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을"이면 생각나는 그림책「들꽃아이」

기다림의 시간이 주는 '행복'에 대해서...

by 로운
[임길택] 선생님의 동화「들꽃아이」
주인공 '보선'이는 실제 아이다.
이름 또한 그대로 썼다.
지금 아이들이 보선이가 걸었던 길을
잃어버렸다는 게 안타까워
이 이야기를 썼다.
이런 길을 잃었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꿈을 잃어버린 거나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길택 산문집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중에서
(보리출판사 펴냄)

들꽃 아이의 표지 삽화 (동화 내용 속 삽화를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2019년 동글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동글이가 입학 한 초등학교에는 [책 읽어주는 어머니]라는 학부모 동아리가 있습니다.


[책 읽어주는 어머니]는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1교시 수업 전(08:50~09:00) 10분 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짧은 동화 연결 활동을 하는 동아리입니다.


1년 동안 아이들에게 읽어 줄 동화책 선정의 시간,

회원이 된 24명의 어머니들이 각자 3권의 책을 가져와 소개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제가 소개 한 책 중 한 권은 [들꽃아이]였습니다.


들꽃아이는 요즘 아이들의 생활과 조금 멀리 있는 듯 한 이야기입니다. 엄마들의 국민학교 시절, 어쩌면 엄마들의 엄마가 다녔던 시골학교의 이야기입니다. 동글이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임길택 작가님의 따뜻한 이야기와 김동성 화백님의 감동적인 그림을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책을 읽어주니 마음이 맑은 28명의 아이들의 눈망울이 잔잔하게 다가와 제 마음을 적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어울리는 따뜻한 감성의 책 한 권을 여러분들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책 속의 삽화가 너무나 아름답지만, 책을 직접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 속에 등장하는 꽃들로 삽화를 대신합니다.

이야기에 소개된 꽃들의 사진은 두산동아 백과에서 옮겨왔습니다.


처녀치마와 개불알꽃 (두산동아백과사전)


도시에서만 살던 선생님이 시골학교에 첫 발령을 받게 됩니다. 선생님은 시골학교로 근무하게 된 두 번째 해에 6학년 담임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눈에 들어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 [보선]이.

보선이의 생활기록부에는

'공부는 뒤떨어지나 정직하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함.'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둘글레꽇과 붓꽃 (두산동아백과사전)


너나 할 것 없이 사는 게 바쁘고 가난하던 때, 집집마다 사는 게 퍽퍽하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하면 딸은 공부를 시키지 않는 집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공부를 잘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행동을 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생활기록부에 어떻게 적어줘야 할까요?

선생님은 고민하셨던 것 같습니다.


얼레지와 원추리 (두산동아백과사전)


보선이는 등굣길에 들꽃을 꺾어 교실에 꽂아두었습니다. 꽃이 마저 시들기 전 새로운 꽃으로 바꿔 꽃아 두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께 꽃 이름을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도시에서 살던 선생님이 들꽃의 이름을 알리가 없습니다.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한 선생님을 '식물도감'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처녀치마, 얼레지, 둥굴레, 은방울꽃... 그리고 개불알꽃.' 신기한 꽃 이름에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제가 사는 곳도 가을이면 들꽃축제가 펼쳐집니다. 코로나로 작년에도 올 해도 들꽃 축제는 열리지 못합니다. 꽃집에서 파는 꽃보다 들꽃을 더 좋아하는 저에게는 너무도 아쉬운 일입니다. 얕은 산 한 가득 소담스레 핀 들꽃의 아름다움을 올 해도 못 보게 되었습니다. 씨를 뿌리거나 일부러 물을 주며 가꾸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작년에 폈던 그 자리에, 작년에 바람 따라 꽃 씨를 흩날렸던 저 너머까지 꽃을 피우는 들꽃을 축제가 아니더라도 관심만 있으면 언제든 볼 수 있습니다. 운동삼아 걷는 산책길이 심심하지 않도록 형형색색 피어난 들꽃이 소박하니 좋습니다.


산책로에 핀 들꽃들 (로운의 산책길)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보선이는 꾸준히 새로운 꽃을 꺾어 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보선이가 꽂아 놓은 꽃들을 스케치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자리를 비운 보선이의 빈 책상을 보고 선생님은 화가 나셨습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온 보선이와 정은이를 야단치셨습니다.


