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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Aug 04. 2023

너무 쓰디쓴 추억

너무 아픈 시절.

    

 추억이란 단어는 마법과도 같다. 추억으로 남게 되면 뭐든지 아련하고 그리워지기 마련이니까. 군 시절도 회상해서 다시 기억해 보니 너무 아련하고 예뻤던 나의 청춘의 추억이었다. 하지만 추억의 실체는 뭣 같음의 연속을 끊어내기 위한 자기부정의 결과이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감수성을 통해 흔히 ‘추억 보정’이라는 아름다운 행위를 통해 자기 일을 미화하기 마련이다. 나는 이 미화가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살인, 강도, 사기, 폭행처럼 실제로 죄가 된 일을 저지른 사람이 미화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에게 피해를 준 행위이고, 피해자가 미화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화가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각각 따로따로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미화를 할 수 있는 추억이 있고, 미화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되지 않는 일이 있다. 각각 한 가지씩을 뽑자면 ‘군대’와 ‘학교폭력’이다. 왜 군대는 추억 보정이 되고,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당한 것은 보정이 되지 않을까? 다시 말해 군대에서의 부조리들은 자기부정이 가능하고, 중학교 때 학교폭력 당한 일들은 자기부정이 불가능할까? 그 이유는 끝맺음의 여부에 있었다.

 군대는 동기를 제외한 다수들과의 관계가 상하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응어리진 외침은 선임과 후임에게 생생한 말 그 자체로 다가갈 수도 없고, 받아들여지지도 못한다. 즉 군대라는 공동체 속 말이 텍스트라면, ‘나’라는 텍스트와 ‘너’라는 텍스트가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동기를 포함해서 군대 속 사람들의 말은 명령이 아닌 전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공허한 외침밖에 없으니 군대 속 인간관계의 프로세스는 단순하다. 나는 선임을 보내주기만 하면 되니 그때까지 뒤에서 씹으면 되고, 내 후임도 나에게 스트레스받을 때, 내가 못 듣는 곳에서 날 씹으면 된다.

 이러다 보니 서로의 감정을 최소한으로만 걱정해 주면 된다. 쉽게 말하면 저 친구가 자살 안 할 정도로만 챙겨주면 된다. 그 정도로만 챙겨줘도 후임은 알아서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러니 제아무리 나쁜 선임이 전역할 때, 그 전역을 축하해주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선임을 잡아 패지 않는다.

 아무튼, 웬만하면 전역할 때 다들 축하해 주고 좋은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내가 웬만한 나쁜 놈이었어도 축하받고 사회 나가서 잘 살 생각을 하고 군 시절을 마무리 지으면 된다. 그렇게 끝맺음을 할 수 있다. 그렇게 군대를 하나의 추억으로 보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중학교 때 학교폭력은 달랐다. 10년이 훌쩍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초·중학교는 나에게 미화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잊어버리고 싶은 대상이다. 아직도 밤 11시나 새벽이 됐을 때 모르는 번호나 발신자 표시 제한 번호가 나에게 전화해 내가 하지도 않은 허황된 소문을 믿고, 그 소문은 그 사람에게 사실이 됐다. 그렇게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일 학교 오면 죽는다는 협박을 일주일에 삼일 이상 들었다.

 물론 그때마다 학교에 가면 아무 일도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네가 잘못했잖아!”라고 말한 교무실 속 담임교사의 음성, 내 이름 옆에만 ‘찐따’, ‘병신’, ‘좆같은 새끼’ 등등이 적혀있던 중학교 1학년 때 교실 자리 배치도, 날 보는 학우들의 눈빛, 자살 충동이 일어났을 때의 그 기분은 어제 일어난 일처럼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격려 하나 없이 초·중학교에 덩그러니 놔둬진 나는 그때에 머물러 있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집에서 공부하기 힘든 나는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날의 열람실에 공기는 쾌적했다. 그리고 콘센트가 있는 자리는 원래 잘 나지 않는데, 유독 그날은 자리가 나서 공부하기 신났었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난 뒤 쉴 때,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계속 내 눈에 들어와서 누군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는 나를 중학교 때 따돌린 주범 중 한 명이었다. 나는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으니 그 친구를 생각하지 않고 계속 공부했다.

 공부가 거의 다 끝날 때쯤 그 친구가 갑자기 나의 어깨를 톡톡 치며 이야기 좀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알겠다고 하면서 나갔다. 그 친구는 내 이름을 물어본 뒤 그 이름이 맞은 걸 알고 나서 “우리 중학교 때 친구였는데~~”라는 말로 계속 늘어지게 말해서 나는 “아 네...”라는 답만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 친구가 취업 이야기를 꺼내서 여러 가지 준비한다고 이야기하던 찰나에 갑자기 너무 화가 나서 할 말을 다 하고 중학교 때 이야기를 꺼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쪽이 나 학교 오면 죽이겠다고 말한 거 알아요? / 그쪽도 주동자 중 한 명인 건 기억해요?”라고 말했고, 그는 자신이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 이러한 반응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 친구에게 저런 말을 뱉은 날은 당연히 흘러가야 할 시간 중 하루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있어서는 안 될 날 중 하루의 일이라서 기억의 형태가 달랐을 뿐이다.

그 친구는 나의 일관된 진술에 결국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었다. 나는 “다음서부터 보면 인사만 하고 지내자”라고 말한 뒤, 그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본인이 학교폭력을 한 줄 알았던 사람이 학교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잘 지냈냐고 말한 것은 결국 자기 혼자만 끝맺고, 또다시 타인을 생각하지 않은 다른 형태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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