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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일 Apr 03. 2020

안드로이드는 테세우스의 배에 오를 수 있는가?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책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부터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이르기까지, 서슬 퍼렇게 차고 건조한 이 이야기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 단 하나만을 고르라면 그것은 단연 '진짜와 가짜의 경계, 그리고 진짜란 무엇이고 가짜란 무엇인가'가 아닐까.


 하지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또 그 판단은 누가 하는가. 이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음울한 미래는, AI의 지배라던가 외계인의 침공이라던가 우주로의 식민지 개척과 같은 일들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곧 다가올 미래에서 우리가 걱정하고 나눠야 할 담론들은 이런 거시적인 것들이 아니라 개개인 내면으로의 폭넓은 고찰과 통찰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이것은 밖으로의 발산이 아니라 안으로의 침식이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 고향의 향수, 연인과의 이별처럼 존재란 것은 부재할 때 가장 크게 느껴지는 법이기에 그동안 나 스스로도 ‘나’가 실존한다는 것, 그리고 진짜라는 것에 미처 의심해 볼 여지가 없었다. 그 안이함 덕에, 되려 진짜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처절히 발버둥치는 안드로이드들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관조적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만약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경계가 존재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고 그 지점은 어디가 될까. 낡아가는 판자를 계속해서 새 것으로 교체해 넣은 그 배는 언제부터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게 되는 걸까.

 현재 생명과학계에서는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시키는 기술을 한창 개발 중이다. 그렇다면 돼지의 간을 이식한 나는 돼지인 걸까 사람인 걸까. 곧 기술이 더 발전되어 간을 포함해 소장과 대장, 허파와 콩팥, 심지어 뇌까지 이식하게 되는 순간까지 오게 된다면, 그때에 가서 나는 과연 돼지인 걸까 사람인 걸까.

 이 테제에 대한 논의가 그리 허무맹랑하지 않은 것은, 심지어 지금 당장 우리의 하드웨어를 놓고만 보아도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게 무용할 만큼 우리는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나면 6개월 전의 피부와 살을 이뤘던 세포가 모두 새 것으로 재생되어 6개월 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가 된다. 하드웨어적 측면에서 그 둘은 전혀 다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돼지 장기 대신 뼈를 철근으로, 핏줄을 전선으로, 뇌를 컴퓨터로 대체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도 안드로이드랑 다를 게 없을 텐데 합법적으로 폐기되어야 마땅한 존재가 돼버리는 걸까. 뇌를 100%가 아닌 절반만 대체한다면? 그때까지는 아직 인간이라 볼 수 있을까? 과연 어떤 순간부터 ‘나’는 ‘나’가 아니게 되는 것일까. 75%? 80%?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의 존엄에 대해 멋대로 구분 짓고 입맛대로 총칼을 휘둘러 왔다. 우리 존재의 우월성과 고귀함에 대해 논할 때마다 그 근간에 대해 정신과 이성 그리고 감정이란 것을 빠지지 않고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느꼈)던 이러한 추상적인 관념들조차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시대에 도달했다는 걸 안다. 우리의 모든 감정과 기억 그리고 행동들은 전기 신호로 이루어지는 신경 활동의 결과물이고, 이런 신경 활동의 기저에는 화학이 있으며, 화학의 기저에는 물리학이 숨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는 원자라는 아주 작은 입자의 운동이 있다.

 저 딱딱한 책상, 우주의 별과 블랙홀, 강아지의 대변, 맛있는 음식, 푸른 나무와 번뜩이는 다이아몬드까지. 그것들을 이루고 있는 것들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전혀 다르지 않다. 파인만의 그 유명한 말처럼, 모든 삼라만상을 쪼개고 또 쪼개면 결국 하나도 빠짐없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을 것인데, 과연 이 원자란 것에 진짜와 가짜가 존재할까? 설사 있다 한들, 대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우리가 그 경계에 대해 정의할 자격이 있는 걸까?


 환원주의적 관점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원자 하나를 가지고 우리가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해석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어쩌면, 우리가 함부로 재단하고 정의해 왔던 모든 행위 자체가 굉장한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철 지난 의문을 제기해 보고 싶다.

같이 본 영화 <블레이드 러너> - 리들리 스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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