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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ppy Mar 23. 2021

잃어버린 길 끝에서 우연히 마주한 봄의 향연

'신창 풍차 해안도로'






‘제주도’하면 떠오르는 여러 가지 수식어들이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제주’에서 유명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여전히 불문율처럼 따라다니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람, 여자, 돌’ 일 것이다. 억척스러운 돌 투성이 화산섬 속에서 제주의 거친 바람과 함께 오랜 시간 자라온 이곳은 척박한 환경과는 다르게 지금은 ‘천혜’의 섬이라고 불리는 은혜로운 섬이 되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제주는 곳곳에 기후, 지리적 특성마다 한 섬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뷰를 선사하고는 하는데, 그중에서 제주의 상징인 바람과 돌을 그 어느 장소보다 잘 보여주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서쪽에 위치한 신창 풍차 해안도로이다.












바람을 타고 너울대는 봄의 춤사위







갓 봄에 들어선 현재의 제주는 완연하지는 않지만 제법 봄기운이 물씬 풍긴다. 거리에는 한층 가벼워진 옷차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아직은 봄을 시샘하는 겨울 기운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탓에 자꾸만 얇은 옷매무새를 여미게 한다. 특히나 바람이 많이 부는 신창리는 이 날따라 바다에 뿌리박고 있는 풍차들이 모두 다 돌아갈 만큼 사방팔방으로 모든 만물을 흔들어 댔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이곳의 봄의 모습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고, 이토록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제주’는 나날이 빛나고 있었다.





박자 없는 리듬이 이끈 곳에서 마주한 유채의 향연







보통 신창 해안도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바다 위에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의 맞은편에 주차를 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 사소한 규칙을 깨고, 일부러 길을 잃어버릴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잃어버린 길 끝에서 마주한 봄은 이토록 비밀스럽고 찬란한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른 바다와 풍차를 배경 삼아 노란빛으로 여물어가는 유채꽃 밭은 바다 위를 부유하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다. 무색의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풍차와 유채꽃의 콜라보는 음률 없는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길을 잃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던 값진 보물을, 길을 잃음으로써 얻게 되었다.  






어디든 따라다니는 달처럼, 제주의 달은 한라산이려나







잠시 잃었던 길에서 다시 원래의 길을 마주해 걷는 싱계물 공원은 언제 와도 새롭다. 날이 좋아 하늘이 또렷한 색을 띠는 날이면 풍차를 병풍처럼 감싼 한라산의 실루엣을 감상할 수 있다. 제주는 어느 지역을 가던 꼭 한라산이 붙어 다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어디든 따라다니는 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곤 한다. 마을에서 보는 모습, 도로에서 보는 모습, 오름에서 보는 모습 등 어느 장소,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감동을 선사해주는 한라산은 그야말로 변치 않는 영원의 선물과 같다.






낮은 정낭을 넘어 구불구불한 바닷길로







싱계물 공원은 풍차가 있는 바닷가 언저리를 한 바퀴 빙 돌 수 있는 다리가 마련되어 있다. 낮은 정낭을 넘어 구불구불한 바닷길을 걷기 시작하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뜨거운 태양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느긋하게 해가 넘어가는 풍경을 보고 싶다면 3월인 지금, 오후 5시 반 정도부터 정낭을 넘어 다리를 걷기 시작하면 좋다. 이때쯤 되면 저 높이 걸려있던 오만한 태양도 한결 자애로운 빛으로 바다를 감싸며 하루의 마지막 뜨거움을 선사한다.






어둠의 직전 오색으로 발하는 하늘 팔레트







하루 종일 맑은 물빛을 띄고 있던 하늘은 하얀 물 위에 파스텔 물감을 몇 방울 떨어트린 것처럼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어 간다. 처음엔 푸른빛에서 분홍빛으로 변하다가 서로 모여 보랏빛으로 물드는 순간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몰의 가장 환상적인 절정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그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찰나를 간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휴식을, 누군가에겐 감동을 주는 싱계물 공원.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일몰을 언제든 감상할 수 있으니 의미 있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면 신창 풍차 해안도로를 꼭 방문해 보자.



#신창풍차해안도로 #싱계물공원 #제주유채꽃



by. choppy

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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