그날 오후 선생님은 수업을 마치고 청소를 끝낸 종숙이에게 손전등을 가지고 학교에 다니는 보선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보선이가 사는 모습이 궁금하신 선생님께서는 보선이에게 가정방문을 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보선이는 흔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선생님은 식물 공부를 하고, 밀린 일들을 하면서 한낮의 햇살이 가라앉기를 기다립니다.



은방울꽃과 참나리 (두산동아백과사전)


그리고, 보선이의 집을 향해 출발합니다.

자전거를 빌려 한가로운 옥수수밭을 지나 좁다란 오솔길로 들어섭니다. 좁은 길은 자전거를 타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걷는 길, 보선이를 닮은 수많은 들꽃들이 길동무를 해 줍니다. 가다 보니 보선이가 교실에 꺾어다 놓은 꽃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어느덧 뉘엿뉘엿해가지고 어둡고 캄캄해졌습니다.


'이 먼 길을 보선이 홀로 걸었구나' 생각이 되니 보선이가 왜 손전등을 들고 다니는지 선생님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참을 걸어 두 고개 넘어가니 어슴프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10시가 넘어 보선이가 사는 마을에 도착한 선생님은 마을 사람들의 융숭한 대접과 환대를 받습니다.


패랭이꽃과 꽃잔디 (두산동아백과사전)


2학기가 시작됐고, 겨울이 되었습니다. 지각은 해도 결석은 하지 않는 보선이의 책상 서랍에는 손전등이 있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 며칠 째 결석을 하고 있는 보선이를 생각하며 선생님은 걱정을 하십니다.


보선이를 생각하며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지막 날 (들꽃 아이의 마지막 삽화)


보선이는 겨우 내 내리는 눈 때문에 졸업식에도 오지 못합니다. 보선이에게 줄 졸업 선물로 준비한 [안네의 일기]를 이웃 반 선생님께 맡겨두고 멈추지 않는 눈을 바라보며 선생님의 눈시울은 붉어집니다. 어쩌면 학교에 오고 싶은데 눈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보선이도 그 눈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화책 한 편을 들려 드렸습니다.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동화 [들꽃 아이]를 읽은 로운이도 선생님을 따라 눈물을 또르르 흘립니다. 로운의 어머니도 어릴 때 학교가 몇 되지 않아 2시간을 걷고 또 걸어 산 너머 학교에 다녔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곳곳에 학교가 있고 아이들은 누구나 다니는 학교에 그냥 다닙니다. 의무교육이 되어 초, 중등학교를 임의로 보내지 않으면 처벌도 받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좋은 세상에 살아서 너희들은 좋겠다.'라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배우고 싶어도 가난해서, 딸이어서 못 배웠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을 지나 지금 6~70대를 살고 계신 부모님 세대의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학교도 많이 열려있습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어 국민학교도 다니지 못했던 어르신은 초등학교 졸업 인정과정의 노인학교를 다니시며 여한이 없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불과 70년도 채 되지 않은 세월이 지났을 뿐인데 세상은 놀라울 만큼 달라졌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보선이는 선생님께서 선물 한 '안네의 일기'를 받았을까요?


보선이가 선생님을 6학년 때 만난 것은 축복인 것 같습니다. 보선이는 정직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지각을 자주 해서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보선이가 "왜?" 지각할 수밖에 없는지 궁금했던 선생님은 5년 동안 한 분도 안 계셨던 것 같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만난 선생님은 매일 소담스러운 꽃을 꺾어 교실에 가져다 두며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가 왜 지각을 하는지, 어린아이가 손전등이 왜 필요한지 사소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직접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직접 나서봅니다. 그리고 그 먼 길을 꽃들과 이야기하며 학교에 왔던 보선이에게 남다른 애틋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떠나는 발걸음, 보선이를 만나지 못하고 이별을 했을지, 만났을지는 모릅니다. 작가는 여운을 남기고 독자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구나 바라지만 애써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대감에 가득 차 오 가는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내가 느낀 설렘을 나눠주려 나선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도통 기억나지 않습니다. 즐거웠던 기억보다 슬프고, 아프고, 억울했던 기억이 더 많이 추억의 방에 차곡차곡 쟁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평화로운 일상이,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았을 텐데 왜 아픈 기억이 더 오래도록 머물러 내 안의 나를 괴롭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읽고 또 읽었던 책이었는데 기록으로 남기려니 또 다른 감각이 깨어납니다. 그리고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주는 '행복'에 대해서...














사진출처 : 로운, 두산동아 백과, 들꽃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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