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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Nov 29. 2022

낭만 또는 망상

낭만과 망상 사이...


 여행은 항상 내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만든다. 특히나 서울 여행은 지방 촌놈인 나에게 매번 새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번 연도 서울 여행에서는 친한 형들과 만나 숙소에서는 ‘닌텐도 스위치’를 통한 게임을 하고, 안동에서 보기 힘든 ‘인도 음식’을 맛있게 먹었고, 이태원에 있는 ‘시가 바’에 가서 시가를 피워댔다. 당시에는 돈이 부족했고, 여름이라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고, 형들도 나이가 있는지라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심지어 마지막 날에는 ‘M’형이 일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 3명에서 시작한 여행은 2명이 됐고, 2명마저 기차표 매진 때문에 따로 헤어지게 됐다. 하지만 계획한 대로 흘러갈 수 없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해 흥미롭게 생각했다..

 ‘M’형과 먼저 헤어지고 ‘L’ 씨와 단둘이 남았을 때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갔다. 요즘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내 초등학교 때하고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초등학생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내 키보다 훨씬 높이 쌓아져 있는 책들을 보면서 ‘이게 뭐야. 진짜 재미없고, ’글‘만 있는 책이잖아!’라고 생각하며, 만화책이 없는 헌책방은 빨리 나가자고 엄마에게 재촉했다. 그리고 십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왔을 때, 초등학교 때 그렇게 많이 열려있었던 헌책방은 단 네 곳만 문을 열었었다. 초등학생 때를 되돌아보며, 아쉬움의 한숨을 푹푹 쉬었다. 초등학교 때 ‘글’만 있는 책을 절대 읽어보지 않으려는 내 마음처럼, 헌책방도 닫혀있었다. ‘그때 글만 있는 책을 좋아했더라면...’란 후회를 하게 됐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열려있는 네 곳의 헌책방을 가보았다 ‘세 곳’은 문학 서적 위주였고, ‘한 곳’은 해외잡지 위주였다. 우리는 문학 서적 위주 책방을 들렸다. 한 곳은 소설책이 있었지만, 무협지만 다뤄서 구미에 당기지 않았다. 다른 한 곳은 밖에서 <당신들의 천국>을 진열했었고, 그 책을 구매하려 했었다. 그곳 주인장이 날 쓱 보더니 “이건 원래 만 원짜리 책인데, 팔천 원에 줄게요.”라고 말했다. 500쪽이 안 되는 헌책을 ‘팔천 원’에 팔려는 태도가 우리를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아 “안녕히 계세요.”라고 정중하게 말한 뒤 마지막으로 열려있던 책방에 갔다.

 마지막 책방 주인장은 40~50대로 추정되는 남자 주인이었다. 나는 주인장을 보자마자 “이청준 책 있나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장은 “이청준이가...”라고 말하며 열심히 찾아줬다. 물론 그곳에는 내가 원하던 이청준의 책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작가들 책을 찾아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 한, 두 권 정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래 구매하고 싶었던 김현 선생 책이나, ‘이제이북스’판 철학책은 한 권도 없었다. 열심히 책을 찾는 나에게 주인장은 “요즘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읽어서, 저희도 책을 정기적으로 받지 않아서 들쑥날쑥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주인장에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을 많이 안 읽나 보죠?”라고 묻자 그는, “어휴 그럼요 옛날에는 매일 줄 서서 기다리는 대학생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없어요.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손님들같이 책에 관심 있는 청년은 참 오랜만에 보네요.”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서비스로 책을 두 권씩 줬다.

 나는 서비스 책을 받았을 때 기뻤지만, 또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최근 소위 ‘SKY’ 출신 인문대 학사 중 성적 좋은 성적을 취득한 학생들이 직계 대학원을 가지 않고, ‘로스쿨’로 간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상이란 말인가. 이러한 현상을 보고 나이 많은 어른들은 “요즘 애들이 낭만이 없다.”, “돈에 정신이 팔렸다.”, “너네 같은 인재들이 인문학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인문학이 망한다.”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사회를 만든 장본인은 ‘나이 많은 어른들’이다. 요즘은 20~30년 전만큼 문학책을 소비하지 않으니 더 이상 ‘김승옥’, ‘김현’, ‘오정희’와 같은 거필들은 나오기 쉽지 않다. 또 거필들이 나오지 않으니 문학책을 굳이 구매할 필요가 없는 악순환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 돈으로 차라니 다른 것을 하는 게 유익할지도 모른다.

 요즘 시대에 가난한 집안―혹은 평범한 집안―에서 문학가―또는 문학자―를 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혹은 평범한 집안―이라도 학부 성적만 좋으면 장학금을 노려 ‘로스쿨’을 들어갈 수 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는 전제하에―로스쿨을 잘 졸업한다면 변호사나 검사를 할 수 있으며, 삼 년 뒤에는 판사까지 노려볼 수 있다. 그런데다가 무려 ‘사’짜 직업에 돈도 괜찮게 번다. 그러니 현세대 젊은이들에게는 인문대 대학원보다 로스쿨이 더 희망적이고, 노력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얼마 없는 기회 중 하나다. 하지만 ‘나이 많은 어른’들은 인문대 학생들이 로스쿨로 가는 모습만 보고 낭만 타령하며 젊은 세대를 욕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예전을 못 벗어나 자신들의 20대 때 시선으로 현세대 20대를 바라보고, 자신들의 낭만을 요구한다. 케케묵은 낭만이 지금도 유효한 낭만이라 말한다면,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망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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