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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Mar 11. 2020

내 삶의 공백기, 그 터널을 벗어나다

나의 삶에는 공백기가 있었다. 무언갈 하며 지냈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기. 그 시기에 기쁜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지만 나의 현재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건 한 가족의 구성원 중 한 명이라는 것과 어느 대학의 대학생이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가족은 위태로웠고, 대학생이라는 신분 또한 간당간당했다. 나는 나 자신을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들은 나를 괴롭게 만들었고, 급기야 나는 회피하기 시작했다. 그 탓에 나는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았다.


모범생.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나는 나를 이렇게 정의 내렸다. 아, 앞에 수식어 하나가 빠졌다.

못난 모범생.

스스로 뭔갈 할 수도 없는 모범생. 그저 어른들 말을 잘 듣기만 하는 모범생. 그 흔한 사춘기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소위 반항하는 아이들, 학교 성적이나 어른들의 말은 신경 쓰지도 않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살면 내 인생이 와장창 깨어져 붙일 수도 없을 줄 알았다. 나중에야 아무 생각 없이 어른들의 입김에 따라 흔들리며 산 인생이 깨어진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다.


스무 살이 되자 내 삶을 좌지우지하던 어른들은 이제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사회에 떠밀려 나왔다.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학은 나를 합격시켜주었다는 이유로 다녔다. 크게 애정을 가질만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더 바깥세상에 내던져지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같은 거였다. 그래도 그 끈이 은근히 든든했는지 나는 소중한 20대를 술 마시며, 게임을 하며 날려버렸다.


내 현재와 미래가 막막했고,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천할 줄 모르니 자유는 방종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지각이나 조퇴, 결석을 한 적이 없건만. 12년 개근이 무색하게도 대학에서의 결석은 쉽게 이루어졌다. 나는 종종 낮술을 마시느라 결석했고 나중에는 PC방에서 사느라 결석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었다. 동기들은 이미 졸업했거나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취업을 해서 결혼한 친구까지 있었다. 나는 그 사이 모든 연락을 끊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얼굴이나 들고 다닐 수 있겠나 싶었다. 잦은 결석으로 학점도 다 채우지 못했고, 심지어 학고를 받기까지 했다. 학점을 채우려면 8학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 정도로 형편없었다. 한참 어린 후배들과 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계속 학교를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아침 일찍 PC방에 가서 저녁 늦게야 나왔다.


본격적인 게임 중독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엔 PC방에 흡연실도 따로 없었다. 그 탓에 나는 온몸에 밴 담배냄새를 맡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른 아침 단골 PC방(집 근처로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간도 컸다)에 가서 자리 이탈하는 일 없이 온종일 게임만 했다. 그러고는 어스름한 저녁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창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삶은 종종 불안과 불면증을 가져왔지만 그것마저 잊으려 했기 때문에 대체로 평온했다. 그런데 그 평온이 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고 3번으로 제적.

28살이 된 2012년 여름, 학교에서 우편물이 하나 날아왔다. 학고 3번으로 제적당했음을 알리는 우편물이었다. 내가 아무리 가족에게마저 나의 일상생활을 속이고 살고 있다지만 거짓 대학생으로 살 자신까진 없었다. 눈 앞이 캄캄했다. 한동안은 얼빠지게 시간을 보냈다. 스물여덟이나 됐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다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내가 그동안 무얼 하며 지내왔던 건지 생각해보는 게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해야 했다. 계속 이렇게 사느냐, 앞으로 나아갈 것이냐.




다행히도 나는 나아가기로 했다. 이미 지나온 과거는 어쩔 수 없으니 현재와 미래를 더 생각해보기로 말이다. 이렇게 살다가 죽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는 수능을 다시 한번 더 보기로 했다. 지난해, 가까스로 찾은 나의 꿈과 목표를 위해 수능을 봤지만 실패의 고배를 맛봐야 했다(실패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기대도 하지 않고 봤던 수능을 이번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준비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정말 미친 듯이 공부에만 열중했다.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들지 않게, 나를 다시 PC방과 은둔생활로 몰아넣지 않게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데에도 힘썼다. 교사가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PC방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게임에 다시 손을 대지도 않았다. 이만큼 강한 의지를 보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나는 몰입했다. 11월, 그 날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2012년 11월 8일, 나는 내 생의 마지막 수능을 치렀다. 그리고 2013년 3월에는 지방의 한 교육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지난했던 긴 터널을 벗어나니 전과는 다른 삶이 내 앞에 펼쳐진 듯했다. 오랜만에 나선 바깥세상은 눈이 부셨다. 그래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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