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자랑만큼 무식한 것도 없다마는 나는 체구에 비해 힘이 센 편이다.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수있는 튼튼한 통뼈와 전완근을 가지고 있는 건 사서로서 천부적인 재능이다. 구체적으로 사서의 신체적 덕목을 꼽아보자면 세 가지로 추릴 수 있다.
- 지구력, 악력, 근력
매일 시시각각 반납되는 책을 지치지 않고 꽂을 수 있는 자. 어린이자료실에 아주 적합하다. 어린이들은 절대 책을 한 권씩 보지 않는다. 여러 책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보는 어린이, 만화책을 10분에 한 권씩 읽어치우는 어린이 등등 어린이 자료실에서도 다양한 어린이 군상을 마주할 수 있다. 체감상 한 명의 어린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열 권의 책이 남고, 열 명이면 백 권, 백 명이면... 그만 생각해야겠다. 어린이자료실은 정리할 자료의 양도 많지만 정리할 때 종합자료실보다 관절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서가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가구라 높이가 낮아 키가 작은 나도 허리와 무릎을 고이 접어야 한다. 정리해아하는 책이 100권이라면 50번은 허리를 접고 50번은 무릎을 접는다.(나중엔 무릎이 걱정되어서 맨 아래칸은 맨바닥에 아빠다리로 앉아 정리를 했다. 아빠다리도 물론 무릎에 좋지는 않다.) 자료실 내에 쌓인 책과 계속 반납되는 책까지 지치지 않고 정리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지구력은 어린이 자료실 사서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근력과 악력은 주로 도서를 폐기할 때 세트로 필요한 덕목이다. 도서관은 보통 1년에 한 번정도 이용가치가 떨어진 책들을 자료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폐기한다. 폐기할 도서를 뽑아냈으면 야무지게 끈으로 묶는 악력을 발휘할 때다. 책을 폐기업체에 넘기려면 몇 천권의 책을 20-30권씩 들기 좋게 묶어야 하는데, 책은 보통 제멋대로 생겼기 때문에 비슷한 크기로 추려서 잘 쪼매는 것이 중요하다. 책 묶음을 들고 내려가다가 와르르 쏟기를 몇 번 하다보면 왼손으로 잡아당기며 오른손으로 재빨리 매듭짓는 스킬을 저절로 쓸 수 있게 된다. 이 정도면 사서들은 이삿짐센터 취직할 때 경력으로 쳐줘야 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근력은 묶은 책들을 옮기는 데 쓰인다. 오래된 도서관은 보존서고(직원만 들어가는 폐가제 서고)가 보통 2,3층에 있는데 여기서 문제는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이다. 3층 보존서고에서 폐기할 도서를 추려내면 3층에서부터 1층까지 몇백에서 몇천권의 책 묶음들을 들고 내려와야 한다. 반대로 자료실의 책들을 이용률 저하등의 이유로 보존서고로 책을 올리려면 사람이 손수 들고 올라가야 한다. (...) 생각만해도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앞을 가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서는 지구력, 근력, 악력 삼박자를 갖춰야 자료실 근무자이자 장서 관리자로서 수월하게 일할 수 있다. 사서들의 구슬땀을 모르고 '사서는 편한 직업이지'라고 말하는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면, 믿는 그림책등에 발등찍히는 형벌이나 장서 20만권 규모의 도서관에서 주말에 혼자 책 정리하기 형벌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