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 Jul 31. 2022

사서에게 차가 필요한 이유(1)

순회문고

나는 시골 도서관에서 근무한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이용자들이 몰려드는 도시의 도서관과는 전혀 다른 생태계인 이곳은 줄어드는 인구와 그에 비례하는 도서관 이용률을 방어하기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갈수록 바닥에 붙어가는 대출량의 멱살을 잡고 한껏 끌어올리는 것은 역시 순회문고이다. 


순회문고는 면사무소, 아동센터, 유치원 등 책이 필요한 곳에 기관 이용자의 특성을 고려한 책을 사서가 직접 선정하고 배달해주는 대출 서비스이다. 매달 방문해 책을 가져다주고 있는 책을 수거해오는 단순한 업무이지만 한 번에 30권에서 100권의 책을 몇 개의 기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원론적인 생각에 닿는다. 특히 여름 땡볕 아래 양손에 그림책을 50권씩 들고 책을 배달하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면 한 시간은 아무것도 못하고 의자에 녹아있게 된다. 어느 직장이나 그렇듯 이렇게 단순하고 몸 쓰는 일은 막내 차지이다.


여기서 문제는 신규 사서들은 차가 없는 사회 초년생이 많다는 점이다. 규모가 큰 도서관이라면 관용차라도 사용하겠다만 전 직원을 한 손가락에 꼽는 도서관은 어림도 없다. 다른 사서가 모는 차를 타고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는 방법 밖에.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석 선생님과 관장님 차를 번갈아 얻어 타고 다니며 차와 노동력을 빌리는 내내 송구하기가 그지없었다. 인구는 적으면서 땅덩어리는 어찌나 넓은지 같은 지역이면서 50분을 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보다 더 말주변이 없던 나는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아무 말이나 뱉으며 조수석에 엉덩이를 겨우 붙이고 앉아 있었다. 


운전이 익숙해진 요즘, 나는 신규 선생님과 함께 순회문고를 다닌다. 미안해하는 신규 선생님을 보며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그것을 잊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베푼다면 조금 더 괜찮은 조직,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어딘가에서 읽었던 문장을 곱씹어 본다.


+

순회문고를 너무 노동의 입장에서 쓴 것 같아 덧붙이는 말.


기관에 책을 전달해주면 대출량을 올리겠다는 순수하고도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서들과 달리, 서비스 기관의 선생님들은 늘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서의 업무를 깎아내리지만 이런 보람들이 모여 이 일을 좋아하게 하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료실 사서의 덕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