우는 직원서 자신에게 온 편지를 봤는데, ㈜금강 대표에게서 온 편지를 보고 권민우 변호사 방에 들어갔다. 영우는 금강 대표에게 이런일이 있으니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지만, 민우는 '그래서 어쩔건데요?'라는 식으로 나왔다.
이때 감정이 격해져서 우영우 변호사와 권민우 변호사는 서로의 별명을 불러줬는데, 그때 민우는 '권모술수는 우영우 변호사에게 어울리는 말 아닌가요? 이화에서 부른 참고인 우영우 변호사가 코칭해준거 아니에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민우의 방 안에는 '변호사 윤리의식 명패'는 진작 없었고, 해바라기 그림이 걸려져있었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해바라기 그림이 걸려진 우영우 변호사의 방을 보여준 뒤 권민우 변호사의 방에서도 해바라기 그림이 걸려져있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윤리의식'보다 '돈과 승리'를 먼저 꽤하는 그들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우영우가 승소하고 나서 이준호에게 자신이 이기게 한 재판이 악용된 것 같아 부끄럽다고 말한다. 그리고 밤에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 '해바라기 그림'을 떼어버리고, 자신이 받았던 편지를 벽에 붙인다.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이번 5화를 비교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우영우 변호사’가 ‘돈, 승리’가 아닌 ‘윤리의식’을 다시 지향한 점은 근대적이지 못하다.
“<무진기행>은 산업사회로 막 진입할 즈음인 산업화 초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때는 아직 농경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이때는 금전적 이해관계와 관련하여 ‘순수’에서 세속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전형적인 딜레마로 돈을 택할 것인가, 사랑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 작품에 등장한다. 여기서 주저 없이 사랑을 선택한다면 아직 ‘전근대인’이다. 최소한 갈등이나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결국 돈을 선택하는 것이 근대인이다. 만약 사랑으로 간다면 갈등의 의미가 없어지고 삼각관계가 무효화된다. 이런경우를 ‘신파’라고 한다. 신파는 근대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근대에 대한 저항이 당시 여러 작품에서 신파적 양상으로 나타난다.”(이현우. (2021).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남성작가 편). 추수밭. 89p.)
“많은 한국문학 작품이 신파적인 정서를 띄고 있다. 현실에서 우리가 알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드러나지 않게 돈을 선택한다. 그런데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직 이전 정서가 남아 있는 것인지 사랑을 선택한다. 다 드러내놓고 선택하지는 않는다. 너무 의도가 빤히 보이게 돈이나 사랑을 선택하는 드라마는 욕을 먹는다. 사랑하는 여자 대신에 돈이 있는 여자를 고르는 것이 근대적 선택인데 시청자들이 욕을 한다. 눈물 짜ᆞ내며 옛 여자에게로 돌아가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해주는 것이 신파다. 그런데 어떤 주저도 없이 돈을 선택하는 인간도 단순한 인간이다. 근대인은 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이다.”(이현우. (2021). 앞의 책. 89~90p.)
정리해서 말하자면, <무진기행> 속 윤희중은 무진에서 하인숙과 순수한 사랑을 하다가 결국 돈 많은 자신의 와이프에게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윤희중의 와이프는 돈 많은 집안의 딸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인숙과 있으면서 무진에 계속 남을지 고민하지만, 결국 무진을 떠나 서울로 간다. 내면과 갈등과 세속을 잘 보여준 윤희중은 ‘근대인’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영우는 다르다. 결국에는 ‘돈과 승리’가 아닌 ‘윤리의식’을 지킨다. 이는 신파적이다. 자신이 했던 갈등의 의미가 없어지고, 근대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준호가 영우에게 왜 거짓말을 못 하냐는 질문에 영우는 자폐인들은 일반인과 다르게 나와 남이라는 개념이 없고 '나'로만 있는 사람이라 한다. 이를 보았을 때 영우는 순결한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윤리의식’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러한 진행은 그간 영우가 했던 고민과 방황의 의미를 ‘우리 영우 너무 귀여웡 ㅎㅎ’라는 내면을 고려치 않은 무의미한 결과만 도출시킬 것이다.
“현대인은 이해관계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이다. 다만 꺼림칙함은 갖게 된다. 사랑을 포기하고 돈을 선택하는 것인지라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끄러움’은 돈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입장권이다. 부끄러움을 느껴서 사랑을 다시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돈을 선택한다. 나름대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당신만 힘들었던 건 아니야. 나도 힘들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이렇게 면죄부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가 느끼는 부끄러움의 기능이다. 우리의 감정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쾌락원칙’을 따르고 있다. 감정은 우리를 편안하고 안락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그런 방향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부끄러움이나 부담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최악’이 아닌 ‘차악’으로서 더 큰 부담이나 비용을 덜어주는 감정이다.”(이현우. (2021). 앞의 책. 91p. 필자가 굵음 처리함.)
<무진기행>의 윤희중은 ‘부끄러움’을 통해 돈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에 반해 우영우는‘부끄러워서’ 돈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았다. 영우가 돈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만(시청률, 서사 등의 문제), 이는 현대인답지 못하다. 오히려 돈의 세계로 들어갔어야 했다.
애초에 변호사를 선택한 것도 ‘돈’ 때문 아닌가? 물론 영우는 어릴 적 ‘법’만 좋아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지만, 그녀는 ‘인권변호사’가 아닌 대형 로펌에 들어갔다. 대형 로펌은 자본가들을 변호하는 회사다. 그리고 ‘자본가’는 ‘돈’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변호하는 회사에 다니는 그녀가 계속 근대성을 부정하고 무시하면 안 된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다시피 영우는 자폐인들이 일반인과 다르게 나와 남이라는 개념이 없고 남도 내 세상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그녀는 그 제약을 부술 수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영우 변호사’를 굳이 근대인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왜 사람들이 드라마에서만큼은 순수한 사랑, 순수한 행위를 바라겠는가? 그 이유는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해 드라마에서라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순수’가 안맞아서 맘에 걸리긴 하지만, 우영우는 지금 상태 그대로 남아 있어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