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권을 찾아 주세요!

[만50세 N잡러의 하루-7편]

by 코리아앤

2002년 한국은 일본과 공동개최한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며, 꿈은 이루어진다.로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나의 2002년은 생각지 못한 위기로 힘겨움이 있었지만, 12월에 나의 인생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내 꿈의 도시 서울에서의 생활도 시작되었다. 나의 꿈 하나가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서울특별시에 왜 그토록 살고 싶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난 서울이란 도시가 마냥 좋았다. 인생회사에서 무슨 일을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지,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일을 하면서 국내, 해외 출장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매니저는 중국계 홍콩인이었다. 100세 시대 반을 산 지금 돌이켜 보니, 난 인복 많은 운 좋은 사람 같다. 매니저는 내 성장을 위한 영어학원, 대학원 지원 등에 흔쾌히 회사돈으로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다. 슬기로운 회사원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잘 아는 매니저라는 생각이 든다. 지원에 감동받은 나는 더 열심히 일 했다. 인생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국가들에 해외 출장을 갔다. 지금도 그 당시 쌓였던 마일리지가 남아 있어, 필요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이 꽤 있는데,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오늘의 이야기이다.

해외출장 가는 비즈니스 우먼 같네요 ^^


인생회사의 많은 공장들은 큰 도시 주변의 작은 도시 또는 시골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의 일은 수출을 하고자 하는 한국, 일본 회사들을 개발하고 평가한 이후, 인생회사의 공장들에 필요한 반제품, 부품들을 공급하게 하는 일이었다. 목적은 비용 절감이다. 당시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인생회사에서는 중국과 함께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 한국, 일본, 대만,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홍콩등에서도 가성비 좋은 반제품, 부품들을 적극적으로 구매 하려했다. 나는 한국과 일본, 두나라의 공급사 개발을 담당하는 바이어(buyer)였다.

해외 출장이 익숙하지 않은 시점에, 이탈리아 베니스 근교에 위치하고 있는 공장 방문을 위해 한국 회사들과 함께 베니스로 출장을 갔다. 일을 마치고 난 후, 베니스의 유명 관광지인, 산 마르코 광장 (Piazza San Marco), 산 마르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Marco), 대운하 (Canal Grande)을 둘러보면서, 해외출장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는 짧은 관광도 잘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출장을 갔던 일행들과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베니스공항에서 수속을 하려던 때였다. 일행들은 직항이었는데, 나는 스위스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경유하는 항공권 때문에 문의를 하려 잠시 항공사 안내데스크로 이동을 했다. 문의하고,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갑과 여권을 나의 노트북 가방 안에 넣어 두었다. 노트북 가방은 슈케이스 위에 올려 놓은 상태로, 일행들 옆에 두고 항공사 안내데스크에 다녀왔다.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상상이 되세요? 아름다운 나라 이탈리아에는 관광객이 많고, 그런 관광객을 불안하게 하는 소매치기도 많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일행들도 인지하지 못했던 사이, 나의 노트북 가방이 사라졌고, 나의 여권도 사라졌다. 난 국제미아가 되었다. 아이고! 어쩌나!

이탈리아 베니스, 요즘은 가라앉고 있는 도시로 뉴스에 종종 나오죠


베니스 공항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찾을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일행들에게 급한대로 현금과 신용카드를 빌리고, 출국장 안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일행들을 지켜본 후, 나는 다시 묵었던 숙소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로마로 가서, 임시 여권을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여행이든 출장이든 익숙하지 않은 내가 당시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그 상황을 대처했는지 모르겠지만, 돌이켜 보면 강한 생존 본능이지 않았을까? 싶다. 호텔에서 국제 전화로 매니저에게 연락하고, 친척언니에게 연락해서 신용카드 정지 요청을 하고, 로마로 가는 최대한 빠른 방법을 알아봤다. 중간 중간 호텔 프론트를 통해 경찰에도 연락을 해 보았지만, 굿뉴스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돌아 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날 밤 출발하는 야간 열차를 타고 로마로 가기로 했다. 유럽, 미국,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 야간 비행기는 종종 탔지만, 야간 열차를 타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야간 열차는 불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무서워서,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던 것 같다. 새벽에 로마에 도착했다. 같은 칸에 탔던 이탈리아 신사가 나에게 카페에서 맛있는 이탈리아 커피를 사 주었다. 무슨 정신으로 커피를 얻어 마셨는지 모르겠는데, 신뢰가 가는 신사였던 것 같다. 로마에 있는 대사관에게 가서, 임시 여권을 발급 받아, 다시 베니스로 돌아와 스위스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이틀이 지나 긴장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다.

베니스에서 돌아 올 때는 스위스 구경 못 했어요. 나중에 다른 출장으로 스위스 가 보았네요


2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많은 경험들이 쌓인 지금은, 그때를 돌이켜보면, 어차피 벌어진 일, 로마에 최소 하루라도 있으면서, 유명한 장소 구경이라도 하지? 하는 베짱 좋은 생각을 혼자 해 보기도 한다.

미국 친구랑 같이 눈 내리는 밤에, 스웨덴 도시에서 운전해서 최종 목적지 시골로 이동한 출장, 시차 때문에, 운전하다 깜빡 졸다 깨어나 가슴 쓸어내렸던 아찔한 미국 출장, 잘 알아 듣지도 못 하는 영어 네비게이션을 따라 최종 목적지에 어떻게 어떻게 겨우 도착한 또다른 미국 출장, 서툰 운전에다 렌터카 반납이 늦어져 하루 늦게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던 멕시코 출장, 늦은 밤 역주행 하다 큰 트럭이 빵빵거려 놀라 차선 변경한 이태리 출장 등등, 내 인생에 다양하고 많은 모험과 추억과 이야기를 갖게 해 준 인생회사 시절을 생각하면 즐겁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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