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운 Jun 11. 2021

의미있는 일상 찾기

'전업주부'에서 '사람책 프로젝트'로 일보전진

"훌륭한 교사란 예민한 관찰자이다. 가르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영유아를 관찰하고 귀 기울이는 능력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는 영유아의 기술, 흥미, 욕구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관찰을 통하여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영유아를 평가하고 이를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환경을 구성하는 데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영유아 관찰 및 평가 (사)한국 보육교사교육연합회 편 내용 중 발췌 -


이번 주 한 주간 동안 [어린이집 장기 미종사자 직무교육]을 쌍방향 온라인 교육으로 받고 있습니다. 교과목은 총 10과목, 교육 시간은 오전 08:40~17:50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총 8시간을 꼼짝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의무교육입니다. 집합교육보다는 출퇴근하는 부담이 덜하니 괜찮으려니 하고 시작한 직무교육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갑니다. 카메라에서 5분 이상 자리를 뜰 수 없고, 이동하면서 교육을 받아도 안되고, 교육시간 내내 녹화가 이뤄지고 있기에 계속해서 카메라를 주시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마지막 날,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 5일 차 금요일입니다. 수업이 끝나간다는 해방감은 마음을 자유롭게 합니다. 마치 아이들의 기말고사 마지막 날 느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계속 앉아 있는 것이 힘들었지만 오랜 휴식으로 잊혔던 지식들을 되짚어 건드려주는 강의는 '맞아, 난 교사였지...'라고 일깨워주는 시간이 되어 좋았습니다.




건넌방에서 온라인 클래스 교육을 받고 있는 딸아이가 물 가지러 잠시 거실로 나와 묻는 말

"엄마~ 할만하세요?"

"아니... 이거 완전 중노동이야.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게 만만찮은 일이네."

"엄마~ 매일 그렇게 수업하는 고2 딸에게 할 말을 아니신 듯요... ㅋㅋㅋ"


딸아이의 마지막 빅 펀치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5일이라는 짧은 시간, 약속된 분량이 마쳐지면 그만인 저와, 작년부터 내내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는 딸아이와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일이긴 합니다. 그저 지나는 말로,

"엄마가 반백살인데 꽃다운 너 보다 힘들 수도 있지 않겠니? ㅎㅎㅎㅎ"

라고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로 2년째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저 잘 돌아가고 우리는 또 그에 맞춰 잘 적응하면서 나날을 보냅니다. 작년 6월 첫 온라인 클래스가 개설될 때만 해도 온 국민의 의견이 분분하여 왕왕 떠들던 말들이 쑥 들어가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잘 적응하며 1년 반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재난으로 인해 큰돈을 벌고, 어떤 이는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각자의 시간 안에서 열심을 다하지만 결과가 같을 수는 없으니 한쪽에서는 원망의 소리를, 한쪽에서는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 안주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갑니다. 저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잘 지내봅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조금씩 무기력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고 나를 성장시킬 일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로 어지럽던 작년에는 경기도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하여 공동체 사업을 승인받아 소수의 마을 사람들에게 집에서 간단한 도구를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수공예 수업을 했습니다. 니팅룸을 활용한 수세미 만들기, 네티 목도리 만들기와 양말목을 활용한 방석, 냄비받침, 티 매트 만들기 수업을 가르쳐 주었고, 겨울을 맞이하며 고양시 문화유산광광과에서 진행하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트리니팅] 행사에 참여하여 겨우 내 추위에 고생할 나무에 예쁜 니트 옷 입히기 봉사도 했었습니다.


[일산 호수공원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트리니팅] 행사에 참여]







2021년이 시작되고 무의미하게 흘러가고만 있는 시간을 전년도 보다 더 잘 사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일중독이라고 하지만... ㅜ.ㅜ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일거리를 찾아봅니다. 온라인 클래스로 아이들이 번갈아 집에 머무니 주부의 삶은 분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헛헛해서 시작된 의미 있고 재미난 일거리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의미 있는 일상은, 어르신 반찬배달 봉사입니다.

