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과 징크스의 은밀한 거래
# 징크스는 낮은 자존감에 기생하는 심리적 기생충일지도?
아침부터 핸드폰 배터리는 1%, 커피는 흘렸고, 지하철은 내 코앞에서 문을 닫는다. 회의 자료는 프린트가 안 되고, 발표 중에는 화면이 꺼진다. 그 순간 드는 생각.
“오늘, 뭔가 꼬인다.”
그리고 또 나오는 말.
“이거 완전 징크스야.”
사람들은 운이 없다고 말하며 징크스를 꺼내 든다. 누가 보면 징크스가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라도 있는 줄 알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혹시 징크스는, 자존감이 낮을 때만 작동하는 심리적 착각은 아닐까?
징크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징크스는 주로 ‘특정 상황’과 ‘부정적인 결과’를 연결 지을 때 생긴다. 예를 들어 어떤 날 발표를 망쳤다고 하자. 그런데 그날 하필 빨간 양말을 신었고, 새로운 향수를 뿌렸으며, 왼쪽 문으로 들어갔다.
그중 뭐가 원인일까? 뇌는 그중 하나를 랜덤 하게 찍고, 다음부터는 그걸 피하라고 신호를 준다.
이건 뇌의 생존 본능 때문이다. 위험을 피해야 하니까, 아무거나 원인으로 만들어서라도 대비하려는 것.
문제는, 그 ‘아무거나’가 쌓이고 연결되면, 결국 삶 전체를 조심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징크스가 자란다
징크스가 생기는 데는 또 다른 조건이 있다. 바로 낮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낮으면 실패를 자기 탓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외부 탓을 한다.
“그날 그 셔츠가 문제였어.”
“프린터가 고장 나서 일이 꼬인 거야.”
그렇게 징크스가 생긴다.
이건 일종의 심리적 거래다.
불안을 줄이는 대신,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포기한다.
자존감은 깎이고, 징크스는 그 자리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다.
징크스가 커지는 세 가지 이유
1. 기억은 감정에 끌린다
실패의 순간은 감정이 세다. 그래서 더 또렷이 기억된다. 뇌는 "봐, 또 그 셔츠잖아"라고 말하며 연결 고리를 만든다.
2. 확증 편향이 작동한다
뇌는 자기가 믿는 걸 강화하려 한다.
"그 셔츠를 입고 잘 된 날"은 그냥 지나치고,
"그 셔츠를 입고 망한 날"만 부각한다.
3. 징크스는 통제감을 준다
어쩔 수 없이 실패하는 상황에서, 징크스는 일종의 ‘가짜 핸들’ 역할을 한다.
"그래도 난 알고 있었다"는 느낌.
그게 징크스를 더 믿게 만드는 심리다.
징크스를 이기는 방법
징크스를 없애려면 그냥 무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 믿음이 왜 생겼는지 직면해야 한다.
"내가 그걸 두려워한 이유는 뭘까?"
"그날 정말 '그 셔츠' 때문에 망했을까?"
"혹시 실수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패해도 괜찮다고 자신에게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오늘 좀 꼬였지만, 나는 그걸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예상대로 안 흘러가도,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자기 믿음이 자존감을 채우고, 징크스를 밀어낸다.
# 징크스와의 계약을 끝내자
다음에 일이 꼬였을 때, 징크스를 탓하고 싶다면 이 한마디를 해보자.
“오늘은 그냥 그런 날일 뿐. 하지만 나는 그런 날도 잘 지나가는 사람이다.”
이 말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징크스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징크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자존감은 그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는 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