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거미가 거기서 왜 나와?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

by 푸르미르


아동자료실에서 반납된 책을 꽂고 있었다. 청구기호 순으로 책을 꽂기 위해 책수레에 놓인 책들을 0번대, 100번대, 200번대 이렇게 백 단위로 크게 분류를 하였다. 300번대 책이 내가 맡아서 정리하는 구역이라 그 책들을 양손에 안았다. 도서관에 이용자로써 방문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일을 하니 책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가 이따금 생겼다. 잘못 들다가는 손목이나 허리가 아프기도 했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청구기호에 맞게 책이 꽂혀있는지 2주마다 한 번씩 정배열 작업을 한다. 이렇게 정리하면서 책들이 서가에서 튀어나온 부분이 나란히 있게끔 각을 잡아준다. 서가의 옆에서 보면 책들이 나와 있는 정도가 똑같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찾을 때도 눈에 보기 좋고, 상호대차로 타도서관으로 나갈 책들도 찾기 쉽다. 상호대차는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배달 서비스이다. 타도서관의 책을 이용자가 자신에게 가까운 도서관으로 신청하면 그 도서관에 배달을 해준다. 굳이 타도서관을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유용한 서비스이다.


청구기호 300번대인 서가에 책을 꽂으러 향했다. 아직 300번대 서가까지 열 걸음은 남았는데, 300번대 서가와 뒷 서가 사이에 까만 물체가 보였다.

정확히 보기 위해 미간을 찌푸리며 보아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뭉쳐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건 먼지뭉치인가 보다.’

그러나 먼지뭉치로 단정 짓자마자 미세한 움직임이 보였다. ‘으, 도대체 저건 뭐지, 내가 잘못 본건가. 왜 움직이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천천히 다가갔다. 점점 더 까만 물체와 가까워졌다.

으악! 이건 거미였다. 그것도 내 검지 손가락만 한 거미였다.

아니, 거미가 거기서 왜 나와?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저 거미를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거미가 있는 곳으로 가면 거미가 나한테 오는 거 아니야? 책 꽂아야 하는데.’

거미 그림판.jpg 거미는 제가 가진 무서움 때문인지, 크기가 커 보입니다. 후들후들

중학생 시절 나는 수학학원을 다녔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학원에 늦지 않도록 집을 나섰다. 집에서 10분~15분 정도가 걸렸는데, 걸어가는 길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6그루 정도 있었다. 학원에 도착해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데, 선생님이 머리에 뭐 이렇게 예쁜 핀을 하고 왔냐고 말하셨다.

‘핀 안 했는데 왜 그러시지?’

내 머리 위로 선생님의 두 손이 가까이 왔다가 갔다. 손을 살짝 포개셨는데, 그 두 손 사이를 살짝 보여줬다. 길이가 나의 중지만 하고 미색을 띤 거미가 선생님 손안에 있었다.

‘으악! 으아아아아악!!!.’ 속으로 엄청 소리쳤다. 내적으로는 엄청나게 난리가 났지만 외적으로 보이기에는 내 몸이 굳어버렸다.

이 날부터 나는 거미가 더 무서워졌다. 당최 어디서부터 거미가 내 머리 위에 앉아있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집에서 거울보고 나올 때는 내 머리 위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수학선생님, 제 머리 위에 거미를 내려서 흙으로 보내주신 거 지금도 정말 고맙습니다.”


거미도 무섭지만 그 외에 다리가 많은 곤충을 무서워한다. 특히 기어 다니는 곤충들을. 곤충 스스로 제 갈길 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50cm 정도는 거리를 둬야 마음이 편안하다. 도서관에서 마주친 이 거미도 도저히 내 선에서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옆자리 직원에게 부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손으로 거미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서가 사이에 거미가 있는데요, 제가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멋쩍은 듯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엄마뻘 되시는 분이시라 그런지 그 미소에서 나의 엄마가 오버랩되었다. 옆 직원은 이면지 한 장을 챙겨서 거미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뒤로 총총총 내가 따라갔다.


그때 5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옆 직원은 이면지에 거미를 올리기 위해 허리를 굽혀서 종이를 바닥에 천천히 비스듬히 놓기 시작했다. 이때에도 나는 ‘거미가 빠르게 움직여서 서가 밑으로 숨어버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며 초조해했다. 옆 직원은 손목 스냅을 착! 이용해 거미를 단번에 이면지 위로 옮겼다. 그 모습에 와~ 하고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멋있으셨다. 그 어려운 일을 단번에 해내셨으니.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가 간절한 표정으로 "거미 살려주세요, "죽이지 말고 밖에 놔주세요."라고 얘기했다. 나는 아이의 말을 듣자마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거미의 생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서 내 눈앞에서 안보였으면 좋겠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옆 직원은 그 아이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응, 밖에 놓아줄게"라고 말하고 문을 열고 화단으로 뛰어갔다. 뜀에 의한 흔들림에 거미가 자료실 어딘가로 떨어지지 않을까. 혼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거미를 화단에 안전하게 놓아주고 이면지만 가지고 자리로 돌아오셨다. 옆 직원이 아이가 바라는 대로 해준 모습이 참 좋았다. 동심을 지켜주고, 생명도 살리는 1석2조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거미가 자료실 밖으로 나가질 때까지 그저 무서워 멀찌감치 서서 전전긍긍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거미의 목숨을 걱정하며 살려달라는 말을 건네었다는 것에 대해 나는 부끄러웠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어느 하나 귀함을 비교할 수 없다고 배웠거늘, 나를 해치려고 달려들지도 않은 거미를 무섭다고 가만히 서 있던 내가. 그나저나 거미는 어떻게 도서관에 있었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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