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잠결에 빗소리가 들려 시계를 보니 03:15이네요. 방마다 다니며 창문을 닫아주고 그래도 더울까 봐 5cm 정도 열어두었죠. 가족들 다 챙기고 나니 잠이 달아났네요. 오늘은 3시간 10분 정도의 수면으로 하루를 보내게 될 듯합니다. 로운은 낮잠을 안자거든요...
수면 온도 맞추기는 주부가 챙기는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가족들은 자느라 아마 모르겠죠. 여름이면 더울까 봐 밤새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며 이불을 덮지 않고 자는 아이들 걱정에 잠을 설칩니다. 겨울에는 덥지도 춥지도 않게 보일러 온도를 맞추고 수분이 부족해서 건조할까봐 매일 가습기로 수분 조절을 하죠. 가습기에 매일 물 채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앵글이의 기상시간 05:00 ㅡ 새벽 공부 후 7시 아침식사, 등교 준비, 등교 로운의 기상시간 06:00 ㅡ 가족들의 아침 준비, 남편 도시락 챙기기 동글이의 기상시간 06:30 ㅡ 뒹굴대며 TV보기, 아침상 기다리기 남편의 기상시간 07:00 ㅡ 출근 준비, 아침 식사 후 도시락 챙겨 출근
연령과 일과 시간이 제각각인 가족들에 맞춰 깨우고. 각자의 기호에 맞게 두세 번 아침상을 차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가족들의 식탁
가족을 다 보내고 정리를 시작하죠.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청소 앱을 이용하면 맞춤식 청소도 가능하지만 보통의 주부들은 그렇게 비용 쓰는 것을 두려워하죠. 왜냐고요? 돈 나갈 일이 많아도 너무 많거든요...
청소***의 5시간 이용가격/ 호텔리*의 욕실. 리빙, 쿠킹존 이용가격
집 청소만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5시간 바닥 청소만 도움받아도 1일 72,000원이에요. 주부들이 힘들어하는 쿠킹 존과 화장실만 따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1회 18,000원씩 네 곳(욕실 2개, 리빙존, 쿠킹 존) 하면 72,000원이죠.
비용을 들여 도움을 받는다고 주부가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곳곳이 정리되지 않거든요. 안 해 주시는 곳도 있고, 화장대나 책장, 책상처럼 개인 소유품은 만지지 않으시기에 어차피 주부의 손을 거치죠. 그럼 어떻게 할까요? 네~ 도움 안 받고 홀로 다 하죠. 불러도 쉴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비용이 있으면 아이들 좋아하는 간식거리 더 사주고 학원 한 곳 더 보낼 테니까요.
색깔별로 나눠서 빨래 세 번. 건조 세 번, 개켜서 각 방에 정리하고 난 후, 커피 한 잔 마실 요량으로 잠시 앉을라치면 눈에 일거리가 들어오죠. 찰나의 순간 후루룩 마셔버린 커피가 무색하게 다음 일거리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아이들 귀가 전 일을 마쳐야 거든요.
아이가 어리면 일거리가 더 늘죠. 수시로 벗어 놓은 아기 옷은 삶아줘야 하고, 젖병 닦고, 이유식 만들고, 놀잇감 세척하고, 기저귀 정리까지 추가되니까요.
유초등 아이들 귀가하면 집으로 바로 들어올까요? 엄마가 혹시나 현관에 바로 들어설까 싶어 앞선 걸음으로 냅다 놀이터로 뛰죠. 놀이터로 아이가 가버리면 게임 아웃이에요. 기본 세 시간... 어리니까 홀로 두지도 못하고 계속 따라다녀야 해요. 위험하잖아요.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직진 본능으로 어디든 가버리죠. 시야에서 놓칠 수가 없어요.
