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쭈만 한 움큼씩 집어주고, 고객을 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창원에서 강의를 마치고 부랴부랴 택시를 탔다. 기사 님은 반갑게 인사하며 ‘마이쭈’를 한 움큼 집어 주셨다. “이렇게나 많이요?” 예상치 못한 친절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기사 님의 일에 대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온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앞차가 빨리 가지 않자 기사 님은 조금 전의 친절함이 무색할 만큼 거친 욕설을 뱉기 시작했다. 나에게 동의를 구하듯 한참이나 앞차를 비난했다. 그 순간, 나는 불쾌했다. 나를 무례한 행위의 동조자로 전락시키는 듯한 그 행동이 몹시 불편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역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기사 님은 카카오택시 콜을 덥석 잡으셨다.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다.
“금방 가요. 취소되면 어쩔 수 없고, 기다려주면 고마우니 마이쭈 한 움큼 주면 되죠.”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기사 님에게 친절은 '고객을 향한 마음'이 아니라,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기술'에 불과했다. 기술은 목적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었다. 상황이 바뀌자 배려가 빠진 기술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KTX를 기다리며 ‘내 일’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정말로 고객을 위한다는 목적을 품고 있는가?' 아니면 '그럴듯해 보이는 스킬만을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상황이 변해도 태도가 일관되지만, 스킬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특정 상황에서만 효과를 발휘할 뿐이다.
‘나는 마이쭈만 한 움큼씩 집어주고, 고객을 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하고 싶은 일'은 단순히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고객을 위하고 싶은가'라는 진심 어린 마음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 지속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택시기사 분이 아무리 즐겁게 일한들, 누구도 그 택시를 다시 타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