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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 악마

by 박세신

존재의 존재_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존재들의 이야기 - 03화


사람들은 나를 악마라고 부른다.

아마도 악하다는 이미지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악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능력을 왜, 어떻게 갖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악마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게 됐다.

내 인생의 첫 기억은 어떤 사람이 내 앞에서 펑펑 울며 흐느끼는 모습이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그 눈물, 흐느낌, 그 얼굴에 깃든 절망의 향기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 불행한 모습은 나에게 ‘쾌락’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내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시점부터 다른 사람의 불행한 상황과 그로 인해 내가 느끼게 되는 이 감정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됐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오직 나만이 향유할 수 있는 오로지 나의 것.

더군다나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불행이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친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나에게 평온 그 자체다.

”아, 오늘도 불행의 향기가 가득하네. 참 좋은 날이야 “


내 능력 중 하나는 불행의 향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숨 쉬듯 자연스러운 감각이라,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불행해질지, 그 인과의 실타래가 눈앞에 그려진다.

마침 저기 익숙한 향이 난다.

따라와서 같이 맛보는 건 어떤가?


저기 보이는 저 남자, 이름은 박정우.

한때는 잘 나가는 회사의 사장이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회사의 파산, 장모와의 끝없는 갈등, 아내의 불신, 빚, 그리고 이혼.

무너지는 삶의 잔해 위에서 그는 결국 분노를 삼키지 못하고, 자신의 장모였던 여자를 죽였다.

20년의 형량. 그리고 감옥 안에서의 갱생 프로그램.


사람들은 ‘기적적인 사회 복귀’라 부르기도 했고, ‘살인자의 귀환’이라 수군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인간의 악행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잠시 봉인될 뿐이지.


오늘이 그가 출소한 지 41일째 되는 날이다.

여전히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좁은 고시원 방에서 컵라면을 후루룩 거리며,

세상이 자신을 용서해 줬다고 스스로를 속인다.

그는 지금도 믿고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그 믿음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왜냐하면—

그 믿음이 꺾이는 순간, 그 향이 가장 짙고 달콤하거든.


“더없이 훌륭한 식사가 되겠군. 흐흐—”


저녁이었다.

창문에 매달린 네온사인이 그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의 고시원 방은 좁았고, 라면 국물 냄새와 눅눅한 이불의 곰팡내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켜서 구직 사이트를 훑었다.

“지원 완료 0건”

그 글자를 보고 그는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웃었다.

체념이 섞인 그 웃음에서, 나는 익숙한 향을 맡았다.

부드럽고 깊은 절망의 향.


나는 그때 나타났다.

“박정우 씨.”

그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내가 방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누구… 누구세요?”

“그냥, 일자리 알선인이라고 해두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하루 종일 이력서 넣어도 답이 없고,

돈도 없고, 나만 불행한 것 같고…”


그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동자엔 피로와 수치심이 엉켜 있었다.


나는 아주 조심스레 한 걸음 다가갔다.

“당신은요,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세상이 당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죠.”

그 말에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억울하죠?”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낮게 웃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준 건 기회가 아니라, 감시예요.

당신이 다시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죠.

그럼 모두가 안심할 테니까요.

‘봐라, 저런 놈은 안 변해’ 하면서 말이죠.”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미약하지만 분노가 스며들었다.

나는 그 향을 들이켰다.

진하고, 따뜻했다.


“정우 씨.”

나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속삭였다.

“그래서 제안 하나 하려고요.

이건 일종의… 게임이에요.”


그가 눈을 찌푸렸다.

“게임요?”

“네. 아주 간단한 게임.”

나는 주머니에서 오래된 은색 동전 세 개를 꺼냈다.


“단 한 명을 죽여서, 그 사람의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의 삶을 살겠습니까?”


그는 말을 잃었다.

나는 웃으며 덧붙였다.

“선택지는 세 가지예요.”


“하나, 당신의 전 아내의 남편.

둘, 이 사회에서 누구보다 떵떵거리는 어떤 공직자.

셋, 평범하게 사는 아무 타인.”

“누구를 고르든 상관없어요.

당신이 고르면, 그 사람의 삶은 사라지고, 당신이 그 자리를 대신 살게 될 겁니다.”


내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방 안의 공기가 서서히 식어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왜…”


“말도 안 되나요?”

나는 웃었다.

“그럼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삶은 말이 되나요?

아무도 받아주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 삶이?”


그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건 내가 기다리던 리듬이었다.


나는 동전들을 그의 앞에 굴렸다.

동전은 바닥을 굴러가다 ‘짤깍’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의 시선이 거기에 박혔다.


