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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Aug 11. 2023

이별

헤어짐에 관하여.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 박완서. <그 남자네 집> 中


 당연하고 익숙한 것, 내 자아의 일부가 사라져 버렸다. 한 순간에 사라져서 나는 준비한 말도 못 한 채, 뒷모습도 못 보고 그냥 헤어져야 했다.

 이별은 슬프다. 위의 글귀처럼 나와 여자친구는 서로 통화로 많이 울었다. 서로의 눈물에는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물은 이 관계에 관한 눈물이 아니었다. 그저 슬픈 상황에 맞물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눈물이었다. 그러니 눈물이 그칠 때가 오면 그녀는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맨 위의 글귀는 여자에게 남자의 의미란 졸업해야 하는 학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소설 속 그녀도 현실의 그녀도 지금의 남자를 지나, 즉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달랐다. 남자는 여자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시간을 갖자는 말에 시간을 가지고, 그녀의 죽고 싶다는 말에 단 숨에 전화하고 만나자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만 믿고 있다. 아마 거의 모든 연애에 있어서 남자들이 그럴 것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얼마 전에 곧 1주년을 앞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돌이켜보면 여자친구는 내가 그녀의 추천으로 말레이시아 어학연수를 갔을 때부터 그녀는 이별준비 준비를 한 것 같다.

 역시 옛말에 틀린 말 없다고, 몸이 떨어지면 마음도 떨어진다고 했듯이 서로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평소 안 내던 짜증을 내고, 이기적으로 변해갔었다.

 결국 모든 불화의 시작은 사소한 일이었고, 사소한 말은 거대한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어떤 일인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돈이 없었고', 그녀는 나를 빨리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내 일정을 캐 물었다. 근데 서로의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다.

원래 나의 귀국 일정은 서울에서 사람들을 보고 여자친구를 보려고 했었는데, 사실이 서울 여행도 지인 A 씨가 금액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걸 기대하고 갈 수 있었다. 만일 A 씨가 서울에 못 간다고 했다면 나 또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카톡을 했었다. 하지만 A 씨는 며칠 동안 답하지 않았다. 그도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상심이 너무 깊어서 잠수를 탔는데, 하필이면 그 기간이 내가 일정을 물어본 기한과 겹쳐있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래서 일정 이야기를 못해줬고, 여자친구는 그 점을 일차적으로 서운해했었다.

 그 뒤에 그녀는 나에게 호의적으로 언제 만나난지 물어봤고, 나는 어떤 날을 말했지만 그녀는 답을 정해두고 나에게 말한 느낌이 강했다. 그 점에서 나도 일차적으로 기분이 안 좋아졌다.

  여차저차해서 어떤 날로 결정이 됐고, 그래서 몇 시에 오겠냐는 말에 나는 "기차 타고 먼저 너네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유 물어보니 '그냥 안된다.'가 이유였다.

여기서 의문점이 막 생겨났다. 내가 한 번도 그녀의 집에서 기다려 본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돈이 없었다. 돈이 없어서 비싼 고속버스보다 값싼 기차를 타고 가려고 했다.-고속버스 가격이 12,000원 정도 하는데, 솔직히 나에겐 부담이 많이 크다.-

 그녀가 인턴십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라서 돈에 대한 걱정이 나보다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군 적금 들어 놓은 게 다인 나에게 편도 12,000원의 고속버스 차표 값은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외국 다녀와 놓고 여자친구에게 "어 OO아 나 외국 다녀왔는데 돈이 없네?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줘!"라고 말하겠는가? 100번 양보해서 말할 수 있다 쳐도, 나의 귀국 다음날이 그녀의 생일이라서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배려는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는 서운함만 늘어뜨렸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 생일날 말고 다른 날 만나자고 했다. 그 뒤에 그녀는 시간을 갖자고 말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다음 날 나는 사과를 했지만, 그녀는 헤어지자는 카톡 두 문단을 나에게 보냈다. 그 뒤로 나는 계속 구질구질하게 구애했고, 그녀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매일매일 그녀의 진술은 밤낮 바뀌듯이 계속 바뀌었고, 내가 그녀의 말을 좋게 들으려고 해도 주도권 싸움, 가스라이팅으로 밖에 안 들렸다. 그래서 피말려 죽을 것 같았다. ー왜냐하면 일주일 시간 갖자고 해놓고, 삼일 만에 연락이 와서 "죽고 싶다. 너무 힘들다. 남들을 만나면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곪아 터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만나서 이야기하자라고 했는데 그녀는 그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그녀는 친구들이랑 파티룸 왔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계속 사랑한다는 말과 못 믿는다는 말을 끊임없이 했기 때문이다.ー 그래서 이러한 순환을 끝내고 싶어 그녀에게 정신 차리라고 처음으로 소리치고 욕했다. 그녀는 그제야 내 말을 제대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전화를 하는 중 그녀의 휴대전화 배터리는 방전이 돼 잠시 끊겼고, 나는 잠시 친구와 전화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에게서

"네가 나에게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고 너무 많이 실망하고 원망스러워서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면 나는 붙잡을 염치도 면목도 없어. 이제는 내가 기다릴게. 네가 하고 싶은 얘기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힘들게 외롭게 두어서 미안해."라는 카톡이 왔다.

 그런데 다시 전화 걸었을 때, 그녀는 갑자기 헤어지자는 통보를 내게 했었다. 나는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말했고, 그녀는 눈물도 안 흘리며 '이 관계가 본인에게 너무 힘들고, 너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분명히 그녀는 연애했을 때, 관계에 있어 고난과 역경이 생기면 만나서 이야기로 풀자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기가 온전치 않아 못 만난다 해놓고 자신의 스케줄 전부를 타인과 만나는데만 쏟아버렸다. ー평소 사람들이랑 맨날 밥 먹고, 술 마시러 다니고, 심지어는 파티룸 가서 놀고먹고 했다는 걸 나에게 당당하게 말했으니 말 다했다.ー 결국 시간을 갖자는 의미는 나에게 '자기만 편해지려는 속셈'으로 밖에 안보였다.
 즉 사색 없이 회피만 하려는 그녀의 회피기제에 나는 울화가 치밀었다. 내가 이제는 그녀의 자존감을 채우는 더미 밖에 안 되고, 돈이 없어서 그녀에게 공부한다고 거짓말 치고 공사판 일용직을 다녀오고, 쫓겨났던 그 아픈 사실들 우리의 많은 추억들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녀에게 일정을 빨리 이야기해 줬더라면, 내가 그녀에게 "미안한데 내가 진짜 돈이 없어서 그런데 양해를 구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면, 내가 고집부리지 않았다면 지금 나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말도 이제 나의 망상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내 처지가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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