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존재_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존재들의 이야기 - 01화
이른 저녁,
휴대폰을 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내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웠고, 통화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만하자. 됐어, 됐다고!”
끊어버린 화면에 비친 건, 분노로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때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낯선 남자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걸었다.
“저와 게임 한 판 하실래요?”
남자는 짜증스럽게 노려봤다.
“말 걸지 말고, 가던 길 가세요. 짜증 나니까.”
하지만 낯선 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재밌는 게임이에요. 단 한 번뿐인 기회죠.”
계속되는 그의 집요한 미소에,
피로와 짜증이 뒤섞여, 결국 남자는 툭 말했다.
“하… 한다, 해! 한 판 해줄게. 뭐! 뭔데!”
낯선 남자의 눈빛이 스르르 변했다.
그는 조용히 규칙을 읊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걸어야 합니다.
다만, 게임이 시작되면 그게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어요.
끝나면 다시 기억나죠.
이긴 사람은 상대의 ‘가장 소중한 것’을 갖게 됩니다.
단순해요. 제 퀴즈에 대답만 하면 됩니다.”
“하,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좋아, 빨리 해봐.”
남자가 비웃자, 낯선 남자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며 말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뭐라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뭐지? 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지? 이게 진짜 가능한 일인 건가?'
그러다 그 남자는 문득 깨닫게 된다.
“이건 반칙이잖아!” 남자가 외쳤다.
“떠오르지 않게 만든 다음에 그걸 문제로 내면 말이 돼?!”
“물론이죠.” 낯선 남자가 미소 지었다.
“억울하신가요? 그럼, 작은 기회를 드리죠.
셋 중 하나를 고르면 기억이 돌아올 겁니다.”
그는 차분하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1. 눈
2. 심장
3. 뇌
“뭐야 이게, 장난하나… 그래, 1번 눈이야.”
“좋아요. 이제 떠오르시나요?”
“…응. 떠올랐어.”
남자의 표정이 순간 부드러워졌다.
“나, 아내한테 가봐야겠어. 내가 이겼으니까, 네 소중한 걸 내놔.”
낯선 남자는 조용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제 소중한 것, 받으세요.”
남자는 손바닥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뭐야?”
“당신의 불행입니다.”
“뭐? 네 소중한 게 내 불행이라고? 미쳤네 진짜.”
남자는 욕설을 퍼붓고 돌아섰다.
“시간 낭비했네. 꺼져.”
“아, 말씀을 안 드렸군요.”
악마가 낮게 웃었다.
“조금 전의 선택,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당신의 소중한 것에서 가져갔거든요.”
“뭐라고?”
남자가 돌아봤을 땐,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 뭐지, 진짜인가?
미친놈 말에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그는 급히 전화를 걸었다.
‘뚜—뚜—’
아내는 받지 않았다.
그는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아내는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이 허공을 더듬었다.
“당신… 왜 이제 왔어?
나, 눈이 안 보여.”
남자의 머릿속에서 저녁의 일이 떠올랐다.
게임, 기회, 눈, 소중한 것… 그리고 ‘불행’.
그는 소리 없이 주저앉았다.
밖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게임 한 판 하실래요?
당신의 소중한 것이 떠오르지 않을 겁니다.”
혹시 지금,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떠오르지 않나요?
- Chapter 1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