몇 년 동안 노인복지관에서 배식봉사를 하다가 작년 코로나로 멈춰버려 나누지 못한 봉사를 반찬배달 봉사로 전환하여 독거노인 중 이동이 어려우신 분들을 가가호호 들러 배달해 주는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좁은 집에 머물며 찾아오는 이도 없고 홀로 식사를 챙기기도 버거운 어르신들의 건강도 챙기고 하루 세끼의 반찬과 국거리, 간식 등을 담아 가져다 드립니다. 현관을 열고 꾸러미를 놓아드린 후 "어르신~ 반찬 배달 왔습니다." 외치고 인증샷을 찍어 복지관에 보내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과정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로 대면할 수는 없어서 목소리밖에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사도 나누지 못해서 제가 가져다 드리는 반찬을 드실 어르신의 얼굴을 뵌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 일이 의미 있는 것은 어르신들의 소중한 하루 양식을 전해드릴 수 있는 것과, 저의 노년을 생각하며 미래를 계획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다 건강하게, 보다 의미 있게, 보다 계획적으로 노년을 맞아야겠다는 다짐을 오늘도 해 봅니다.



어르신 가정으로 전해드린 하루 식사






두 번째 의미 있는 일상은, 청소년을 만나는 일입니다.

2019년부터 시작한 [경기도 학생상담자원봉사자]입니다. 작년에는 많은 학교들이 수업을 멈춘 상태여서 봉사하지 못했었고, 올해는 배정된 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을 만나 [심성수련] 활동으로 집단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맡은 학교는 5 학급이어서 각 반 마다 2회기씩 10회기가 진행되어 10주 동안 주 1회 반마다 10명씩 학생들을 만납니다. 세 명의 상담교사가 배정되어 한 반 30명 기준 했을 때 10명씩 나누어 만나는 집단상담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늘 설렘이 있습니다. 사춘기 시기가 시작되는 아이들에게 잠시 휴식을 주고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해 주고 싶어 시작한 상담교사 자원봉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의미가 더해집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만날 때 더 행복합니다.



"내가 아는 나"를 생각해보는 시간



심성수련으로 초등학생을 만나고 [진로교육] 활동으로 중학생 친구들을 만나봅니다.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함께 한 [진로활동 - 메타인지 학습전략]



메타인지 학습전략은 [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의의가 있는 토론식 강의입니다. 학생들은 주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서 다양한 주제의 강사들을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 형식적인 수업으로 여기고 기대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고2 딸아이의 말을 듣고 바짝 긴장하고 학생들을 만나러 갔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지루하고 익숙해서 그다지 새롭지 않을 수도 있을 강의였음에도 잘 호응해 주고 대답도 잘해주어 너무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강사 스스로 부족하다 느끼지 않도록 조금 더 수업 준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 의미 있는 일상은, 전공을 살리는 일입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아와 함께 지난 20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모든 시간이 흥미롭고 재미있고 의미 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유치원 교사로, 원장으로 일했던 20년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적성에 잘 맞고 제 옷을 입은 듯한 일이었습니다. 육아로 10년을 쉬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쉬었던 시간이 길어 재교육도 받아야 하고, 바뀐 법규와 교육과정을 점검해야 합니다. 관리자로 복귀하려면 교사들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데 교육을 받을수록 생각보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함을 체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강산이 변할 만한 시간 동안 멈춰있던 제가 사회 속으로 돌아가 요즘의 교사들에게 꼰대스러운 원장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오랜 시간 전업주부로 지내다 보니 일터로 다시 나가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은 제일 잘하는 일이기는 하나 마음도 시간도 정성도 많이 들여야 하고 관리자로서 책임도 필요한 일이기에 좀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을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세상 밖으로 나갈 때 새로운 도전보다는 제일 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실패할 확률이 가장 낮고, 20년을 해왔던 일이라 두려움이 적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2021년의 하반기는 공부하고 연구하고 세상과 맞설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볼까 합니다. 나눌 이야기가 많은 사람책이 되어 후배들과 아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대문 사진출처: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죽음... 그리고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