“딱 한 번 뿐이에요, 박정우 씨.”

나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손으로 선택하세요.”


그는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낮게,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첫 번째요,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잘할 수 있어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이제 당신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가 문을 열고 나간 순간,

방 안에 남은 라면 냄새 위로, 불행의 향기가 천천히 퍼져나갔다.

그날 밤, 그는 오래 망설였다.

창밖의 비는 묘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떨어졌고, 방 안의 시계는 그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초침을 쪼갰다.

그는 몇 번이고 나를 쳐다봤다.

“정말… 그 사람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단, 그 선택이 당신의 의지여야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결심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이성의 껍질이 얇게 벗겨지고, 그 안에서 본능이 모습을 드러낼 때 —

나는 그 향을 느낀다.

따뜻한 살 내음과 뒤섞인 절망의 향.

아름다웠다.


그날 저녁, 그는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샀다.

그리고 전 아내의 남편이 매일 퇴근길에 들르는 그 골목으로 향했다.

물론 그의 행선지와 실행 장소는 내가 다 알려줬다.


길 모퉁이엔 가로등이 깜빡거리고, 비가 가늘게 내렸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인간의 ‘결정적 순간’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 — 그건 나의 오랜 취미다.

그는 처음엔 그냥 서 있었다.

손엔 맥주 캔, 눈은 멀리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다 저 멀리, 한 남자가 걸어왔다.

정장을 입은, 평범하고 깨끗한 남자.

그의 전 아내의 새 남편이었다.

그가 멈춰 섰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나는 그의 어깨너머로 그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면 바꿀 수 있습니다.”

나는 속삭였다.

“이 남자의 삶을 가지세요. 원래 당신 거였잖아요.

그에게 있는 집, 가족,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까지.”


그 말에 그의 손이 움찔했다.

캔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비가 점점 굵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한 마디 뱉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제 것을 되찾고 싶을 뿐이에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정우의 손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비의 리듬만 남았다.

나는 그 순간의 향을 들이켰다 —

뜨겁고, 진득하고, 죄의식이 타오르는 냄새.

그의 머리가 벽에 부딪히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두 번째, 세 번째.

손에 묻은 피가 비와 함께 번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남자는 조용해졌다.


박정우는 그대로 무너져 앉았다.

숨이 가쁘게 들이켜졌다.

나는 그의 곁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

“이제 됐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의 삶을 살게 될 거예요.”


그의 눈이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엔 공포와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닦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전 아내의 집으로 향했다.


새벽이었다.

그가 문을 열자, 집 안은 고요했다.

불이 꺼진 거실, 바닥에 흩어진 장난감들, 벽에 걸린 가족사진.

그는 천천히 사진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진 속 남자는 미소 짓고 있었다.

바로 방금 전, 그가 죽인 남자였다.

“내가 저 남자의 모습으로 사는 것인가?”


떨리는 손을 움켜쥐며, 열심을 다짐하는 그였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전 아내가 — 아니, 이제 그의 아내가 — 나타났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엔 인식이 있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박정우… 당신이, 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소리엔 분노도, 공포도, 그리고 완전히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다시 시작된 불행’의 냄새였다.


그리고 박정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지켜만 봐도 더할 나위 없는 메인 디시로 충분했다.

처음엔 ‘어떻게 된 거냐’는 의아함, 그다음은 ‘속았다’는 배신감, 그리고 분노 그 모든 것이 그의 눈동자에 비쳤다.


나는 그것을 깊게 들이켰다.

그 순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빨갛고 푸른빛이 창문을 덮었다.

그의 손끝에서 피가 식어가며, 현실이 그를 덮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 사람의 인생을 살게 해 준다며…”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미소 지었다.

“저에게 그런 능력은 없답니다. 그리고 박정우 씨, 당신은 이미 그 사람의 삶을 살고 있어요.”

“무슨…”

“살인자라는 점에서 말이죠.

그 사람도, 언젠가 누군가의 삶을 짓밟으며 살았거든요.”


그가 나를 바라봤다.

눈에는 절망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눈 속에서 내 모습을 봤다.

그의 불행은 완벽하게 무르익었다.

내가 원하는 향이었다.

그가 체포될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창문 너머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박정우로 인해 새 남편까지 잃게 된 여자의 절규, 비극.


“디저트까지 완벽하군.”


창밖에는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신문 한 장이 고시원 창문 아래로 떨어졌다.

1면엔 또 다른 이름이 실려 있었다.

「전직 정치인, 비리 혐의로 구속」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세상은 언제나 신선하지.”


나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 코끝에, 또 다른 불행의 향이 스며들었다.


- Chapter 3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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