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의 사회문화적 배경
1. 들어가며: 가족 전략으로서의 이주
2025년 6월 기준, 한국에 체류하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자는 약 98,300명으로, 전체 체류외국인의 3.6%를 차지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E9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다. 정부는 2025년 E9 비자 쿼터를 13만 명으로 확정했으며, 우즈베키스탄은 한국과 고용허가제 MOU를 맺은 16개 송출국 중 주요 국가로 자리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의 이주는 단순히 개인의 경제적 선택이 아니다. 이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 송금 의무, 공동체 네트워크라는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족 전략이다. 본 글에서는 E9비자로 입국하는 우즈베키스탄 인력을 중심으로, 이주 결정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구체적 사례와 2025년 최신 통계를 바탕으로 분석한다.
2. 우즈베키스탄의 경제적 배경과 이주 압력
2-1. 경제 현황과 실업률
우즈베키스탄은 약 3,5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중앙아시아 최대 인구 국가다. 15~64세 노동가능 인구가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나, 풍부한 노동력에 비해 국내 일자리는 부족하다. 2024년 실업률은 5.5%로 집계되었으나, 실제 청년 실업률과 비공식 실업은 훨씬 높다.
소련 붕괴 이후 우즈베키스탄 경제는 침체기를 겪었다. 1991년 독립 당시 모든 공장과 산업이 멈추면서, 농업과 축산업 외에는 가족을 부양할 방법이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은 해외 이주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었다.
2-2. 송금의 경제적 비중
2024년 우즈베키스탄으로 유입된 해외 송금액은 전년 대비 29.8% 증가한 148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주요 송출국은 러시아(77%), 카자흐스탄(5.4%), 미국(3.9%), 한국(3.6%) 순이다. 중앙은행은 2025년도 외화 송금액 증가율 전망을 기존 10-12%에서 15-18%로 상향 조정했다.
우즈베키스탄 해외 이주 근로자의 국내 송금액은 2022년 기준 GDP의 16.8%를 차지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 가족의 생계 수단을 넘어,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다. 1980년대 한국 건설노동자들이 중동에서 송금한 외화가 경제성장에 기여했던 것처럼,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들의 송금은 본국 경제의 생명줄이 되고 있다.
3. 가부장적 가족 구조와 이주 결정
3-1. 가족 내 의사결정 구조
우즈베키스탄 사회는 전통적으로 강한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있다. 가족 내 중요한 결정, 특히 해외 이주와 같은 사안은 가장(家長)을 중심으로 한 확대가족 전체의 논의를 거쳐 이루어진다.
사례 1: 장남의 이주 의무
타슈켄트 인근 작은 마을 출신의 A 씨(30대 남성)는 2남 1녀 중 장남으로, 가족의 생계 책임을 짊어지고 2023년 E9 비자로 한국에 입국했다. 그의 이주 결정은 본인 의사만이 아니라, 부모와 형제들의 생계, 여동생의 결혼 준비금 마련이라는 가족 전체의 목표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는 매월 급여의 70% 이상을 고국 가족에게 송금하고 있다.
3-2. 이주 비용의 가족 부담
E9 비자로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능력시험(EPS-TOPIK) 합격, 신체검사, 취업교육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교육비, 교통비, 체류비 등)은 개인이 아닌 가족 단위로 부담된다.
일부 경우 다른 비자 유형으로 입국하는 노동자들은 중개업체에 약 800만~1,00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는데, 이는 대부분 가족이 토지나 가축을 팔거나 친척에게 돈을 빌려 마련한다. 이러한 초기 투자는 이주노동자에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부과한다.
4. 송금 의무: 가족의 생존 전략
4-1. 송금 패턴과 규모
2024년 말 기준 우즈베키스탄 국민의 주요 소득 원천은 월급(42.6%), 사업(22.9%), 연금·사회지원금(18.2%), 농업(10.7%), 해외 송금액(2%) 등이다. 해외 송금이 전체 소득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는 전체 가구 평균이며, 이주노동자 가족에게 송금은 생존의 핵심이다.
E9 비자 소지자들은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등에서 근무하며, 월평균 200만~25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이 중 50~70%를 송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례 2: 다세대 가족 부양
경기도 소재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B 씨(40대 남성)는 매월 150만 원을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부모, 처, 자녀 3명에게 송금한다. 2025년 상반기 우즈베키스탄 내 월평균 임금은 598만 숨(약 470달러)을 기록했다. B 씨의 송금으로 가족은 주거비를 충당하고, 자녀들의 교육비를 지불하며, 농업 활동에 필요한 종자와 비료를 구입한다. B 씨는 한국에서 최소한의 생활비(월 50만 원 내외)로 생활하며, 나머지를 모두 가족에게 보낸다.
4-2. 송금의 사회적 의미
송금은 단순히 돈을 보내는 행위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책임을 완수하고 있다는 증명이다. 정기적인 송금은 이주노동자가 "좋은 아들",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평가받는 기준이 된다. 송금이 중단되면 가족은 물론 마을 공동체 내에서도 신뢰를 잃을 수 있다.
2024년 상반기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유입되는 외화 송금액은 90% 증가했다. 이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우즈베키스탄 노동자가 급증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이들의 송금이 본국 경제와 가족 생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5. 공동체 네트워크의 역할
5-1. 마할라(Mahalla) 공동체
우즈베키스탄 농촌에서는 전통적으로 마할라라는 지역 공동체 단위로 생활한다. 마할라는 단순한 거주 단위를 넘어, 정보 공유, 상호 부조, 사회적 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조직이다.
