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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ppy Mar 23. 2021

완치 불가의 봄바람이 나버렸다.

‘제주대학교 벚꽃길’






“너는 어디쯤 서성이다가 어느 계절을 돌고 돌아 나의 세상에 닿을까” – 못말 김요비, <그때 못한 말> 중에서












나에겐 항상 짝사랑처럼 기다리는 계절이 있다. 그 계절은 첫사랑의 잔상처럼 맘 속을 맴돌며 지독한 향수병을 동반하고는 하는데, 바로 ‘봄’이라는 녀석이 그 주인공이다. 애타게 기다릴 땐 안 오더니, 예고도 없이 어깨 위로 꽃 비 한 조각을 슬며시 얹으며 또다시 저에게 속절없이 빠져들게 한다. 아- 이건 완치 불능의 불치병임이 틀림없다. 봄날이 나에게 주는 설렘은 너무나도 유혹적이고, 달콤해서 자꾸만 눈길이 닿는 걸 스스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벚꽃, 젊음, 낭만








짧지만 강렬한 봄은 젊음의 캠퍼스 안에도 어느새 스며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학업, 취업 등의 고민거리를 잠시 내려놓고, 모두들 봄의 완연한 기운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이 벚꽃나무들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교정 한편을 지키며 가장 빛나는 청춘들의 봄을 매년마다 눈에 담아 왔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더 이상 청춘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순간이 오면 이 벚꽃나무를 다시 찾아가 보자. 이들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때 그 시절 당신의 눈부신 잔상을 필름처럼 현상해 또 한 번 젊음의 봄을 인화해 줄 것이다.






봄바람이 나버렸다








그저, 우연히 봄은 거리 곳곳에도 찾아왔다. 언제나 돌고 돌아오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첫사랑을 마주하듯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순수하고도 화려한 연 분홍빛 벚꽃나무를 마주한 순간은 누구나 출구 없는 봄바람이 나 버리기 십상이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더니, 기어코 나는 그 지독한 봄바람이 나 버렸다. 일을 하다 가도, 밥을 먹다 가도 자꾸만 맴도는 봄기운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다행히도 그게 나만의 봄바람은 아니었는지 제주대학교 벚꽃길 사이사이에는 봄바람난 사람들의 발길로 거리가 분주했다.







봄이라는 불치병







제주대학교를 가는 사거리에서부터 제주대학교 입구까지 이어진 이 벚꽃길은 이제 제주의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지나가는 차들에게 손짓하는 벚꽃의 자태에 다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홀린 듯이 벚꽃을 감상한다. 유난히 꽃잎이 크고 화려한 제주 고유의 왕벚꽃은 저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로 제주의 자랑거리가 되어 주었다. 또한 힘들었던 누군가에겐 유난히도 춥고 길었던 겨울을 견디게 하는 이유가 되어 주었다. 봄의 전령사가 곳곳에 묻히고 간 벚꽃은 이제 곧 꽃비를 내리며 사라지겠지. 그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오래- 그리고 더 많이 눈에 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온기로 나머지 계절을 살아가며 또 한 번 봄이라는 불치병에 걸릴 것이다.






by. choppy

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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