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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Dec 06. 2022

작가추천 : 박완서

저의 최애 중 한명입니다 ㅎㅎ;;


 이번에 소개할 작가는 '박완서' 선생이다. 박완서 선생의 책은 읽은 것은 22년 1학기쯤 처음 읽었었는데, 그때 읽은 책이 <나목>이었다. <나목>을 읽은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로는 J 교수님이 수업 중 박완서에 대한 상찬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비평서를 읽던 중 비평가 로쟈(이현우)가 <나목>을 상찬했기 때문이 두 번째 이유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나는 이전까지 3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보면 숨이 턱 막혀 읽지 않았다. 그래서 <나목>도 보다 접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박완서의 문장력이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게 해줬다. 오히려 나의 시선 하나하나가 박완서 선생의 텍스트에 머물게 되었고, 내가 그 텍스트 속 세계에 존재하는 착각을 만들어줬다.

 <나목>의 줄거리를 대강 말하자면, PX에서 근무하던 이경이 옥희도씨와 불륜관계에 있었다가 결국 중산층인 황태수와 결혼한다. <나목>에서 박완서가 나타낸 캐릭터 성은 매우 흥미롭다. 옥희도의 경우 자신의 그림에 프라이드가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황태수의 경우 자수성가해 중산층이 된 남자이다. 그는 작중에서 어리숙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이번 글에서는 비평적인 요소 하나와 박완서 선생의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장들을 소개해보겠다.     


1. 중산층의 어리숙한 묘사.     


 중산층을 어리숙하게 묘사하는 모습은 박완서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그 남자 네 집>(이하 <그 남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첫사랑이었던 그 남자는 잘사는 집 사내였지만, 한 푼도 못 버는 철딱서니 없는 백수였다. 작중에서 주인공이 '그 남자'를 선택하지 않고 은행원과 결혼한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청첩장을 준다. 청첩장을 주려고 갔을 때도 그 남자는 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모른 채 음향 장비를 만지며 주인공을 환히 반겨줬다.

 <나목>에서 황태수의 어리숙한 모습, <그 남자...>의 그 남자의 모자란 모습은 박완서 선생이 의도적으로 중산층을 어리숙하게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리숙하게 뿐만 아니라 영악하게 표현했다. 단편집 <도둑맞은 가난>(이하 도둑)의 경우 주인공의 남자친구는 영악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중산층을 이렇게 어수룩하고 영악한 사람으로서의 묘사는 '조세희' 작가의 '이분법적 선악' 서술과 관련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 둘의 다른 점이 있다면 조세희는 이분법적 선악의 경우 노동자계급의 사람들은 항상 약자로 취급한다. 항상 당하기만 한다. 그리고 자본가는 영악해서 노동자계급의 사람들을 등쳐먹기 바쁘다.ー자본가는 악하고, 노동자는 어리숙하고 착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을 예로 들면, ‘자본가’의 꾐에 넘어간 난장이 가족들은 매매 계약서를 썼다. 영희는 자신의 집문서를 되찾았지만, 그 과정에서 ’자본가'에게 순결을 잃었다. 이렇게만 보았을 때도 조세희의 이분법적 선악을 알아볼 수 있다.ー 그러나 박완서는 조세희와 달리 무조건 중산층을 어리숙하고 영악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남자...>에서 주인공은 은행원과 결혼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또 어떻게 다른지 더 깊숙이 쓰고 싶지만, 나의 수준의 한계 때문에 기술하지 못해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다.     


2. 기가 막힌 문장들.     


 우리 학과 J교수님이 수업 시간 중 <그 남자...>의 한 대목을 말한 적이 있다.

그 대목은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그러나 졸업식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96p.) 의 대목이었고, 위 대목은 청첩장을 그 남자에게 준 뒤 줄거리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문장에 대해 "첫사랑이었던 ‘그 남자’가 이 네 문장과 더불어, 언젠가는 졸업해야 하는 ‘학교’가 되면서, 소설에서 퇴장하고 만다. 과연 대가의 문장이다. 이별을 고하는 자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불가피한 자기합리화의 양상을 세 개의 단문과 잔인하리만큼 정확한 비유 하나로 장악한다."고 평했다.

 신형철 평론가가 느낀 대단함처럼, 나 또한 그와 같은 대단함을 느꼈는지 수업이 끝난 뒤 내 몸은 도서관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이 외에도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도둑맞은 가난> 中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나목> 中     

"독서가 내가 빌붙이고 사는 현실에서 붕 떠올라 공상의 세계에 몰입하는 재미였다면 새로운 독서의 체험은 현실을 지긋지긋하도록 바로 보게 하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中

 위의 대단한 문장들은 박완서 선생의 연륜과 굵직굵직한 경험들에서 나왔다. 이러한 연륜과 경험은 박완서가 다른 작가들과 큰 차이점을 보여줬다. 그래서 내가 박완서 선생의 책에 홀딱 반한 것 같다.


 능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한 소설, 재미있고 뜻깊은 소설을 원한다면 박완서 선생의 소설들을 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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