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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베이지 Mar 13. 2016

2014년 7월의 편린들.

all messed-up.




[2014. 07. 08] : 실패


  도무지 마음이 정리가 안돼서 일기를 끄적이다가 그것도 모자라 블로그를 켠다. 이럴 땐 그 감정을 하나 둘 써 내려가다 보면 엉킨 실타래를 꼬리에서부터 차근차근 풀어낼 수 있던 것이다.


  유난히 오늘은 양립할 수 없는 단어들이 칸막이 없이 마구 뒤섞여 머릿 속이 뒤죽박죽이다. 엉킨 부분을 이미 수십개는 푼 것 같은데 여전히 정돈되지 못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가위를 들 용기는 없어 조금 더 앉아서 지켜보기로 한다. 꾸준히 참고 견디면 끝내 소명할 기회 있으리라. 


  어느덧 이십대도 중반이 꺾이고 이름 모를 인디밴드의 노래처럼 친구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짝짓기에 몰두했다. 또 몇몇은 때 이른 결혼을, 혹은 이직 준비를, 그 가운데서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오늘은 출국을 앞둔 친구들과 간소하게 저녁을 했다.

  아, 우리는 오라는 데도 가야할 곳도 없이 이렇게 저마다 터널을 헤매었다.  














[2014. 07. 15] : 통보, when it rains it pours.


  발걸음을 하나 둘, 뗄 때마다 가슴에 진한 멍이 든다. 한껏 곪아있던 상처에다 허겁지겁 봉합해놓은 시침질은 느닷없이 닿은 소식 한통에 손쉽게 해체됐다. 예상된 소식이었고 난 만발의 준비를 이미 마쳐두었으나, 여느 스포일러가 그렇듯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사정을 듣고 찾아 온 주변인들은 피가 줄줄 흐르는 환부를 보고는 허겁지겁 연고 대신 화장품을 발라주기도, 욕지거리를 해대기도 하였으나 별 수가 없었다.


반면, 이성과 합리는 더욱 명백하게 내가 가야할 길에 형광펜을 덧칠해주었지만 발이 움직이질 않는다. 생각보다 괜찮다가도, 생각보다 힘들었다.그립다와 밉다는 관형사는 한 데 어울리기 어색한 단어인데, 참 밉지만 보고싶다.  















[2014. 07.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이유들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기에, 가만히 있는 것도 싫어서 시간을 까만 쓰레기봉지에 주섬주섬 담아 버리고는, 시간이 됐기 때문에 학원에 갔다. 밥맛도 없어서 담배로 끼니를 대충 때우곤 수업에 들어간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그럭저럭 수업을 끝내고 사무실에 걸터 앉아 있는데,





웬 걸.







  이런 귀한 선물을 받은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받은 두번째 선물. 근데 첫번째, 그 뿌듯함과는 다르게 오늘은 인간 대 인간으로써 큰 구원을 받는다. 말 못할 사정들로 축 처져있던 하루에, 그렇게 타들어가는 후회와 미련의 정수박이에, 폭포수같은 위로를 사정없이 들이부어 준 것이다.





내가 오만하게도 가르치려 들었던 학생이, 되려 날 다독인다.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럽고, 동시에 고맙고 미안하던지.







.

.

.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보다.

이런 게 사람인가 보다.


.

.

.

.





방 구석에서 머리를 싸매고,


한참을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던 나의 방향이.






내가 가르치려 들었던 학생이 도리어 내게, 속 시원히 알려주었다.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야 사람이고, 우리는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강사비를 받는 게 죄송하고 고마운 하루.


그 밝고 맑은 마음에 나의 어둠이 푹 안겨서, 크게 위로받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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