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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l 30. 2021

보이스피싱인 줄알았습니다.

"아뇨.우리 집에는그런 딸 없습니다."

앵글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화입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핸드폰 벨소리가 유난히 크게 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티스코리아입니다."

"네? 오피스요? 오피스가 뭐하는 데예요?"

직감적으로 보이스피싱이구나 싶어 잔뜩 경계의 날을 세우고 짜증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아뇨, 저희는 오티스라고 합니다. 지금 따님이 엘리베이터에 팔이 껴서 신고가 들어왔어요. 혹시 따님 이름이 앵글이 학생 맞나요?


'역시나 보이스피싱이었군... 그럴 줄 알았어...'


"엘리베이터에 뭐가 꼈다고요? 팔이 껴요? 엘리베이터에 팔이 낄 수도 있나?"

"아뇨, 어머님. 앵글이 학생이 따님 맞으시나요?"

"우리 딸이 맞긴 하는데,.."

"지금 따님이 엘리베이터 안전바에 팔이 껴서 비상벨을 눌러 사고 접수를 했어요. 출동 전에 부모님 동의를 받아야 해서 전화드린 겁니다."

"네... 그러시군요... 제 딸 이름이 앵글이는 맞는데요 엘리베이터에 팔이 끼고... 우리 애가 그런 사고를 칠 애가 아니에요."

"아뇨, 어머님... 따님이..."

 "아니요... 그런 딸은 없거든요. 됐고요~ 전화 끊겠습니다."


'영락없는 보이스피싱이네. 수법이 아주 다양해졌군. 사람을 뭘로 보고... 하다 하다 이제는 애들을 팔아? 속을 줄 알았지?'


나는 의기양양 속아 넘어가지 않은 것에 내심 흐뭇했다. 그로부터 2~3분 뒤 앵글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전화받았지? 나 집에 올라가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에 팔이 꼈어. 안 빠져... 그래서 신고했는데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출동할 수 있대서 엄마 번호 알려줬어."


'헐... 이런... 이를 어쩌지? 보이스피싱이 아니었어?'


"어떡하지? 미안...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그런 딸 없다고 했어..."

"뭐야~~~ 엄마~~~~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일단 전화 끊어봐. 엄마가 왔던 번호로 다시 걸어볼게."


마음은 급한데 안내 번호로 계속 넘어갔다.

(아시죠? 보이는 ARS는 1번, 음성인식 ARS 2번 하면서 사람 복장 터지게 하는 그거~ 맞아요~ 여러분 마음속에 들리는 답답한 그거 말이에요...)


전화기랑 실랑이하는데 한 5분쯤 썼나? 싶던 중 앵글이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엄마, 팔이 빠졌어. 나 지금 집에 갈게."

"빠졌어? 다행이다. 얼른 와~"


조금 후 앵글이가 왔다.

"엄마, 딸이 사고가 났다는데 그런 딸 없다고 하면 어떡해? ㅋㅋㅋㅋ "

저도 웃기는지 깔깔 웃고 난리가 났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봐봐. 멍들었어... 엄청 아파. 팔 빼려고 이리저리 팔을 돌려봤더니 순간 쓱 빠지더라?"

제 딴에 팔 빼려 얼마나 용을 썼으면 팔꿈치가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안전바가 있어?"

생각해보니 한 번도 유심히 엘리베이터 안을 본 것 같지 않다.

"왜~ 스테인리스로... 왜~ 발레교실 같은데 있는 그 동그란 거..  그런 손잡이 본 적 없어?"

 "그런 게 엘리베이터에 있었나? 근데 그 사이 틈으로 팔이 왜 빠져?"

"나도 몰라. 팔을 살짝 기댔는데 쑥 빠지더라? 근데 안 나오는 거야. 친구랑 같이 있었는데 걔도 놀라서... 비상벨도 친구가 눌러준 거야. 혼자 있었으면 못 눌렀지. 팔이 안 닿잖아"

"다행이네. 다음부터는 거기 기대지 마. 큰일 날뻔했네... 그리고 그런 딸 없다고 해서 미안. 엄마는 야무진 너한테 그런 어리바리한 사고가 날 거라고 상상도 못 했지."

그날 우리 둘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서로 웃으며 하하 깔깔 난리도 아니었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 한 사건을 보이스피싱이라 오인하고 안도했던 그 짧은 순간이 아찔하다. 너무 많이 속이고 속는 세상! 속더라도  자식이 걸린 문제인데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하는데 영락없는 보이스피싱이라 생각했던 내가 미련스럽다.


사건 이후 엘리베이터를 찬찬히 보았다. [오티스코리아]라는 이름이 버젓이 붙어 있는데 난 이 회사명을 그날 처음 알았다. 안전바도 있었다. 아이들 어릴 때

"엄마, 이것 봐봐!"

하면서 풀쩍 올라앉던 그것! 아이들이 장난칠 때 무심히 봤던 안전바여서 승강이에 안전바 있는 것을 인식도 못했던 것 같다.


앵글이가 또래보다 작아서 134cm, 23kg 정도였다. 그 정도 몸집의 아이는 승강기 안전바에 팔이 낄 수도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 주시길 당부드리고 싶다.



퇴근 한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전해주었다. 화들짝 놀란 남편과 다음에 혹시 그런 전화를 받거든 일단 아이 상황부터 확인하자고 다짐했다.


보이스피싱이 난무한 세상. 속고 사는 일이 다반사다 보니 믿어야 할 때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씁쓸하다. 누군가는 속아서 잃고, 누군가는 속여서 얻는 세상! 안심하고 살아도 괜찮은 세상이 올까? 어쩌면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믿고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고 싶다.




사진 출처:  오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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