놀이터에서 물총놀이 중
오후 5시. 중고등 자녀의 하교시간에 맞춰 각 학원으로 라이딩 후 대기, 대기, 대기... 앵글이는 6개월 전부터 학원 없이 혼자 공부해서 그나마 엄마손을 덜 타지만 그래도 학교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라 픽업은 계속하죠. 일반 고등학교는 하교 셔틀이 없거든요. 고딩이의 학원 일과는 거의 밤 10시~새벽 2시 정도까지 이어지죠. 극성 엄마들이나 그런 거라고 하시면 아니되옵니다. 대다수의 고등학생들이 그렇게 살고, 엄마들은 아이들이 안쓰러워 잠을 쪼개가며 픽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아이가 어디 혼자 저절로 크나요? ㅜㅜ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집으로
그 모든 일을 해내며 사랑하는 남편님도 챙겨야죠. 아이들의 뒷전으로 밀려나면 남편님도 삐지시죠. 갑분싸 '돈 벌어오는 기계냐?' 단박에 컴플레인 들어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해요.
"세상 모든 남편님들... 소홀해지거나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몸이 하나라서 그래요오~~~~"
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꾹 참고 남편님 좋아하시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랑 계란말이, 스팸 굽기, 바삭하게 들기름 솔솔 김 굽기 등으로 저녁을 준비하죠. 요 메뉴 좋아들 하시죠? 거의 국민반찬인 듯요... 맛난 것들 많은데 요 메뉴 싫어하는 남편님 거의 없으신 듯요...
라고 절대 묻지 마세요... 주부들... 한가하게 놀 시간이 없어요. 밤에 왜 잠 안 자고 핸드폰 보냐고 잔소리하시면 서글퍼요... 장 보는 거예요. 로켓은 12시 전에 주문해야 다음날 새벽에 찬거리 오잖아요.
이제부터 잘 들어보세요.
최저시급으로 24시간 근무 × 30일을 일하면요...
최저시급에 맞춘 기본급
여기에 근무년수 × 초과근무수당, 야근수당, 가족수당, 성과급, 상여금만 넣어보세요. 어마어마하죠?
전업주부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고요, 한 달에 7백만 원 이상 돈을 벌어주면서 온 가족 맞춤으로 서비스해 주는 전문직입니다. 그러니까 주부님들도 어깨 힘 팍팍 주고 자존감 뿜 뿜 올리시고 큰소리 팡팡 치며 살림하셔도 돼요. 가족들이 어디에 가서도 울 엄마의 서비스를 대신 받을 수가 없거든요.
주부님들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만 하나요? 슬프게도 몸이 하나둘씩 망가져 가잖아요. 아프다고 가족들이 사정 봐주나요? 끊임없이 찾잖아요. 물컵 하나도 혼자 못 찾는 가족 만들지 마시고 일도 가르치셔야 해요. 앵글이 에게는 초5 때 압력 솥밥을 가르쳤어요. 그래서 전기밥솥 없이도 밥을 할 수 있어요. 미안하거나 안쓰러워 마시고 일도 가르치셔야 엄마가 자리를 못 채워도 밥은 먹고살잖아요.
로운은,
계속해서 엄마의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마음속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내 생각을 알 수 없어요. 알려주세요. 마음의 소리 그대로 전해 보세요. 사람은 기계가 아니잖아요. 기계도 20년쯤 사용하면 AS도 안되죠. 아플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고 때로는 하기 싫을 수도 있죠. 미안해할 일이 아니에요. 사람이니까요.
오늘부터 여러분은 연봉 8,500의 전업주부입니다. 당당하게 월차도 쓰고, 자기 시간을 위해 퇴근 선포도 하세요. 휴일도 챙기시고요... 거기다 마음까지 고와서 생활비 올려달라며 컴플레인도 안 하시잖아요. 우리의 요구로 남편님 사기가 떨어질까 봐서요... 애쓰시는 남편님 노고 또한 잘 읽고 배려하는 비단결 같은 보배님들이 우리 주부들이랍니다.
로운의 집은 저녁을 일찍 먹어요. 7시가 되면 정리까지 거의 마무리기 되죠. 저는
"나, 퇴근~! 이 시간 이후로 내가 뭘 하든 찾지 말고 자급자족하세요."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어제부터는 동화 심리 강의도 들어요.
가족과 5~70년 살 거잖아요. 그러니까 스스로 나를 가치 있게 올려두고 내 몸도 조금 아끼며 아프지 말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같이 살아가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