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이효석 작가는 여러 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돈>, <산>, <수탉> 등등의 작품은 <메밀꽃 필 무렵>과는 다른 작품의 형태를 보인다. <돈>, <산>, <메밀꽃 필 무렵>에서 등장하는 가축들은 주인공의 분신이다. “등장인물들의 행위를 병치시킴으로써 등장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거나 사건의 전개를 암시하는 기법을 사용한다.”(p. 47) 그중 <수탉>은 가축과 주인공의 동일시가 뚜렷하다.
작품 속 수탉은 “이웃집 닭과 싸우면 판판이 졌다. (중략) 거적 눈인 데다 한쪽 다리를 전다. 죽지의 깃이 가지런하지 못하고 꼬리조차 짧았다. 어떤 때는 암탉에게까지 쫓겼다. (중략) 요사이 와서는 민망한 정도를 넘어 보기 싫은 것이었다.”(pp. 40~41) 이러한 모습을 본 ‘을손’은 수탉을 밉살스럽고 흉측하게 보았다. 그렇지만 닭 “두 마리를 팔면 한 달 수업료가”(p. 40) 되기에 어쩔 수 없이 ‘못난 수탉’을 볼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을손은 능금을 따먹는 율칙을 어겨 들키게 돼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을손은 다른 학우들이 선생에게 취조받고 있을 때 “동무들과 자신의 형편조차 잊어버리고 유유히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한 개 집어내서 불을 붙였다. 실상인즉 담배도 능금도 같이 금단의 것이었으나 율칙을 어김은 인류의 조상이 끼쳐준 아름다운 공덕이다. 더구나 그곳에서 한 모금 피우기란 무상의 기쁨이라고 을손은 생각하는 것이었다.”(p. 42) 주인공 ‘을손’은 자신이 취조받기 전 담배를 피우면서 일탈을 즐긴다.
을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 담배를 피우며, 낙서했다. 그러면서 그는 “-위반을 거듭하는 동안에 을손은 문득 학교가 싫은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p. 43)고 생각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낙서가 끝나면 현실의 대가가 남아있음을 알고 있었다. 율손의 일탈은 ‘율칙을 어기는 욕망’이다. “그의 욕망은 능금 서리나 흡연 같은 금단의 규칙을 어기는 행위로 발산된다. 하지만 ‘율칙을 어김’으로써 얻는 기쁨은 자기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나 가능한 것일 따름이며, 현실에서 주어지는 대가는 참담함뿐이다.”(p. 47) 일탈은 즐겁다. 왜냐하면 그 순간만큼은 어떤 행위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탈의 끝에는 ‘현실의 대가’가 남아있다.
율손에게 현실의 대가는 혹독했다. 왜냐하면 무기정학을 처분받았기 때문이다. 등교하지 못하는 그는 닭장을 본다. “우리 안의 닭 무리가 눈에 나 보였다. 가운데에서도 못난 수탉의 꼴은 한층 초라하다.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어도 이웃집 닭에게 지는 가련한 신세가 보기에도 안타까웠다./못난 수탉, 내 꼴이 아닌가-을손은 화가 버럭 났다.”(p. 44) 을손은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어도 지는 수탉이 안타까웠다.”(p. 44) 밉살스럽고, 흉측하게 생각한 못난 수탉에게서 대번 자신이 보였다. 미워하던 대상에게서 자신이 보이니 화를 냈고, 화만 낼 수 있었다.(p. 44)
을손에게 현실의 대가는 이뿐만 아니었다. 을손은 자신이 사랑한 복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을손에게 복녀는 의지할 수 있는 여자였다. “건듯하면 게을리 되는 을손의 공부를 권하여 주고 매질하여 주는 복녀였다. 학교를 마치면 맞들고 벌자는 언약이었으나 을손의 이번 실수가 복녀를 실망시킨 것은 확실하였다. 무능한 사내-복녀에게 이같이 의미 없는 것은 없었다.”(p. 41) 그리고 을손은 복녀를 찾으러 갔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앞으로 출입도 피차에 잦지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섭섭하기 그지없네/기어이 알맞은 사람을 하나 구해봤네”(p. 45) 복녀는 을손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됐다.
패배감에 빠진 을손에게 “한 달이 넘어도 학교에서는 복교의 통지가 없”(p. 45)었다. 어느 날 저녁 마을서 싸운 수탉이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수탉은 “다리를 저는 것은 일반이나 걸어오는 방향이 단정치 못하다. 자세히 보니 눈이 한쪽 찌그러진 것이었다. 감긴 눈으로 피가 흘러 털을 물들였”(pp. 45~46)고 그 모습은 참혹했다. 측은했지만 금방 미운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을손은 화가 났다. “‘그 꼴을 하고 살아서는 무엇 해.’/살기를 띤 손이 부르르 떨렸다. 손에 잡히는 것을 되구 말구 닭에게 던졌다./공칙하게도 명중되어 순간 다리를 뻗고 푸득거리는 꼴에서 을손은 시선을 피해버렸다.”(p. 46) 을손이 ‘그 꼴을 하고 살아서는 무엇 해.’는 자신에게 한 말이다. 수탉은 앞서 말했다시피 을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탉은 싸우고 돌아와 두들겨 맞은 꼴을 하고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수탉은 패배감에 빠져있을 것이다. 참혹한 꼴과 패배감에 빠져있어 수탉과 을손의 모습은 동일하다.
“살기 띤 손이 부르르 떨렸다. 손에 잡히는 것을 되구 말구 닭에게 던졌다./공칙하게도 명중되어 순간 다리를 뻗고 푸득거리는 꼴에서 을손은 시선을 피해버렸다.”(p. 46) 이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전치’의 방어기제를 사용했다. “전치는 어떤 이를 향한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이때의 분노는 자신에게 반격하지 않거나 상처를 줄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2) 전치를 사용한 이유 또한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이다. 율손은 자신의 분노를 아무 관련 없는 수탉에게 표출했다. 그는 손에 잡히는 것을 다 던졌다. 그리고 공칙하게도 수탉은 죽었다.
“끊었다 이었다 하는 가엾은 비명이 을손의 오장을 뒤흔들어놓는 듯하였다.”(p. 46) 수탉이 죽기 전 “끊었다 이었다 하는 가엾은 비명”이 을손의 오장을 뒤흔든 이유는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테니 오장이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패배만을 거듭하는 한 인물의 자기모멸감이 수탉이라는 대상을 향해 외현화되는 것이다.”(p. 48)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난다. 이후 을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을손이 계속 살아갔으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한다. 그것이 삶이니까.”3) 삶은 단조로울 수 없고, 굴곡지다. 그래서 굴곡마다 후회와 미련이 남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후회와 미련을 통해 더 좋은 인간이 될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인간은 성장한다.
1) 이효석 외 (2008). 한국 문학을 다시 읽다 05. ㈜중앙북스의 책을 사용했다.
2) 로이스 타이슨. (2012). 비평이론의 모든 것: 신비평부터 퀴어비평까지 (윤동구, 역). 앨피. (원본 출판 2006년). p.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