이주 결정 과정에서 마할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저 한국에 간 마을 사람들의 경험과 정보가 마할라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되고, 이는 새로운 이주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누구네 집 아들이 한국에서 집을 샀다더라", "누구는 3년 만에 목돈을 만들어 돌아왔다"는 이야기들이 마을 내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이주를 촉진한다.
5-2. 한국 내 동향 네트워크
한국에 도착한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들은 고향을 기반으로 한 비공식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같은 지역 출신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일자리를 소개하며, 필요시 금전적 도움을 주고받는다.
사례 3: 공동체 기반 적응
경남 거제 조선소에서 근무했던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집단은 주말마다 모여 함께 식사하고, 고향 소식을 나누었다. 이들은 한국 생활의 어려움(언어 장벽, 문화적 차이, 노동 조건)을 공동체 내에서 해결하려 노력했다. 숙련된 선배 노동자는 신입자에게 작업 기술을 가르치고, 한국어를 가르치며, 사업장 내 부당한 대우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5-3. 디지털 공동체
최근에는 SNS와 메신저 앱을 통한 디지털 공동체도 활성화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들은 텔레그램, 왓츠앱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한다. 특정 지역 출신들의 단톡방에서는 구인 정보, 송금 방법, 귀국 절차, 법적 조언 등이 공유된다.
6. E9 비자 제도와 가족 전략의 충돌
6-1. 제한적 체류 기간
E9 비자는 최초 3년, 재고용 시 최대 4년 10개월까지만 체류를 허용한다. 이후 6개월간 본국 귀환 후 다시 신청할 수 있지만, 총 체류 기간이 5년을 초과하면 더 이상 E9 비자를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제한은 이주노동자들의 가족 전략과 충돌한다. 처음 계획은 "1-2년 뼈 빠지게 일해서 목돈 만들어 귀국"이었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높은 물가와 생활비 때문에 저축이 어렵다. 결과적으로 체류 기간이 길어지고, 가족과의 분리 기간도 연장된다.
6-2. 사업장 이동 제한
E9 비자 소지자는 사업장 변경이 사업장 폐업, 근로조건 위반, 인권침해 등의 엄격한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최근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뿐 아니라 지역 이동까지 제한했다. 이는 노동자들이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거나, 같은 고향 출신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사례 4: 고립된 노동자
충남 농촌 지역에서 축산업에 종사하는 C 씨(20대 남성)는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해, 열악한 근무 조건(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을 감내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같은 고향 출신 노동자가 없어 언어적, 정서적 고립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6-3. 2025년 E9 비자 쿼터 감소의 영향
2025년 E9 비자 쿼터는 전년 16만 5천 명에서 13만 명으로 약 21% 감소했다. 특히 건설업은 6,000명에서 2,000명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이러한 쿼터 감소는 우즈베키스탄 가족들의 이주 전략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한국 입국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가족들은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중개업체를 통하거나, 다른 국가(러시아, 카자흐스탄 등)로 이주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7. 초국적 돌봄과 가족의 재구성
7-1. 남겨진 가족의 어려움
이주노동자가 한국으로 떠나면, 우즈베키스탄에는 노부모, 배우자, 자녀가 남게 된다. 이들은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송금, 전화, 영상통화 등을 통해 '초국적 돌봄'을 실천한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성인 자녀는 우즈베키스탄의 노부모에게 정기적으로 전화하며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의료비를 송금한다. 하지만 물리적 부재로 인해 노부모는 정서적 외로움을 경험하며, 특히 명절이나 중요한 가족 행사에 자녀가 없다는 것이 큰 상실감을 준다.
7-2. 가족 재결합의 어려움
E9 비자는 가족 동반이 불가능하다. 이는 장기간 가족 분리를 의미한다. 일부 노동자는 귀국 후 다시 한국으로 오는 것을 선택하지만, 이 경우에도 6개월간의 공백 기간 동안 가족 부양이 중단되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8. 2025년 우즈베키스탄 경제 전망과 이주 압력
8-1. 경제 성장과 지속되는 일자리 부족
2024년 우즈베키스탄 GDP 성장률은 6.5%를 기록했으며, 2025년에도 5.9~6.5%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2024년 말 기준 우즈베키스탄 빈곤율은 전년 대비 2.1% p 감소한 8.9%를 기록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빈곤율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 실업과 일자리 부족 문제는 여전하다. 풍부한 노동력에 비해 국내 일자리는 부족하여 다수의 우즈베크 인들이 해외로 이주하여 취업을 하는 실정이다. 이는 향후에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을 포함한 해외로의 노동 이주가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8-2. 송금 의존도 심화
2025년 국제 송금액은 전년 대비 10~1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이주 노동자를 수용하는 국가들의 경제 활동과 임금 증가, 고소득 국가로의 이주 확대 추세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 경제가 송금에 의존하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가족들이 이주 전략을 포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다.
9. 결론: 이주의 사회적 의미 재해석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의 이주는 단순한 경제적 이동이 아니다. 이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한 집단적 전략이며, 송금 의무를 통해 가족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이고, 공동체 네트워크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 사회적 실천이다.
E9 비자로 입국하는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은 단순히 "저임금 노동력"이 아니라, 고국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공동체의 기대를 짊어지며, 초국적 삶을 영위하는 능동적 주체들이다. 한국 사회는 이들의 이주를 개인의 선택이 아닌 가족과 공동체의 집합적 전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25년 E9 비자 쿼터는 13만 명으로, 전년 대비 약 21% 감소했다. 쿼터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우즈베키스탄 가족들의 이주 전략은 계속될 것이다. 이주노동자 수가 변동하는 만큼, 이들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 함께 깊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 정책이 단순히 "인력 충원"을 넘어,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존엄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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