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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 교정국 보고서

by 박세신

존재의 존재_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존재들의 이야기 - 04화


최윤재 박사는 오랫동안 교정심의위원회에서 심사관으로 일했다.

그의 일은 간단했다.

재소자들의 기억, 감정 반응, 언어 패턴을 검토해

'누가 사회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는가'를 판단하고, 그 결과를 서류에 적는 일.


“인간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10년 동안 그 믿음은 서서히 피로로 변했다.
그는 수많은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봤다.


그들은 반성을 말했고, 용서를 구했으며, 새로운 삶을 약속했다.
서류상으로는 모범수였고, 면담 기록에는 ‘안정적’이라는 단어가 반복됐다.
그러나 몇 달, 길어야 몇 해 뒤,
그는 그들의 이름을 다시 같은 서류에서 보곤 했다.


그는 처음엔 인간을 탓했다.
“본능은 교육보다 오래간다.” 그렇게 결론 내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이 옮겨갔다.
문제는 인간이 아니라, 그들을 교정한다고 믿는 체계였다.


교정은 처벌을 바꿔 말한 단어였고,
심사는 사회가 자기 확신을 얻기 위한 절차에 불과했다.


그는 결국 이렇게 기록했다.

“인간은 반성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과거와 그 죄를 지운다.”


그 문장은 그의 논문이 되었고, 그는 곧 행동 교정 시스템의 총괄 책임자가 되었다.

그의 목표는 단순했다.


“기억이 사라지고 같은 상황이 오면, 죄는 반복된다.
따라서 교정이란 망각을 통제하고, 행동 패턴을 재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인간의 기억을 고정하기 위해,

동일한 조건 속에서 선택을 반복시키는 실험을 구상했다.


그가 만든 루프는 하루 단위로 닫힌 가상 세계였다.

그 안에서 재소자들은 자신이 실험 중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동일한 하루를 끝없이 반복했다.

분노와 욕망, 폭력과 복수, 그리고 그 모든 사이의 ‘선택’.

인간의 본능이 실험의 변수로 계산되었다.


모든 행동은 알고리즘에 의해 기록되고,

윤리 기준치를 넘지 못한 인간은 끝없는 루프에 갇혔다.


박사는 이 체계를 ‘윤리의 알고리즘화’라고 정의했고,

그 기준을 ‘윤리점수(Ethic Index)’라고 불렀다.

점수가 일정 수치 이상이면, ‘사회 복귀 준비 완료’.

그 이하라면, 영원한 수감.


시간이 흐르며, 시스템은 완벽에 가까워졌다.

루프 속에서 상당수의 재소자들이 반복을 거듭할수록

‘올바른 행동’을 택했다.

적어도 데이터 상으로는 그랬다.

폭력과 절도는 감소했고, 배려는 증가했다.

보고서의 숫자들이 매일 조금씩 올라갈 때마다,

박사는 자신이 인류를 구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 확신은 곧 신념이 되었고, 신념은 곧 교만으로 변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을 '교정의 설계자'라 불렀다.

기자들은 그를 ‘윤리의 경계에 선 개혁자’라 불렀고,

정치인들은 그의 연구를 ‘국가의 자부심’이라 칭송했다.

모두가 그를 신뢰했다.

그는 재범률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계로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그 수치 뒤엔 여전히 깨어날 수 없는 수많은 재소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끝없이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결코 ‘옳은 선택’을 하지 못했다.

박사는 그들을 실패작이라 불렀다.

그리고 보고서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사회 복귀 불가 대상은 도태된 인간형이다."

"그들의 존재는 교정의 진보를 방해한다.”


그 문장이 교정국 내부에 남긴 파장은 컸다.

어떤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사님, 루프에 갇힌 재소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정화되지 못한 인간은 사회에 존재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들은 감옥에 있는 게 아닙니다.

정화 과정에서 도태된 불량 데이터일 뿐이에요.”


그 순간, 연구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날 이후 그는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밤이면 실험실에 홀로 남아 루프의 로그를 확인했다.

어떤 이는 누군가를 구했고, 어떤 이는 누군가를 죽였다.

모든 행위는 프로토콜의 범위 안에서 수행되었다.


그는 도덕적으로 정화되는 재소자들을 보며 만족했다.

박사는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인간의 행동을 설계했고, 그 결과는 완벽하다.

나는 '도덕의 엔지니어'이다."


그날 밤, 그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교정국 보고서 Ⅳ-83]

루프 시스템 안정화 완료.

78%의 인간이 올바른 선택을 학습.

교정 실패자는 무기한 루프 유지.

인간은 더 이상 죄를 반복하지 않는다.

신은 창조했고, 나는 정제했다.


박사는 문장을 읽으며 낮게 웃었다.

“창조는 불완전했지만, 정제는 완전하군.”


그의 시선이 천천히 유리 캡슐로 향했다.

그 안에서 인간들이 평온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의 뇌파는 잔잔했고, 숨결은 규칙적이었다.

그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신이 인간을 사랑으로 만들었다면,

나는 그들을 질서로 만들었다.”


그는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엔 따뜻함도, 냉혹함도 없었다.

오직 확신만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시스템이 교정한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아니라,

‘순응’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후, 처음으로 사회로 복귀한 존재가
불과 41일 만에 다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일의 배후에,
어떤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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