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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ug 17. 2021

외로운 도시락

독거노인의 하루 식사

중학교에 입학 한 딸아이는 3년 간 60시간 봉사시수를 채워야 한다는 것에 이의제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봉사는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봉사하는 것에 대가가 주어지는 순간 봉사로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은 아니냐는 의견이었죠. 강제성을 띄고라도 봉사하지 않으면 나눔을 배우고 경험할 기회조차 없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아이의 의구심을 해결할 만큼 명쾌한 해답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중1을 보내고 해가 바뀌었죠.


다음 해 남편이 사회복지 공동 모금회 기부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딸아이를 데리고 봉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르신들께 생필품 선물을 나눠드리기 위해 포장을 하고 떡국 나눔 봉사를 하게 되었죠. 반나절을 봉사하며 딸아이는 아주 조금이나마 나눔의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어요.


온기 가득 사랑 가득 행사 이후 중2 때부터 함께 노인복지관 배식 봉사를 다녔습니다. 복지관에 가면 딸아이는 주로 어르신들께 수저를 나눠주고, 는 식당 안에서 배식을 하거나 홀 정리를 하곤 했습니다. 토요일에 식사를 하러 오시는 어르신들은 평균 300~350분 정도였고, 점심 한 끼가 하루 끼니 전부이신 어르신도 꽤 많습니다. 어르신들은 입장하면서 직원분에게 식권과 노인 복지카드를 확인받습니다. 그 후  입구에서 수저를 나눠드리는 딸아이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되시죠. 어르신들 중 몇몇 분들은 딸아이에게

"고맙구나... 봉사하러 왔니? 몇 살 이야?"

인사를 건네시기도 하십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봉사 시수를 정해준다고 투덜대는 아이에게 봉사를 하면서 얻는 기쁨을 몸소 느끼도록 해주고 싶어서 데리고 다니게 되었는데 어르신 배식 봉사는 아이가 나눔의 기쁨과 보람을 경험하는 최고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행동으로, 시간으로 나누는 봉사의 기쁨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어르신 중에는 점심 한 끼가 하루의 세끼를 책임지는 식사이신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식판 가득 음식을 산처럼 쌓아서 가져가시면 탈 날까 걱정이 되어 시선이 계속 머물게 되죠. 그런데 그 많은 음식을 다 드시고 다시 배식을 받아가셔서 몸속에 꾹꾹 담아가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일요일은 배식이 없으니 이틀분을 채우시는 거죠. 사정을 알기에 나서서 말릴 수도 없었어요. 너무도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물 한잔 떠드리는 것 말고는 딱히 무엇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모두가 어려운 어르신들은 아니세요. 관 내 거주하는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다 오실 수 있으니까요. 제가 봉사하는 복지관은 그나마 후원 제단도 튼튼해서 식사도 잘 나오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되는 복지관이라 마실 삼아 부부가 함께 오시기도 합니다. 다정하게 식사도 챙겨주고 물도 가져다주는 부부를 뵈면 따뜻함이 전해지죠.


가끔 치킨이나 갈비 등이 나오면 옷 주머니 같은 곳에 넣어가시려는 분들도 계세요. 식중독 위험 때문에 배식된 음식이 남으면  무조건 버려야 하는데 싸갈 몫까지 배식받고 가방에 포장재도 없이 쓸어 담는 거죠... 못하시게 말리면 역정을 내시니 난감할 때도 많답니다.


반찬 봉사 가는 길


코로나가 시작되고 복지관 배식은 중단되었죠. 그래서 매주 반찬 배달 봉사로 전환해서 다니고 있어요. 다른 일정들은 미루거나 취소해도 되지만 반찬 봉사는 그럴 수가 없죠. 제 발걸음 한 번이 멈추면 어르신의 하루 식사도 같이 사라지니까요. 물론 제가 안 가면 복지사님들께서 전해주시지만 되도록 지키려고 노력해 봅니다.


어르신 댁 주방 식탁위에 올려드린 하루분 반찬 봉투


봉투에는 하루 세끼 반찬과 국, 간식이 담겨 있어요. 거동이 가능 한 어르신들은 직접 받아가시고 거동이 어려우신 분들은 가져다 드립니다. 코로나로 대면이 불가능해서 시간 맞춰 방문 후 정해진 위치에 두고

"어르신, 식사 왔습니다."

외치고 인증 사진을 찍어 복지관으로 전송한 후 돌아서는 것까지가 제가 할 일이죠.




봉사를 하면서 노후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박완서 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서 소개된  작가님의 일화 중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님은 벌이가 있는 한 국가가 주는 노인 수당과 교통비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자신과 약속을 했습니다. 어느 날 강의를 하기 위해 걸음을 나섰는데 지갑을 놓고 나온 거예요. 되돌아가기에는 시간이 허락지 않고, 지하철을 타려니 지갑이 없는 상황이었죠. 매표소에 가면 경로 티켓을 주겠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니 한참을 망설이고 서서 생각을 하십니다. 끝내는 어쩔 수 없이 경로권을 받아 들고 약속 장소에 가시죠. 작가님의 하루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상심하고 자책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나의 노후에 다른 이의 힘 (그것이 국가의 힘이더라도)을 빌지 않고 스스로 독립하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할 수 없는 노년의 나를 대면하면 나이 듦으로 오는 슬픔이 배가 될 것 같거든요.


후회는 빨라도 늦다!


저의 좌우명입니다. 중학교 때부터였으니 거의 35년 세월 동안 나를 지탱해 준 좌우명이네요. 멋지게 나이 들어 스스로 독립이 된 어른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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